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번째 리뷰_나라 없는 사람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영국에 버트란드 러셀이 있고 아일랜드에 오스카 와일드가 있다면 미국에는 커트 보네거트가 있다. 보네거트가 말년에 쓴 <나라 없는 사람>은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고민해 왔던 문제들에 대한 소박한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보네거트는 평생 동안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었고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로 불렀다. 동시에 웃음의 힘을 믿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글을 썼다. 그렇지만 보네거트가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천진난만한 그의 글은 사실 '좌절이나 놀라움 또는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반응'이기도 했다.
여든두살(책을 집필했을 당시 보네거트의 나이)의 미국 할아버지는 21세기 세상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지만, 그가 살고 있는 21세기 미국은 그때보다도 오히려 참혹한 세계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보네거트는 부시 대통령이 저지르는 일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을 '신발 폭탄이 두려워 공항에서 알몸 수색을 당하는 나라'라고 지칭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이 책의 제목은 <나라 없는 사람> 일뿐이다.
러셀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종종 읽게 된다.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심오한 고민은 없지만 대신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짧은 통찰이나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낄낄거리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 오묘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보네거트의 이 책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책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가 있지도 않고 대단한 진리가 담겨 있지도 않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의 귀퉁이를 접게 된다.
읽으면서 밑줄을 긋게 됐던 부분들을 발췌해봤다.
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개는 문이 열리지 않으면 문을 긁거나 땅을 파거나 으르렁거리는 따위의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좌절이나 놀라움 또는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군인은 정말로 어린애다. 군인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군인은 존 웨인이 아니다. 핵심을 깨달은 나는 그제야 자유롭게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린애였다. 나는 <제5도살장>에 '어린이 십자군'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담배를 피우다 죽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 담배의 한쪽 끝엔 불이 있고 반대편 끝엔 바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지기를 바란다.
'그가 신의 존재를 믿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어리석고 파괴적인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음악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재즈 역사가이자 훌륭한 작가이고 무엇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앨버트 머리가 한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노예제-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할 잔학 행위-가 번성했던 기간의 평균 자살률은 노예보다 노예 소유주 쪽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머리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노예들에겐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노예 소유주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남자에게, 만일 우리가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마인 양 여겨지면, 1차 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898년에 마크 트웨인이 쓴 <신비한 이방인>을 읽어보라고 써보냈다. 그 소설에서 트웨인은 우리의 기준뿐 아니라 그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정도로 확실하게,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나는 절필한 SF 소설가이자 나의 친구인 킬고어 트라우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가 물었다.
"상원 연설 봤는가?"
"봤지. 영국의 위대한 사회주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우리 지구에 대해 한 말이 번쩍 떠오르더군."
"뭐라고 했는데?"
"달 위에 인간이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지구를 정신병원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네. 그런데 부시는 병균이나 코끼리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었어. 우리 인간들 이야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