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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엘벡 소설의 출발점은 버림받은 아이의 절망찬 외침

열네 번째 리뷰_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by 이기자

"소설은 풍속의 변천이 가져온 참담한 파탄을 보여줘야 한다"

-발자크


미셸 우엘벡은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소립자'는 1998년 발표되자마자 프랑스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문예지 '리르'가 소립자를 1998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반면, 공쿠르상 심사위원회는 소립자를 수상 후보작에 올리지도 않았다. 물론 공쿠르상 심사위원회는 2010년 뒤늦게 미셸 우엘벡에게 공쿠르상을 안긴다.

소립자가 나온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책이 지적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바꿔 말하면 소립자의 문제제기가 그만큼 현대사회의 폐부를 저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브뤼노 비아르 프로방스 대학 교수는 "우엘벡 소설의 출발점은 버림받은 아이의 절망찬 외침"이라고 말한다. 소립자는 두 남자, 이부(異父)형제의 이야기다. 미셸과 부르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들을 챙기지 않는다. 미셸과 부르노는 자신들만의 나름의 방법으로 거친 세상을 이겨낸다. 과학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미셸은 주위와의 인관관계를 단절한 채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고, 감상적이고 성적인 자극에 매몰돼 있던 브루노는 사랑이 없는 끝없는 포르노를 찾아다닌다. 우엘벡은 미셸과 브루노를 통해 현대 서구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브루노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어 보인다.


우엘벡 소설의 출발점은 버림받은 아이의 절망찬 외침


소립자가 프랑스에서 논쟁적이었던 까닭은 우리가 흔히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치관에 대담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1968년 5월 운동은 68혁명이라고 불리며 프랑스 사회뿐 아닌 전 세계의 전환점이 된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새로운 사회가 열린 것이다. 자유와 평등, 성의 해방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변화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나라들은 때로는 반동으로 때로는 시샘 가득 찬 눈으로 프랑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우엘벡은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와 성적인 해방이 진보의 결과물인가. 그 결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삶,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엘벡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독설로 화답한다. 서구사회의 진보라고 생각했던 새로운 가치관들은 사실 퇴행일 뿐이라는 것이 우엘벡의 생각이다. 그는 브루노를 통해 이 모순들을 지적한다.

movie_image.jpg 영화 소립자의 브루노와 미셸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가치가 점차 파괴되어 온 것은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었어. 통상의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들이 성적인 쾌락을 물리도록 만끽하고 난 뒤에 잔혹 행위라는 더 폭넓은 쾌락으로 관심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는 거지. 1990년대의 '연쇄 살인자들'은 1960년대 '히피들'의 사생아였어. 1945년 이후 서구 문명에 나타난 그런 움직임은 힘에 대한 야만적인 숭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고, 몇 세기에 걸쳐서 도덕과 법의 이름으로 세워진 규범들을 거부하는 행위일 뿐이었어. 그들은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했고, 모든 사회 규범에 맞서 개인의 완전한 권리를 주장했어. 그들이 보기에 도덕과 애정과 정의와 연민 등이 이루어 내는 사회 규범은 한낱 위선일 뿐이야."(228p)


"1967년 12월 14일, 프랑스 국회는 피임의 합법화에 관한 뇌비르트법을 제1차 심의에서 통과시켰다. 아직 사회보험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경구 피임약이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또한 이른바 '성적인 해방'의 혜택이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예전에 그 성적인 해방은 때때로 공동체주의적 꿈의 형태로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적인 해방은 공동체주의의 실현이기는커녕, 개인주의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보인다. 부부와 가족은 자유주의 사회 내부에서 원시공산주의의 마지막 섬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성적인 자유는 개인을 시장 원리로부터 지켜주는 그 마지막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파괴의 과정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126p)


"참된 사랑과 불장난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1960년대 내내 잠복해 있다가, 197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다. '우리는 결혼 전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런 물음에 대해 절대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언론 매체들은 미국 쪽에서 온 쾌락주의적이고 섹스 지상주의적인 선택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섰다. 이 잡지들은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반 자본주의를 표명하고 있었지만, 유대 기독교적 가치를 파괴하고 젊음과 개인의 자유를 예찬한다는 점에서 오락 산업과 한통속이었다."(61p)


1990년대의 '연쇄 살인자들'은 1960년대 '히피들'의 사생아였어


미셸과 브루노를 버린 어머니는 68세대였다. 우엘벡은 이부 형제의 어머니를 통해 68세대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지 보여준다. 우엘벡이 좌파 진영에서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꿈꾼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중에게 지지를 받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좌우 이념을 떠나 '버림받은 아이의 절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225px-2008.06.09._Michel_Houellebecq_Fot_Mariusz_Kubik_12.JPG 미셸 우엘벡

미셸은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낸다. 68세대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새로운 유전적 형질을 가진 인류다. 구 인류는 신 인류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구 인류는 미셸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인다. 인간들은 자신의 자리를 신 인류에게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을 다른 종으로 대체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다른 종으로 거듭 태어나는 최초의 동물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우엘벡의 소설은 서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상식이라는 믿음에 대한 해부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엘벡의 글은 더 없이 따뜻하다. 풍자와 독설, 비관으로 가득 찬 소설이 이렇게나 따뜻하다는 것은 희망의 빛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우엘벡은 68세대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지만 그 자식 세대에 대해서는 연민과 사랑의 끈을 내밀고 있다.


미셸 우엘벡을 사랑하는 모임을 이끄는 미셸 레비 여사는 "우엘벡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전한다. 지나친 자유에 휩쓸려 진심으로 남을 사랑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린 과거 세대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진정 어린 열망을 갖고 있는 청년들, 새로운 세대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 인류 탄생의 선결조건이다.


메모


두달 뒤에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샀다. 하나밖에 없는 채널에 이제 막 광고가 출현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1969년 7월 21일 밤에, 미셸은 인간이 달의 표면에 첫걸음을 내딛는 장면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세계 전역에 걸쳐서 6억명의 시청자가 미셸과 동시에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그 중계 방송은 아마도 과학 기술에 희망을 걸었던 서구 문명의 제1기가 정점에 달하는 사건이었으리라.(39p)


인간이 하나의 동물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자각하는 것은 먼저 고통을 통해서다.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완전하게 자각하는 것은 '거짓말'을 매개로 할 때이다. 개별적인 삶은 사실상 이 거짓말과 혼동될 수 있다. 그날 밤 아나벨은 몇 시간 만에 인간의 삶이 거짓말들의 끊임없는 연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았다.(84p)


유일하고 장엄한 창조 행위는 없었다. 선택받은 백성도 없었고, 선택받은 종이나 행성도 없었다. 우주 도처에서 대체로 실패로 끝난 확실치 않은 시도들이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 모든 시도는 너무나 단조로웠다.(135p)


서구 사상계는 중대한 지각 변동을 맞고 있었다. 푸코와 라캉, 데리다, 들뢰즈의 저작은 수십 년에 걸쳐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어 오다가 갑작스럽게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사상은 어떤 새로운 철학 사상에 길을 열어 주기는커녕, 인문 과학을 표방하는 지식인 전체에 대한 불신만 심어 주었다. 과학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의 기준이었다. 심리 문제나 사회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오로지 과학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내심으로 믿고 있었다.(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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