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페미니즘에 대한 우에노 치즈코와 조한혜정의 대화

77번째 리뷰_경계에서 말한다

by 이기자

우에노 치즈코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에서 자주 보인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이 히트를 치면서 저자인 우에노 치즈코 교수까지도 유명 인사가 됐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쓴 책이라면 특유의 날카롭고 폐부를 찌르는 독설과 현실 감각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불쾌한 책일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불쾌한 경험인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불쾌한 이유와 우에노 치즈코의 책이 불쾌한 이유는 다르지 않다.


내가 우에노 치즈코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그녀와 조한혜정 교수가 함께 쓴 <경계에서 말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10년 전에 나는 연세대학교의 학부생이었고 조한혜정 교수가 진행하는 문화인류학 수업에 흥미를 느꼈다. 조한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녀의 책을 몇 권 읽어보게 되었고 <경계에서 말한다>도 그중 하나였다.

경계에서_말한다.jpg

<경계에서 말한다>는 조한 교수와 우에노 치즈코 교수가 주고 받은 서신을 묶어낸 책이다. 그들의 서신은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에 동시에 연재됐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두 교수는 방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미 제국주의와 세계화, 지식인의 역할, 산업화와 내셔널리즘, 아시아적 공동체의 구현, 아이를 낳아 기르는 문제와 노인을 양육하고 보살피는 문제. 이들은 많지 않은 지면에서 정말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하나하나가 허공에 붕 뜨지 않고 긴밀하게 이어진다. 글쓰기 자체만 놓고 봐도 대단한 역량이었고, 그 내용의 깊이까지 더해지면서 책을 읽는 내내 밑줄을 긋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이제 10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조한 교수는 그 사이 정년을 맞이해 일선에서 물러났고, 우에노 치즈코 교수도 명예교수라는 호칭이 붙은 걸로 보아서는 마찬가지 신세인 듯하다. 실로 많은 것이 변했다. 둘이 서신을 주고 받았을 때는 2003년이었다. 조한 교수가 쓴 마지막 편지는 10년 뒤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지만 정작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더 후퇴한 것 같아 노교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조한 교수는 2004년 치러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제2야당이 되고, 여성운동을 했던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만큼의 숫자를 이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녀는 이런 변화가 고무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아는 우리는 이 편지를 읽으며 씁쓸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 이 책, 조한 교수와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서신이 동시대성을 읽지 않은 것은,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10년 전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다시 걸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우에노.jpg 우에노 치즈코 교수. /출처 HPK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10년 전 우에노 치즈코라는 이름은 일군의 연구자 집단에게나 알려진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대형 서점의 전면에 그녀의 이름이 적힌 책이 배치돼 있다. 뒷걸음질 쳤을지언정 운동화는 더 좋은 걸로 장만하게 됐다고 보면 될까. <경계에서 말한다>를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만 파악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건 너무 협소하다. 페미니즘은 근대 사회에서 국가에 질식당하고 현대 사회에서 소비에 유혹당했던 개인을 되살리려는 기획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위한 운동인 셈이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사회가 멸망해도 나는 살 것이다', '나라가 망해도 나는 살아간다', '가정이 붕괴해도 나는 살아갈 것이다'.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렇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무엇보다도 '계속 살아남기 위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계가 멸망할 때 남자만 멸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멸망할 때는 우리 여성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서 남자들도 구원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 조국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을 닮았고, "나는 여성해방운동 덕분에 여자임을 다시 선택했지만, 일본인임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한 다나카 미츠의 말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이 책에 나오는 말들이다.


조한 교수는 "나는 한국의 여자들이 그렇게 드셀 수밖에 없게 된 근대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대로 계속 가면 '남자가 지배하는 사회, 여자가 지배하는 가정'이라는 이중적 구조가 형성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남녀 모두가 아주 불행하게 될 것임을 예고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고는 그대로 맞아떨어졌지요."라고 말한다.

조한.jpg 조한혜정 교수. /출처 희망제작소

그러니까 지금 2016년의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고통받고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걸 깨달은 것 뿐이다. 1번이든 2번이든 어느 쪽에 표를 던져도 이런 불행한 삶은 해결되지 않으며, 방학에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거나 여름휴가에 파리의 에펠탑에 올라가 본들 이런 삶이 바뀌지는 않는 것이다. 눈과 귀를 닫고 다시 1년 뒤의 휴양지를 생각하며 불행한 삶을 계속 견뎌내든지 호주든 캐나다든 조금 여유로운 삶이 가능한 곳으로 이민을 떠나든지 아니면 자살을 하든지, 이런 선택지뿐이라는 걸 이제는 다들 인정하게 된 것이다.


"약자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설계하는 기회"

조한 교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부단히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becoming)에만 가치를 두었던 사회에서 존재 자체를 중시하겠다(being)는 사회로의 방향 선회.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라 '소통적 합리성'을 살리는 사회를 이루어 가자는 모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낸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아마 이것이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조한 교수의 대답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페미니즘에 동의한다.


* 표지 이미지 출처 MAREKULIASZ VIA GETTY IMAGE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들은 왜 사람들을 죽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