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번째 리뷰_쌤통의 심리학
왜 우리는 잘 나가는 연예인의 몰락을 보면서 박수치는 걸까? 그 연예인이 잘 된다고 나한테 불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몰락한다고 나한테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의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에서 아이돌 그룹 AOA의 멤버들이 역사의식 부족을 이유로 큰 질타를 받았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도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최고 인기 스타 반열에 올라 있던 설현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많은 사람이 이 사건?을 다룬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남겼다. 네티즌들은 대체로 자발적으로 댓글을 단다. 누가 돈을 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댓글을 남긴 것이다. 실망, 분노 같은 감정을 표출하면서 말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연예 기사에 댓글을 단다고 네티즌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최근에 나온 <쌤통의 심리학>은 '쌤통'이라는 감정을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쓴 이 책은 타인의 고통(또는 불행)을 즐기는 인간의 본성을 분석하고 있다. 남의 불행을 보고 남몰래 즐거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쌤통의 심리학>을 쓴 스미스 교수는 이를 쌤통(독일어로는 Schadenfreude)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높은 지위와 그 즐거움을 얻는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 특히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지위가 떨어지는 것이다. 선구적인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우리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그 불행을 초래하고 그로 인한 상대적 이득과 즐거움을 얻는데, 이는 우리의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39p)
쌤통 심리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른 인간과 경쟁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자신의 불행으로 느끼게끔 만들었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법과 제도 아래에서 안정된 사회를 구축했다고 해서 긴 세월 동안 유전자에 축적된 생존 본능이 사라질 수는 없다. 쌤통 심리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잘 나가는 연예인의 몰락은 내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다른 인간들에게는 기쁨이 된다.
쌤통 심리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더 극대화된다. 가장 대표적인 조건은 불행을 겪은 사람이 그럴만한 행동을 했을 때이다. 스미스 교수는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성범죄자를 잡아라'를 예로 든다. 아동 성매매를 시도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검거하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동 성범죄자들은 용서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시청자들은 아동 성범죄자들의 변명이나 주춤거림 같은 행동을 보며 "당해도 싸다"고 비난했다. 쌤통 심리가 극대화된 것이다.
AOA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몰라서 생긴 사건?도 마찬가지다. 설현과 지민은 원인제공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과 관련된 역사 문제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폭탄과 같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르는 것도 모자라서 일본식 이름을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은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운명이 찾아와야 한다.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겪는 나쁜 운명을 보며 쌤통이라고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나쁜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쁘다고 믿으면 그만이다. 나쁘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하나라도 생기면 사람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쌤통 심리가 고개를 든다. 설현과 지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원인제공자다. 탓할 사람은 자신뿐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좋은'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듯이, '나쁜' 사람은 '나쁜' 운명에 휘말려도 싸다고 믿는다. 극히 선한 행위에 큰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듯이, 극히 나쁜 행위에는 최고의 형벌을 내려야 마땅하다. 이런 쾌감은 미학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나쁜 행동이 나쁜 결과로 이어져 균형이 잡히면 일종의 시적 정의가 이루어진다.(127p)
AOA를 예로 들었지만, 쌤통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디 흔하다. 김성근 감독의 디스크 수술 소식에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쌤통'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원칙을 무시한 야구, 선수를 혹사시킨 감독이니 개인적인 불운이 닥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전형적인 쌤통 심리였다. 사촌이 땅을 사기만 해도 배가 아픈 게 정상이다.
<쌤통의 심리학>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 본성에 자리 잡은 쌤통 심리를 자세히 묘사한다. 그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이것만 해도 재밌게 읽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발췌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남보다 우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가능할 때마다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코미디언인 고(故) 조지 칼린은 바로 이런 열망을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나보다 느리게 차를 모는 사람은 멍청한 놈, 나보다 빨리 모는 사람은 미친놈 아닌가?"
44p
전쟁의 목적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적군이 자기 국가를 위해 죽게 만드는 것이다.
-조지 패튼 미 육군 장군
72p
보통의 스포츠 팬은 상대 팀 선수의 부상을 기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켄터키 대학의 찰스 후글랜드, 라이언 슐츠와 동료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듀크대학 농구 팀의 스타 선수가 경상 혹은 중상을 당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익명으로 밝히도록 했다. 농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쌤통 심리를 전혀 갖지 않고, 부상당한 선수에게 아주 큰 동정을 표했다. 열혈 팬들의 반응은 아주 달라서, 경상이든 중상이든 기뻐하는 경향이 있었다.
85p
집단 간의 역학 관계에는 경쟁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스포츠에서 라이벌 팀들 간의 경쟁은 이미 정해진 일이지만, 집단 간 관계의 심리학에 따르면 경쟁 심리가 증폭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개인들보다는 집단 간의 경쟁이 더 치열했다.
87p
우리는 남들에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들이 태만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예방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더 통쾌하게 여긴다. 우리의 이런 성향을 앨리크는 '결과 편향'이라고 부른다.
147p
연예 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댄 스니어슨과 조시 워크는 직설적인 평을 남겼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이라도 얻자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 말도 안 된다. 우리가 그 민망한 장면들을 보는 건, 촬영되지 않는 우리의 소소한 삶이 조금이나마 더 낫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184p
제이 리노는 디지털 시대가 코미디에 대한 접근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세대가 달라져도 유머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소재는 바뀔지 몰라도 그 밑에 깔린 원리는 똑같다. 리노는 이 점을 아주 잘 요약했다. "뚱뚱한 부자가 캐딜락에서 내리다가 진흙탕에 빠지는" 모습은 언제나 웃음을 끌어낼 것이다.
206p
질투 대상의 불행을 지켜보는 것이 통쾌하긴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웬만해서는 불행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더 좋은 운을 타고났다. 고통받는 쪽은 우리다. 우리의 꿈이 뭐든, '그들'이 그 꿈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질투가 수면 아래로 숨어버리면, 억울함과 분노가 명백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 질투를 앞지르면서 복수와 그 사악한 전율을 즐기는 행태를 나무랄 데 없이 지당한 행동으로 정당화시켜버린다.
235p
쌤통 심리는 관찰자의 행동도 유도할 수 있다. 쌤통 심리의 근원에 질투가 있으면 수동과 능동의 경계가 흐려진다. 남의 불행을 지켜보며 즐기다가 남의 불행을 바라게 되고, 그다음엔 그 불행을 직접 유발하려는 의지가 생긴다.
256p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개가 있다. 언제든 끈에서 풀려날 수 있는 짐승이. 그것이 바로 하우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인간은 분열된 존재다. 상황만 맞으면, 그리고 충분한 격려를 받으면 그 개는 미쳐 날뛴다. 하우어는 수용소에서 화창한 날에 햇볕을 쬐며 앉아서 그의 몸을 기어 다니는 이를 뭉개 죽이며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했다. 이를 죽이는 건 자기보다 약한 생물에게 가하는 약간의 복수였다.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남의 고통에서 만족을 찾을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모든 밧줄이 풀렸고 짐승들이 사납게 날뛰었다.
2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