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노동자들은 왜 진보정당을 외면하나

79번째 리뷰_위건 부두로 가는 길

by 이기자

노동계급은 왜 진보 정당을 찍지 않을까? 중산층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진보 정당을 찍지 않을까? 선거 때면 되풀이되는 물음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의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셋의 청년이었던 조지 오웰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영국 북부 탄광 지대로 떠났다. 20세기 최고의 르포르타주의 하나로 꼽히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책은 영국 북부 탄광 지대에서 조지 오웰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한 1부와 영국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 외면받는 이유를 적은 2부로 나뉜다. 영국 북부 탄광 지대인 요크셔와 랭커셔 지역은 과도한 산업화로 환경이 파괴되고 노동계급의 생활은 피폐해져 있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이자 중산층의 일원이라고 평가하는 조지 오웰에게 노동계급의 생활은 충격적이었다. 조지 오웰은 기차를 타고 슬럼 지역을 지나다 창 밖으로 본 풍경을 묘사한다.


그녀의 얼굴은 슬럼가의 젊은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유산과 고역 때문에 스물다섯인데도 마흔은 돼 보이도록 지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순간 동안, 내가 익히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모진 추위 속에, 슬럼가 뒤뜰의 미끌미끌한 돌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운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지를, 내가 알듯 그녀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은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을 보다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직접 탄광에 들어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지옥과도 같은 탄광이라는 명칭처럼 탄광 노동자들의 삶은 영국 남부의 부르주아나 일반적인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조지 오웰의 르포가 날카롭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본 것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꼼꼼하게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광부들의 임금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가계부까지 들춰내서 보여주고, 노동계급의 주거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수백 가구의 주거 환경을 메모했다.

x9788984313712.jpg

이런 열악한 환경의 슬럼 지역을 철거해 교외지역으로 노동계급을 옮기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조지 오웰은 그런 식의 재개발이 "사람들을 덜어내어 일터에서 1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으로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2016년 한국의 이야기인 듯 하다.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분석은 2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어째서 좌파·진보 지식인과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조지 오웰은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좌파·진보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을 공격한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만 인용해 본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그들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똑똑한 '우리'가 하층 계급인 '그들'에게 부여할 일련의 개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으로 단련된 사회주의자를 감정이라곤 없는 냉혈한으로 본다면 잘못이다. 착취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증거는 많이 못 내놓는다 해도,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는 아주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니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수용자들에 대한 수용'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다. 심지어 '동지'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을 불신하는 데 적지만 한몫을 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 중에 용기를 내어 대중 집회에 갔다가 자의식 강한 사회주의자들이 의무적으로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제일 가까운 맥줏집으로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는 파시즘을 이해할 필요도 있으며, 그러자면 파시즘이 상당한 해악뿐만 아니라 약간의 장점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파시즘의 근간이 되는 정서, 즉 사람들을 처음 파시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정서는 그리 한심한 게 아니다. 파시즘 운동을 어느 정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말단의 파시스트 당원이 반듯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전통과 질서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시즘을 일단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요령 없는 사회주의자들의 선전만 잔뜩 듣다보면 파시즘을 유럽 문명의 장점을 지킬 마지막 방어선으로 보게 되기가 아주 쉽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지금의 한국 사회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8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이 책에 묘사된 80년 전의 영국과 지금의 한국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진보 정당들이 그들의 지지기반이어야 할 노동자들과 저소득층으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20110406183000374-e1431049333380.jpg 조지 오웰

이 책은 좌파 성격의 사회과학서적을 출판하는 레프트 북클럽의 요청으로 쓰였다. 완성된 원고를 받아본 레프트 북클럽의 출판사 대표는 2부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서문을 덧붙여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 대표인 빅터 골란츠는 "2부 내용에서 저자와 논쟁하고 싶은 구절이 백 군데도 넘는다"고 썼다. 지금 한국 사회에 조지 오웰과 같은 글을 누군가가 쓴다면 소위 진보 지식인, 좌파 지식인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책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가 아름다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