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제7의 인간'을 읽고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전 세계 언론들이 보인 즉각적인 반응. 이슬람, IS, 튀니지, 이민노동자. 이번 테러는 IS와의 전쟁에서 파생된 예측할 수 없었던 비극이고, 거기에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는 분석들.
그렇지만 종교는 방아쇠에 지나지 않는다. 31세의 튀니지계 이민노동자가 트럭을 몰고 사람들 사이를 질주하게 만든 것은 알라도 아니고, IS도 아니고, 결국은 우리가 채택한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수많은 이민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였다. 무한대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불경기와 인플레에 대비해 유연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민노동자들이 바로 그 이해관계에 부합했다. 그들은 필요한 때에는 수입할 수 있었고, 필요 없으면 바로 귀국시키면 그만이었다. 존 버거는 1970년대 시트로엥사에서 노동자를 뽑을 때 방금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증거로 차표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상기한다. 프롤레타리아로서 경험이 없는 이들, 이민노동자의 힘으로 지금의 유럽이 만들어졌다. 현지 출신 노동자들은 이민노동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고 그들을 돕지 않았고(이민노동자가 노조 회비를 내는 정식 노조원이었는데도), 이민노동자들이 현지 출신 노동자보다 정신병 발병 비율이 두세 배나 높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런 통계는 이민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근거로 활용됐다. 그렇지만 존 버거의 지적대로 그런 통계는 "이민노동자들이 불안과 불행으로 두세 배나 더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국에 남은 이들보다 진취적이고 용기있고 총명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을 고용한 유럽 선진국의 공장주들보다 개인적인 역량은 더 뛰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시킨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지금도 이런 부조리는 계속된다. 이민노동자를 배출하는 국가와 받아들이는 국가가 바뀔 뿐이다. 이민노동자가 만들어야 하는 공산품과 그들이 고국에 보내는 화폐의 단위만이 바뀔 뿐이다. 이민노동자를 일하는 로봇 혹은 가축으로 보는 시선은 수십 년 전과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이 유럽보다 안전한 이유, 혹은 아시아 지역이 유럽보다 안전한 이유는 우리가 속한 지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직 성장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갈등이 심화될 이유가 없었다. 한국의 기업과 공장은 필요한 노동력을 얻어 성장하고, 이민노동자들은 필요한 돈을 얻어 고국으로 송금하는 시스템이 문제없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의 이민노동자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한 것과 같은 이유다.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체 단계에 들어선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유럽에서와 같은 테러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트럭을 몰고 사람들 사이로 질주하는 이민노동자가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외치든 "아멘"이라고 외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사건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예고되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작용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이런 끔찍한 테러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복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테러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니스에서 살해당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아침에 잠을 깨고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보이는 테러 소식들은 지구 반대편에서의 일상마저도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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