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록 Apr 13. 2023

38. 소속이란게 있었으면

나란 사람도 이 세상에 있거든요

나는 일터에서도 외톨이고 일터 밖에서도 친구 한 명 없는 외톨이었다. 학교든 학원이든 다녀야 또래 친구를 구경이라도 할 텐데 그럴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검정고시라는게 있어. 그거 따면 대학도 갈 수 있대.”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대학? 돈이 어딨어. 엄마 내 학비 대줄 수 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대학을 나와야 사람구실 하는 거야. 공부 잘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아무튼 대학은 더 나중 문제고, 우리나라에서는 중졸로는 못 살아. 계속 화장품만 팔 거야? 내가 너 그러라고 유학 보냈던 건 줄 알아?”


“내가 시험을 어떻게 봐. 그것도 한국어로 시험을? 게다가 한국의 공부는 훨씬 더 어려워서 못 쫓아가.”


“일단 돈을 모아보자. 백만 원만 모아봐.”


그래서 따귀 사건이 있고 나서도 일은 계속했다. 그 나이에 어딜 가도 한 달에 백만 원 벌기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엄마 말대로 조금씩 돈을 모았다. 얇디얇던 돈봉투에 두둑이 백만 원이 채워졌을 때 엄마와 함께 신설동으로 갔다.


“선생님, 얘가 외국에 살다 와서 영어는 잘하는데 우리말도 좀 어눌하고 한국하고 수준이 달라서 따라잡으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그래도 4월 시험을 볼 수 있을까요?”


“4월 시험이요??? 어머님, 지금 1월이에요. 내년 4월 시험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 문제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애가 두 달 만에 어떻게 시험을 봐요~~”


“아니 일단 떨어지더라도 이번 4월 시험을 한번 쳐보고… 진짜로 떨어지면 다음 시험 또 준비하고 그럼 되지 않을까요?”


“에이 무슨 그런 세상물정 모르는 말씀이세요. 우리 합격률 떨어져서 안 돼요. 그러지 마시고, 우리 학원에 아주 기초 반이 있어요. 왜 그 까막눈이신 할머니들 있죠? 한글공부부터 해서 초중고 학습내용 공부해서 시험준비하는 그런 반이 있거든요. 그 반에 넣을 테니까 내년이나 후년 시험 천천히 준비하시면 돼요.”


“저희가 상황이 안 좋아서… 학원을 오래 다닐 형편이… 그리고 얘가 보기보다 똘똘해요. 지금 한국말이 좀 어눌해서 그렇지 조금만 시켜주시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요. 네? 선생님… 제가 밤새워 공부시킬게요. 4월 시험 보게 해 주세요 꼭이요…네?”


내 돈 내고 다닐 학원의 문조차도 내게는 단번에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설득인지 읍소인지 모를 시간이 한참 지나자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이 짜증 내며 말씀하셨다.


“아이 진짜 사람 곤란하게 하시네 정말… 2월부터 열리는 문제풀이반이 있어요. 시험준비 막바지인 학생들이 기출문제만 주구장창 푸는 반인데, 따로 가르쳐주는 수업이 아니라 문제풀이만 해주기 때문에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럼 거기 들어가서 문제라도 풀어보게 하시던가요. 4월에 시험을 보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요, 우리는 책임 못 져요. 합격 책임 못 진다고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우리 학원 학생 아닌 거예요 얘는.


지금 생각해 보면 학원에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할 이유도 없었는데 그때 우리 모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 돈 내고 시험 접수하면 되는 거였는데 학원에서 수업을 받아야 시험을 접수할 수 있는 줄로 알았다.


1월 말까지 에뛰드에서 근무를 마치고 2월부터 신설동의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다. 문제풀이반은 매일 8시에 시작했고 그 반에는 대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 인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설렜다.


나도 이제 매일 등교하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37.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