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번째 리뷰_인 콜드 블러드
1959년 11월 14일,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시골마을 홀컴에서 일가족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장주였던 클러터 씨와 그의 부인, 클러터 부부의 아들 캐년과 딸 낸시까지 모두 네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범인은 리차드 히콕과 페리 스미스. 이들은 교도소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였다. 클러터 씨네 집에 있다는 금고를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지만 금고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클러터 씨 가족을 모두 엽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현금 40달러와 망원경, 라디오 하나를 훔쳐서 달아났다.
트루먼 카포티는 이 사건을 전한 기사를 뉴욕타임즈에서 읽고 친구 하퍼 리와 함께 직접 홀컴 마을로 향했다. 이후 카포티는 6년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했다. 사건 관계자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사건 조사와 관련 기사를 수집하고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다녔다. <인 콜드 블러드>는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픽션'은 아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논픽션 노블'이나 '세계 최초의 팩션'이라고 불린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르포르타주와도 비슷하다.
500쪽이 넘는 긴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 갖고 있는 잔혹함 덕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실존했던 이들이다. 카포티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들의 일상과 행동 하나하나를 묘사했다. 클러터 씨 가족의 마지막 하루를 묘사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그들은 그날 밤 자신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히콕과 스미스는 조금씩 홀컴 마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말을 아는 것은 카포티와 독자들 뿐이다.
카포티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진지한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작품은 소설가 아주 똑같을 거야. 한 가지 다른 점만 빼면, 그 안에 적힌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이라는 거지."
<인 콜드 블러드>는 잔혹한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소설이지만, 인간 군상에 대한 심도 깊은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어째서 일면식도 없었던 일가족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었을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가. 카포티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한다.
스미스의 누나는 감옥에 갇힌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간의 약점을 통제할 수가 없어. 이건 펀 언니나 우리를 포함한 다른 수십만 명에게도 다 적용되는 얘기야. 너의 경우에는, 네 약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낄 수는 있어. '한 번 체면을 구긴 건 부끄러운 일이 아냐. 체면을 구기는 짓을 계속 하면 그게 부끄러운 거지.'"
히콕의 엄마는 아들의 재판을 보고는 기자에게 이렇게 전한다.
"실라, 그런 이름이었는데, 실라는 그 일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어쨌든 이 여자는 비난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표정이었죠. 내가 딕을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요. 어쩌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죠. 단지 뭐가 잘못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억하려고만 하면 머리가 아파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시골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아요. 우리 집에도 좋은 시절이 있었지. 나는 딕에게 폭스트롯 추는 법을 가르쳤어요. 나는 언제나 춤을 미친 듯이 좋아했거든. 소녀시절에는 그 춤이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딕은 춤을 정확하게 익히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그 애는 착했어요. 그 애는 천성은 참 착한 어린애였는데."
스미스는 자신을 면회 온 군대 시절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군인들이 잠을 설치는 것도 아니잖아. 군인들은 살인을 하고 훈장을 받아. 캔자스의 착한 사람들은 나를 살해하고 싶어하겠지. 그리고 교수형 집행인은 기꺼이 그 일을 맡을 거고.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 부도 수표를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지. 이것만 기억해. 나는 클러터 씨 가족을 1시간 정도 알았을 뿐이야.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알았더라면 다른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르지. 이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방식대로라면, 사격장에서 표적을 고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야."
클러터 가족의 마지막 하루를 전하는 것처럼 히콕과 스미스의 마지막 모습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들이 클러터 일가족을 살해한 지 6년이 지난 1965년 4월 14일, 히콕과 스미스는 교수형으로 삶을 마쳤다. 히콕이 0시 41분에 먼저 사형 당했고, 스미스는 1시 19분에 사형 당했다. 히콕은 교수대로 향하면서 자신을 붙잡은 형사 듀이를 보고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내가 한 짓을 사과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 겁니다. 심지어 적절치 못한 행동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할 겁니다. 사죄합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인 콜드 블러드>를 다 읽고 나면 살인범 중 한 명인 페리 스미스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의 인생이 처참하기도 하거니와 작가인 카포티의 애정이 소설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카포티와 함께 홀컴 마을에도 다녀왔던 하퍼 리는 그에게 페리 스미스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카포티의 대답이 마음에 와 닿는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카포티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원작자로 유명세를 떨쳤고 <인 콜드 블러드>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하나의 소설도 끝내지 못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카포티로서는 페리 스미스의 삶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가해자의 심리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에 <인 콜드 블러드>를 읽었다. 얼마 전에 읽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연장선상에서 고른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놀라울 만큼 똑같은 진술을 발견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37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딜런이 결코 괴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딜런은 우리 집에서 폭력을 배우지 않았다. 소외, 분노, 인종주의도 우리 집에서 배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냉담한 무관심도 배우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아는 사실이다. 나는 딜런이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유치원 끝나고 통통한 손을 잡고 프로즌 요거트를 사러 가며 딜런을 사랑했다. 닥터 수스 그림책 <내 주머니에 워킷이 있어!>를 수천 번 읽어주면서 사랑했다. 딜런의 앙증맞은 야구 유니폼 무릎에 묻은 풀 얼룩을 내일 입을 수 있게 문질러 빨면서 사랑했다."
그리고 클러터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히콕의 엄마도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죠. 단지 뭐가 잘못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억하려고만 하면 머리가 아파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시골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아요. 우리 집에도 좋은 시절이 있었지. 나는 딕에게 폭스트롯 추는 법을 가르쳤어요. 나는 언제나 춤을 미친 듯이 좋아했거든. 소녀시절에는 그 춤이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딕은 춤을 정확하게 익히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그 애는 착했어요. 그 애는 천성은 참 착한 어린애였는데."
도대체 끔찍한 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어떻게 태어나고 만들어지는가.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떻게 나뉘는가.
두 권의 책으로는 이 복잡한 질문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