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개가 아름다운 이유

78번째 리뷰_개

by 이기자

보리는 냄새로 세상을 배운다.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이 보리의 선생님이다. 보리는 진돗개다.


김훈이 2005년에 쓴 장편소설 <개>를 읽었다. 김훈은 인간 사회를 그리기 위해 진돗개 '보리'를 등장시켰다. 김훈은 개 이야기를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보다 시각, 후각, 청각이 수백 배 발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의 내면에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삶의 질감이 들어있다. 다만 언어가 없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도대체 김훈은 얼마나 자세히 들어가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만으로도 그의 책은 생생한 묘사로 넘쳐나는데 거기서 수백 배는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니. 고개를 저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진돗개 보리는 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인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보리의 엄마는 보리까지 다섯 형제를 나았다. 첫째는 오래지 않아 죽었다. 날 때부터 다리가 부러져 있던 첫째는 날이 갈수록 말라갔고 결국 보리의 엄마는 자신이 낳은 첫째를 자신이 먹는다. 보리는 그 광경에서 엄마가 느꼈을 상실의 아픔을 떠올리지만, 주인할머니는 보리 엄마를 매질한다. 보리는 인간의 무신경함을 탓한다.


주인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먹는다면 그야말로 잡아먹는 것이지만 우리 엄마가 맏형을 삼킨 것은 잡아먹은 게 아니다. 배고파서 한 짓이 아니고,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서 한 짓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가 있었겠는가. 태어나보니 개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인 것이다.


댐이 지어지면서 물이 차오르고 마을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도시의 첫째 아들네로 떠나고, 보리는 어촌에 사는 둘째 아들이 데려간다. 보리의 새주인은 2톤짜리 작은 고깃배를 탄다. 보리는 새벽이면 주인을 따라 선착장에 나가고, 아침이면 둘째 아들의 초등학생 딸을 따라 학교까지 간다. 보리는 냄새로 세상을 배우고 네 다리의 굳은살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고 탄력을 더해간다. 보리는 가난하지만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가는 주인집 식구들을 사랑한다.


배에서 내릴 때 주인님의 몸에서는 경유 냄새가 났다. 주인님의 배에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인님의 몸과 주인님의 배가 한가지라는 걸 알았다. 주인님은 배 안에서 늘 엔진을 주무르고 있었으므로 경유가 타는 냄새가 몸에 젖어든 것이었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도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보리에게도 시련과 아픔의 시간이 찾아온다. 개도 슬프고 아프다.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주인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다. 보리는 주인이 묻힌 무덤을 파헤친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것을 개는 이해하지 못한다. 둘째 아들의 무덤을 지키던 할머니는 보리를 매섭게 때리지만 이내 보리를 끌어안고 통곡한다.

김훈_-_개.JPG

흰순이는 보리가 사는 어촌의 윗동네에 사는 개다. 앞다리에서는 배추밭 냄새가 났고 등에는 닭똥 냄새가 묻어 있었다. 보리는 그 냄새를 맡고 흰순이가 윗동네의 농사짓는 마을에 사는 것을 알았다. 흰순이에게서 나는 비리고 향기로운 냄새에 반해 비오는 날에 그 먼 거리를 달려 찾아간다. 흰순이는 죽는다. 둘째 아들이 죽었듯이 흰순이도 죽었다. 둘째 아들이 아이들을 남기고 죽은 것처럼 흰순이도 아이들을 남기고 죽었다. 둘째 아들은 바다가 데려갔지만, 흰순이는 기르던 주인이 잡았다. 옆집 아들의 입대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보리는 멀리서 흰순이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그 날 이후로 보리는 흰순이가 살던 마을에 가지 않는다. 흰순이의 털을 태우던 연기의 노린내를 떨쳐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리는 계속 살아나간다. 나고 자라고 아프고 슬프고. 그렇지만 보리는 모든 것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보리는 다만 언어가 없기에 말을 할 수 없을 뿐이다. 아니, 보리의 말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리는 저무는 바다를 향해 길게 짓는다.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우.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다. 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한 마리의 반려동물을 길러야 한다면 개보다는 고양이를 택할 것이다. 개에 대한 감정은 고양이보다 조금 덜하고 말보다는 조금 더한 정도. 딱 그만큼의 친밀감을 느끼는 정도다.


다만 이제는 개가 얼마나 아름다운 동물인지 알 것 같다. 김훈의 <개>는 아름다운 소설이고, 개라는 동물은 아름다운 소설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김훈의 <개>가 아름다운 소설이고, 개라는 동물이 아름다운 소설에 잘 어울리는 이유는 개가 언제나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에는 반짝하며 빛나는 구석이 있다. 때로 그 빛남은 잘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지만, 개는 땅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것들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주목받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는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늙어간다. 그런 삶이라고 해서 유명인들의 화려한 삶보다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따금 그런 삶이 초라하고 형편없다고 여겨서 감추려고만 든다. 사람인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가 그렇게 숨어버리면 찾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개는 우리가 숨긴 것들을 찾아낸다. 아름다운 그것을 찾아서 들고 온다. 개가 아름다운 이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페미니즘에 대한 우에노 치즈코와 조한혜정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