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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암호문이 아니라
암호문 생성기에 가깝다"

열 번째 리뷰_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

by 이기자

미술관을 좋아하지만 사실 예술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좋은 전시회를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찾아다니지만 사실 '이 좋은 작품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페르난도 보테로 전시회를 보러 가기 전에 추상화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고 갔지만, 전시회장에서는 그저 멋지다는 말만 반복하고 왔을 뿐이다.

좋은 작품은 마치 암호문 같다. 악명 높은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로 만들어진 암호문처럼 좀처럼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이런 고민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던져준 책이 아닐까. 진중권은 "작품은 에니그마로 생성한 암호문이 아니라, 수많은 암호문을 생성해내는 에니그마 머신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중권은 미술 작품에 정해진 해석을 붙이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술 작품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보다는 관객이 자신만의 고독하고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오히려 미술 작품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우리 안에서 살아있게 된다.


작품은 에니그마로 생성한 암호문이 아니라, 수많은 암호문을 생성해내는 에니그마 머신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진중권은 12편의 미술 작품을 통해 미술사의 발전 과정을 조명한다. 12편의 미술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그 자체로 인간 문명의 진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우석의 제거'(1494년)은 르네상스 시기 인간들이 자신의 내면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을 보여준다. 학창시절에 익히 배웠듯이 르네상스는 인간성의 복원을 특징으로 한다. 인간의 지적능력, 창조성이 빛나던 고대 시기의 재현이다. 하지만 밝고 빛나는 곳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광기는 창조성과 뗄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본성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광기를 포착하고 그것을 그림 속에 풀어놓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우석의 제거

"가장 지독한 정신착란에서 생겨나는 현상은 이미 존재의 본질 속에 비밀처럼, 접근할 수 없는 진리처럼 숨어 있었다. 사람이 광기의 임의적 특질을 노출시킬 때, 그는 세계의 어두운 필연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릴 때, 그 꿈속에서 어슬렁거리는 동물은 사실 그의 본성이고, 지옥의 무자비한 진리를 노출시키는 것이다."(94p)


그런가 하면 르네상스 시기 조반니 프란체스코 카로토는 '아동'을 발견한다. 그가 1515년에 그린 '그림을 든 빨간 머리 소년'은 누가 보아도 첫 눈에 장난꾸러기 아이를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 종목은 종교화였지만, 후대에 기억되는 그의 대표작은 이 작품이다. 바로 이 작품이 처음으로 아이를 아이답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꼬마는 어린이 특유의 장난기 머금은 웃음을 통해 성인과 구별되는 아동만의 매력을 그대로 발산한다. 아이는 더 이상 풍속화의 조연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아이는 아예 회화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어린이를 회화의 유일한 주제로 내세운 이 작품은 '아동의 탄생'이라는, 근대의 서구 사회에서 진행된 문명사적 과정의 예술적 증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동이라는 개념은 사실 근대의 발명품일 수 있다. 아동은 예로부터 존재했지만, 아동에 대한 관념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진중권은 "아동은 어느 정도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이 그림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서툰 솜씨의 그림이 등장한다. 장 뒤뷔페의 '자화상'(1947년)과 같은 그림이 무려 400년의 시간 차이가 난다. 이런 일종의 역행은 '의지'의 표명이다.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은 "미술사를 움직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라고 말한다. 현대의 화가들은 아이의 그림에서 새로운 예술의지를 느끼고 주목한다. "예술에는 근원적 시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민속학 박물관이나 아이들의 방에서 볼 수 있다"는 파울 클레의 말과 일치한다.

조반니 프란체스코 카로토, 그림을 든 빨간 머리 소녀


진중권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어린이를 스승으로 삼은 모더니즘의 강령은 예수의 말을 연상시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장 3절)


예술에는 근원적 시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민속학 박물관이나 아이들의 방에서 볼 수 있다



자연의 발견도 근대적 회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조르조네의 '폭풍우'(1508년경)은 스물여덟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복잡한 이 작품에서 진중권은 자연의 발견이라는 관점에 주목한다. 미술사학자 벤투리는 도시 위에 몰아치는 폭풍우에 주목하는데, 조르조네가 그린 하늘에는 번개가 하늘을 가르는 순간이 나온다. 지극히 사실적인 하늘의 묘사에 신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조르조네, 폭풍우

진중권은 "과거에 인간은 신을 통해서 자연을 지배하려 했다. 하지만 신이 떠난 세상에서 인간은 이제 자연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연 자체가 회화의 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르조네는 풍경을 회화의 독립적인 제재로, 즉 회화의 또 다른 영웅으로 만든 최초의 화가에 속한다"고 말한다.



신이 떠난 세상에서 인간은 이제 자연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



진중권이 소개하는 마지막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개'다. '검은 회화'의 대표작인 개는 고야의 황폐한 내면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진중권의 표현대로 은둔을 위해 마련한 별장의 벽에 그린 작품이니 작가의 내면세계를 당연히 잘 표현했을 수밖에.

프란시스코 고야, 개

진중권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일화를 곁들인다.


이 유대인 철학자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개 한 마리가 날마다 수용소로 찾아왔다고 한다. 나치의 인종주의자들은 물론 유대인 포로들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인간으로 대한 것이 바로 그 개. 유대인들은 날마다 개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 개에게서 인간에게서는 찾아보지 못한 인간성을 확인했다. 어느 날 독일군 병사가 개를 쫓아냈고, 개는 다시 수용소 근처로 오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치 독일의 마지막 칸트주의자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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