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_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반드시 받으리라 생각하지만 올해가 바로 그때 일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하루키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하루키가 이뤄낸 문학적 성과를 폄훼하는 사람도 많다.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야설이나 쓰는 일본 작가에게 무슨 노벨상이냐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하루키는 정말로 야설이나 쓰는 작가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그렇게 읽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건 하루키의 초기작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무관심, 허무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그런 무관심과 허무함을 성적인 묘사로 풀어내다 보니 하루키를 가볍게 읽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하루키 월드는 변화했다. 하루키 연구자들은 하루키 월드가 크게 '디태치먼트(detachment)'에서 '커미트먼트(commitment)'로 변화했다고 평가한다. 초기작들은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허무함이 주된 정서였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사회에 대한 참여의식과 관계맺기가 주된 정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쓴 첫 번째 논픽션이다. 1995년 3월 20일에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진리교의 사린 테러 사건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옴진리교는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에 따라 도쿄 지하철에 화학무기인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출근 시간으로 번잡한 월요일 아침의 지하철이었다. 13명이 죽었고 6300명이 피해를 입었다. 하루키는 마침 일본에 귀국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년에 걸쳐 60여명의 피해자와 관계자를 인터뷰했고 그 결과물이 <언더그라운드>다.
하루키가 쓴 후기를 보면 작가로서의 고민이 느껴진다.
"일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스스로를 모색하는 시기는 적어도 지금은 끝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맴돌았다. 내 몸속에서 가치기준의 '줄 바꾸기' 같은 것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이제 그리 젊지 않은 나이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회 속에서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할 세대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으리라."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한 변화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하루키가 이룬 하나의 업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루키가 기록한 사린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은 하나하나가 가치 있다. 사린 사건을 다룬 언론매체의 기사나 뉴스에는 없는 것이 하루키의 기록에는 담겨 있다. 그건 바로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다.
큰 사건의 피해자들은 언론매체를 피한다. 이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언론매체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피해자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것은 언론매체가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서 떠들어봐도 세상에 전달되는 것은 편집된 목소리 뿐이다. 하루키는 "일반 매스컴의 문맥이 피해자들을 상처받는 순진한 일반시민이라는 이미지로 고정시켜버린다"라고 지적한다.
하루키의 기록에서는 피해자들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휴일 사이에 낀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택한 평범한 시민들. 그들의 출근길이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그려진다. 더 이상 그들은 얼굴 없는 피해자들이 아니다. 각자의 삶이 있는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다가온다.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다 사린을 들이마신 도요타 도시아키 씨는 "옴진리교를 믿는 인간들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풍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지하철에서 일을 하면서 승객들과 접하다 보면 그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입니다. 역에 있다 보면 인간의 어두운 면, 음성적인 면이 잘 보이는 법이지요. 이를테면 우리가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데, 방금 청소한 자리에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카타 고이치 씨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큰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걷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는 계단을 오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주변이 저녁나절처럼 캄캄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우유를 샀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ap-pm에 들어가서 우유를 샀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왜 우유를 사려 했을까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하다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사린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와다 요시코 씨는 이렇게 말한다.
"희생자가 거기에서 얼마나 괴로워하며 죽었는지, 매스컴은 조금도 보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은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픽 쓰러져 그대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신문기사도 이거나 저거나 모두 마찬가지죠. 저도 검찰청에 가서 검사가 읽는 조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남편이 굉장히 괴로워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 얼마나 허망한 마음으로 죽어갔는지를..."
재앙을 다루는 방식은 정말 중요하다.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그러하듯이 하나의 스캔들이나 가십거리로 재앙을 다루면 많은 사람이 관람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뿐이다. 그렇지만 재앙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피해자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나야지만 우리는 재앙이 우리의 곁을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키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하루키가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이 책이 수상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