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번째 리뷰_밤의 바다를 건너
시인이 쓴 산문을 좋아한다. 오르한 파묵은 시인을 신이 말을 걸어주는 자라고 말했다. 시인의 단어는 신의 언어다. 시인은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고심에 고심을 한다. 어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절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단어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이들인 만큼 시인의 산문은 접하기 쉽지 않다.
많은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서조차 말을 아낀다. 시인의 말은 한 두 줄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희덕 시인은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던, 살의 일부가 되어버린 갑각의 관념들이여, 이제 나를 놓아다오."라고 말했다.
한강 시인은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라고 했다.
류시화 시인은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했다.
서점에서 시집을 꺼내 들면 시인의 말부터 확인해 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아름답고 의미심장하다. 조원규 시인의 시집 <밤의 바다를 건너>는 시인의 말을 읽고는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인이 쓴 산문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조원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된다. 그가 쓴 시인의 말에는 시 그 자체에 대한 정의가 들어가 있다.
"이 글은 편지처럼 써야 합니다. 저는 말을 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두 손을 펼쳐 얼굴 하나가 얹힐 자리를 만들면 어디선가 한 얼굴이 다가와 빛나고, 때로 위로받아야 할 제가 문득 위로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굴이 있습니다."
"이건 편지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작은 감회는 '응, 나 왔어'라고 말하는 데 있지요."
"신비란 기적이나 묘하고 현란함이 아니라, 단지 강물이 오늘의 강물처럼 흐르게 되는 일, 아프게 막힌 길을 뚫고 가까운 곳을 마치 먼 곳처럼이나마 도달하고야 마는 성의 또는 사랑입니다."
조원규 시인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시 스승들의 조언을 한 마디씩 시인의 말에 담았다. 이어령 선생님은 "한 말씀하려고 생각하면 안 되네."라고 했고, 김열규 선생님은 "자네는 앞으로 외로울 거야."라고 했다. 오세영 선생님은 "철학이 없으면 곤란하네."라고 했고, 이성복 선생님은 "지금 그대로 있어요!"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김승희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란, 세상에 피를 수혈해주는 일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피를 수혈받는 일이다. 조원규의 시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고요하면서 섬세하고 가끔은 잔혹하다. 비가 내리는 밤은 시를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다. 장마철을 앞두고 몇 권의 시집을 쟁여놓는다면 조원규 시인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무표정도 표정이라지만,
미약한 움직임도 없는.
신호등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고도의 집중과도 같은.
발산하지 않는
읽히지 않는, 그런 얼굴.
이제 설명은 끝났고
하려던 말은 다음과 같다.
그 무표정한 집중이
내겐 억제된 증오처럼 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군요
또다른 푸른 울타리 속에서
만나지길 바라요
알아볼 수나 있을까. 어쩌면
네, 아마도. 꼭.
소통되지 못함이 차라리 희망이라는 생각, 해본 적 없나요, 그대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 하지 못하는 말이, 혹은 나의 그런 말들이
그릇된 혹성의 대기에서 불붙어 가장 깊은 바다로 추락하는 비행체처럼
뜻 없이 내리꽂히면 겨를도 없이 절망적이어서 무엇인들 아름다울
그런 혹시, 본 적이 없나요,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