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마지막 장이란 걸 깨닫는 순간
여름도 함께 끝이났다

80_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by 이기자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만큼 아름다운 첫 소절. <만년>의 다자이 오사무만큼 몰입도 좋은 문장.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국내 출판한 김영사(비채)의 책 소개다. 설국과 만년에 비할 문장이라니. 코웃음이 나왔지만 밝고 경쾌한 책표지에 끌려 책을 덥석 집었다. 그리고.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라는 첫 문장과

"장작이 타고, 타다 무너지는 것을 싫증도 내지 않고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의 머리 속에는 이 소설의 문장만이 가득했다. 한 호흡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건축학도 사카니시 도오루가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진 무라이 선생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면서 겪은 일을 다루고 있다. 건축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무라이 선생의 건축관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근본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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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익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손이 닿는 부분은 현관 손잡이 빼고는 나무가 좋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현관문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니까 금속을 쥐는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지. 밖에 있는 문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으면 실내가 밖으로 삐져나온 것 같아서 뭔가 쑥스러워."


쓰는 사람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건축.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 안에 녹아드는 건축. 바꿔 말하면 이건 건축관인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무라이 선생이라는 가상의 건축가가 드러내는 인생관. 그리고 그의 의지를 계승하는 사카니시나 다른 직원들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책에서 무라이 선생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아스플룬드는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건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가들이다.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연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중시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작은 폭포 위에 그대로 건물을 지은 낙수장은 그의 건축관을 대표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탈리에신이라는 도제교육식 캠프로도 유명한데,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라이 사무소의 여름별장도 탈리에신을 본뜬 것이다. 아스플룬드는 스톡홀름 도서관 설계로 유명한 스웨덴의 건축가다. 이들의 건축관은 당대에 유명한 반 데 로에나 르 꼬르뷔지에와 사뭇 달랐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바라보는 건축이었다고 할까. 무라이 선생의 건축관도 경쟁자인 후나야마와 달리 과거를 바라본다.

(아스플룬드의 스톡홀름 도서관에 관한 글 - https://brunch.co.kr/@missj1227/26)


그렇지만 그들은 과거에 매몰돼 있지 않다. 뒤를 돌아보는 그들의 시선이 따뜻할 뿐, 그들은 현재에 살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아스플룬드의 건축이 21세기 들어서도 그 명성이 퇴색되지 않는 것처럼 무라이 선생의 건축관, 그리고 그것을 닮은 인생관도 구태의연하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하고 단단하다. 잘 지은 건축물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안락함과 편안함을 준다. 무라이 선생이 추구한 건축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7.png 책 속 여름 별장의 모델인 요시무라 준조의 '숲 속의 집'. /김영사 블로그

이 책의 미덕은 아름답고 담백한 문장에 있다. 1958년에 태어나 2012년에 첫 소설을 발표한 늦깎이 작가의 문장에는 세상 만물에 대한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녹아 있다. 주인공 사카니시는 새를 사랑한다. 새의 울음소리를 멀리서도 알아듣고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무라이 선생의 연인인 후지사와 씨는 넓은 농장을 운영한다. 수많은 꽃을 관리한다. 말벌에 쏘여 위험한 지경에 빠진 적이 있었으면서도 집 근처에 생긴 말벌집을 없애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자연히 말벌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위험해 보이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이야기는 담담하게 흘러가고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을 그저 묵묵히 살아나갈 뿐이다. 그런데도 다소 두껍다고 느껴지는 책을 한 호흡에 읽게 된다. 그건 이 책이 아름답고 담백한 문장으로 쓰였으면서도 이따금 정신을 잃을 것 같이 향기롭고 풍요로운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평범한 삶에 티핑포인트 같은 것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고 멀리서 바라보면 그런 삶은 무채색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런 삶에도 각각의 향기가 있고 각각의 소리가 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그런 평범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낼 줄 안다.


어떤 건축물이든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사람이다. 궁궐 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녹슬고 낡아 무너져 내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움막도 사람이 산다면 하루고 이틀이고 끈질기게 견뎌낸다. 이 책은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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