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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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에서, 남자들의 보호, 관리 아래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호, 관리를 받으며 그 여자들 나름으로 살아남으려고 머리 쓰고 애쓴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녀의 자아는 찢겨 두 갈래로 갈라진다.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당하는 부분이라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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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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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강남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은 한국 사회에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질문을 무시하거나 듣지도 못한 채 지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질문이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순번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질문에 대한 고민과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질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은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에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제 어떤 경계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몇 년 간 일베에서 시작해 메갈리아로 이어진 논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 불길이 나의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그 경계가 우리 일상에 돌출한 지점이다. 이제는 질문에 대해 고민할 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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