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_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
"나의 목표는 불신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IS 소녀 단원의 영상을 봤다. 소총을 들고 온통 검은 부르카로 몸을 감싼 그 작은 아이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소총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S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그건 종교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교리를 가르치는 모든 종교는 IS처럼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일수록 그 가능성이 더 크다.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는 그런 의미에서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신에 대한 확신이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다.
카플란이 쓴 <유럽은 어떻게 관용 사회가 되었나>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유럽의 '관용' 문화를 조명한다. 똘레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관용 문화는 선진 사회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카플란이 파헤치는 관용 문화의 역사는 '선진' 사회보다는 '동물의 왕국'을 떠올리게 한다. 수백 년의 역사에는 오로지 힘의 논리뿐이다.
기독교와 가톨릭으로 양분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피로 점철돼 있다. 교회와 성당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는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기독교와 가톨릭은 같은 뿌리를 공유하지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종교다.
종교운동의 선봉장이었던 칼뱅은 "신의 영광이 위험할 때에는 우리의 기억에서 서로 간의 인간애를 말소시켜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을 박해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의 행동"이라고 가르쳤다. 가만히 놔두면 그들은 지옥불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박해해서 개종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 사회에도 이런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지하철에 갑자기 올라타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 번화가에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어 다니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관용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용을 배척한다. 퓨리턴이었던 대니얼 코드리는 "관용은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국가를 파괴하려는 최후의 필사적인 계획"이라고 가르쳤다. 종교에 관용이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관용을 가르치는 현대의 교회와 성당들은 21세기에 맞춰 종교적인 가르침을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신의 목소리는 이렇게 시대의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나 허망한 목소리인가.
카플란은 그리스도교가 자행한 끔찍한 범죄들의 목록을 나열한다. 기독교와 가톨릭으로 나뉜 유럽 대륙은 수백 년에 걸쳐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가톨릭 농민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이웃의 기독교 농민들을 습격했고, 기독교 농민들은 가뭄이 들면 가톨릭 농민들을 죽였다. 성 주간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힘을 합쳐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그렇다면 관용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관용은 도무지 서로가 서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작됐다. 기독교와 가톨릭은 세력의 균형을 이뤘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도무지 몰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카플란은 이런 균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종교와 다른 종교는 틀린 종교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사회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용인한다는 것이 관용의 시작이었다."
관용이 유럽 대륙 전반으로 확산된 것은 사람들의 물질적인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농업 대신 상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중심 종교가 다른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전에는 가톨릭을 믿는 지역과 기독교를 믿는 지역이 단절돼 있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이교도와의 교류가 불가피해졌다. 런던의 치안판사인 슬링스바이 베텔은 "종교문제에서 양심을 강제하는 것은 교역에 가장 큰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일반 대중은 여전히 이교도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사법관과 판사들은 그런 사건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관용의 등장은 힘의 균형 덕분이지 사람들이 갑자기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거나 착해졌다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세기에 종교적인 불관용의 문화가 극심해졌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관용이 등장했던 배경인 힘의 균형이 21세기 들어서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백날 이슬람교를 욕하고 IS를 비난한다고 해서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세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