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번째 리뷰_소년이 온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해야 하는 소설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하지만, 한강의 밀도 있는 문장 덕분에 그 날의 광주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중학생 동호와 그의 친구 정대, 그리고 동호와 함께 있었던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광주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주도로, 관동과 난징으로, 보스니아로, 모든 신대륙으로 확장한다. 이 소설은 결국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한강의 고민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95p)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212p)
어떤 군중은 잔인하고 어떤 군중은 숭고하다. 어떤 군인은 특별히 잔인하고 어떤 군인은 특별히 소극적이다. 이 '어떤'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한강은 이 질문의 대답을 광주에서 찾으려고 했다. 한강은 군인들이 쏜 총에 맞고 실종된 친구 정대를 찾아 나선 동호를 따라간다. 그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은숙을 따라간다. 또 다른 살아남은 사람들, 살아남았기 때문에 매일의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이들을 따라간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은 답을 찾았을까. <소년이 온다>는 끊임없이 묻는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거예요?
학살자 전두환의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 걸까요?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건가요?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인가요?
정답은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p)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어떤 군중이, 어떤 군인이 될 것인가.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 지금 당장은 누구도 모른다. 평소에는 선한 웃음을 짓고 있던 사람이 선택의 순간에는 이웃을 짓밟고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할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선택의 순간이 평생 찾아오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이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바로 내일 아침에 선택의 순간이 닥칠 수도 있다.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게 된다. 한강은 끊임없이 스스로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강은 2009년 1월의 새벽을 떠올린다.
"저건 광주잖아."
불타는 망루를 바라보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p)
질문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죽음이 우리를 편하게 해주기 전까지 계속해서 싸우고 대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