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이 떨어진 밤, 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7번째 리뷰_공중전과 문학

by 이기자

아우슈비츠의 고통은 인류 전체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지만,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 무너진 독일의 도시들에 대해서는 독일인들마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독일인으로 태어났지만 평생 독일 땅에서 살아본 적 없는 '자발적 망명자' W. G. 제발트는 공중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가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한 네 차례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공중전과 문학>은 집단적인 망각을 깨부수려는 한 작가의 시도이자 역사의 굴레에서 도대체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한 작가의 대답이기도 하다.


영국 공군이 주도한 무차별 폭격으로 2차 세계대전 말미에 131개 독일 도시가 파괴됐다. 독일 민간인 60만 명이 이 공중전으로 희생됐고, 주택 350만 채가 파괴되었으며, 폭격으로 인한 피난민이 750만 명에 달했다. 영국 공군의 출격 횟수는 40만 번이었고, 독일 도시에 떨어진 폭탄의 무게는 총 100만 톤에 이르렀다고 제발트는 적는다. 이 무자비한 공중 폭격의 처음은 영국 공영방송인 BBC를 통해 생중계됐다. BBC 기자 윌프레드 본 토머스는 랭커스터 중폭격기에 탑승해 라디오를 통해 폭격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이제, 우리 앞에는 암흑과 독일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전투기 굉음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적막한 불꽃놀이 쇼 한복판을 향해 곧장 날아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베를린에 폭탄을 떨어뜨릴 겁니다."


CNN의 걸프전 생중계의 역사는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되는 폭격 현장. 이 무차별 폭격은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와 그에 못지않은 영국 공군 사상자를 낳았다. 전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로지 파괴만 할 뿐이다. 이 책은 영국 공군의 무차별 폭격과 독일 민간인 희생자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합군을 비난하는 것으로 오독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제발트가 말하는 것은 전쟁의 허무함이다. 제발트는 할버슈타트의 기자가 미국 제8공군의 폭격수 프레더릭 L. 앤더슨을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한다. 앤더슨은 자신이 싣고 간 폭탄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국에서 그렇게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폭탄을 생산했는데, 실질적으로 이것을 산이나 벌판에 던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파괴를 위한 전쟁만이 남는다. 전쟁은 적국을 물리치기 위한 방어 전략에서 출발하지만 막판에는 파괴를 위한 파괴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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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가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망각'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전쟁의 피해, 공중전의 피해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공중 폭격으로 희생된 60만 명의 독일 민간인을 누구도 추모하지 않는다. 전후 독일인들은 공중전의 희생자들을 집단적으로 잊기로 한 것처럼 굴었다. 그 폐허를 하루빨리 흙으로 덮어버리고 새로운 건물들을 쌓아 올리려고 했다. 제발트가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이 집단적 망각이다. 제발트는 이 책의 여러 부분을 통해 독일인들이 공중전을 어떻게 잊으려고 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빌리 루퍼트라는 사람이 시정 의뢰를 받아 만든 그 소책자에는 수많은 사진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 소개하는 캐머러 가의 사진 두 장도 그 책에 실려 있는 것들이다. 이 사진에 담긴 완전한 파괴는 집단적 광기의 참담한 결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재건의 첫 단계라 할 그런 것으로 보인다.(17p)


온 나라가 처한 물질적이며 도덕적인 파멸의 실상은, 어느 누구를 가릴 것도 없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에서 서술이 금기시됐던 것이다. 독일 국민 대다수가 함께 경험한 극에 달한 파괴의 참상은 그렇게 일종의 터부에 묶여, 스스로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가정사의 비밀로 남겨지고 말았다.(22p)


경제 기적의 촉매로 작용한 것은 순수한 비물질적인 차원이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마르지 않는 심리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그 원천은 우리의 국가가 파묻힌 시신들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모두가 비호하는 기밀이다.(25p)


전쟁이 끝났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승자에 대한 치욕감과 반항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사실상 자연스러워 보이는 반응은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었다. 1946년 가을 스웨덴 신문 '엑스프레션'의 독일 특파원으로 취재 중이던 스티그 다게르만은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보통 속도로 십오 분간 함부르크의 한 구역인 하셀브룩과 란트베어 사이의 달밤 풍경을 가로질러 가면서, 이 거대한 지대, 전 유럽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그 폐허의 들판에서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이 열차도 독일의 여느 열차와 마찬가지로 승객들로 가득했으나 그 누구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그가 창밖을 내다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외국인임을 알아챘다고 했다.(48p)


노사크는 공습이 있은 며칠 뒤 함부르크로 돌아가는 길에, "잔해가 즐비한 황무지 한복판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집 안에서 유리창을 닦는 여자를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신나간 여자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아이들이 앞마당을 청소하면서 갈퀴로 고르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다른 이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이 마치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공습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근교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자기 집 발코니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우리는 어떤 곤충 군체가 그들의 이웃집이 무너져내렸다 하여 슬픔으로 마비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감 능력을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1943년 7월 말 함부르크에서 소시민들이 매일의 일정한 다과 시간을 고수했던 것은 무엇인가 소름끼치게 부조리하고 추잡한 면을 지니고 있다.(62p)


제발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집단적인 망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치인들과 군인들, 기업인들, 그리고 평범한 국민들 모두가 참상을 잊으려고 해도 작가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기억하고 묘사하고 글을 쓰는 것이 작가들의 일이다. 제발트는 공중전의 참상을 애써 외면한 독일문학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강하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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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독일과 닮아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 기적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이상하리만큼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그 저변에 집단적 망각이 있다는 점이 놀라울 만큼 똑같다. 한국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을 모두 밀어내면서 성장했다. 발을 맞춰서 걷지 못하면 탈락시켰다. 뒤에 처지는 사람을 위해 잠시 멈추고 손을 내밀기보다 그들을 떨구고 속도를 높이면서 달려왔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나서 그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랬고, 군사정권 시절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희생됐으며,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광화문은 평화롭기만 했다.


한국의 집단적 망각이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서 다를 것이 거의 없고, 한국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 이 말은 우리가 한 번 일어난 일을 망각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소설이나 문학의 역할은 기억을 도와주는 것이다. 역사가 놓쳐 버린 것들을 문학은 기록할 수 있다. 제발트를 읽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귀 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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