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어린아이처럼 고독해져야 합니다

70번째 리뷰_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y 이기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이름만으로도 시인이다. 한글 타자연습을 할 때면 언제나 '별 헤는 밤'을 골랐다.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때는 릴케의 시를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어쩐지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정말로 시인의 이름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읽게된 릴케의 시는 아름다웠지만 조금은 어려웠다. 다시 시간이 더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고독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안다.

시인을 꿈꾸는 젊은 청년 카푸스에게 릴케가 보낸 편지들은 고독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장교가 되기로 한 카푸스. 갈수록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며 두려워하는 카푸스의 모습은 나를 닮았고, 우리를 닮았다. 그런 카푸스에게 릴케가 건네는 조언은 한 세기를 뛰어넘어 가슴에 와 닿는다.


릴케가 카푸스에게 쓴 1904년 8월의 편지 말미에는 릴케의 고백이 나온다. 릴케는 자신의 고난과 슬픔이 당신(카푸스)의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위로의 말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적었다. 충고의 형식은 고백이 되어야 한다고 소설가 김훈이 말했다. 릴케의 편지와 위로의 말들은 고백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순수하게 다가온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근본적인 메시지는 고독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릴케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멀어져 간다는 것은 당신의 주변이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며 "당신의 성장을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처럼 고독해지라고 격려한다.


우리의 삶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릴케는 "우리는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삶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무게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내와의 편지에서 한 음악인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음악인은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아마도 생계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릴케는 그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 그는 "그런 곤란은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라오. 차라리 그 사람이 궁핍에서 빠져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소. 음악가들은 그들의 예술로 쉽게 얻을 수 있는 해결방법 때문에 출구가 많은 법이오. 다만 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베토벤이나 구도자로서의 바하처럼 해결을 거부하고 경멸할 때만이 그들은 성장할 수 있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육체는 부피만 커질 뿐"이라고 말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을 쉽게 얻으려고만 든다. 그러나 사랑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앳되고 조급한 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릴케는 사랑할 능력을 키워나가며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자 시험이며 과제"라며 "젊은 사람들은 혼신을 다해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청춘은 언제나 지루하고 닫힌 기간이므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라고 이야기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죽음에 대한 긍정은 우리가 기꺼이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이다. 우리는 죽음을 터부시 하지만 죽음만큼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도 없다. 릴케는 "죽음은 우리들의 친구이며 삶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말하지만 죽음은 원래 긍정만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삶의 심오한 곳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릴케는 조언한다. 죽음은 삶의 추동력이다. 우리가 죽음과 화해한다면 말이다. 릴케는 현대의 종교가 죽음을 지나치게 터부시하고 공포감을 조장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릴케의 편지들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갖고 있다. 편지란 발신인과 수신인의 상호교류다. 릴케는 오래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글들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읽는 우리도 아직 그 글들에서 희망을 찾고 삶을 살아나갈 을 얻는다. 좋은 글, 좋은 편지란 이렇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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