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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합니까

75번째 리뷰_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by 이기자

딜런 클리볼드는 미국 콜로라도 리틀턴에 살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리틀야구단에서 투수로 활약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자존감이 강하지만 항상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줬고, 부모와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볼 정도로 예술적인 감수성도 뛰어난 편이었다.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콜로라도와는 기후가 딴 판인 애리조나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하고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딜런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그녀는 딜런에게 닥터 수스 그림책 <내 주머니에 워킷이 있어!>를 수천 번은 읽어주었고, 유치원이 끝나면 딜런의 통통한 손을 잡고 프로즌 요거트를 사러 갔다고 말한다.


이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이 바로 딜런 클리볼드다. 1999년 4월 20일, 딜런은 자신의 친구인 에릭 헤리스와 함께 권총, 반자동소총, 사제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 고등학교에 난입해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들은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했다. 그리고 둘은 자살했다.

나는 가해자의.jpg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딜런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참사 이후 17년 만에 펴낸 책이다. 그녀는 처음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딜런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딜런이 그 참사의 주범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면서 제발 자신의 아들이 어서 죽기만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딜런이 죽었고, 그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난 뒤에는 아들이 죽기를 바랐던 자신을 끝없이 자책한다.


여론은 싸늘했다. 사람들은 딜런이 괴물이라고 비난했고, 그런 괴물을 낳아 기른 가정에는 무언가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딜런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은 타임지의 표지에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이웃의 괴물'이었다. 딜런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는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들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녀는 아직도 그 모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고민의 결과물이다.


나는 순전히 딜런 클리볼드가 괴물이라는 가정 하에 이 책에 관심을 가졌다. 수많은 살상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라고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 이른바 '가해자 서사'에 대한 관심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이런 생각은 순전히 가해자들은 평범한 이들과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추정에서 기인한다.


그렇지만 수 클리볼드의 책은 '가해자 서사'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건의 인과관계에서 파생되는 가해자가 있을지언정 '가해자'로 태어나고 자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요컨대 1999년 4월 20일의 사망자는 13명이 아니라 15명이라는 것이다. 추가된 두 명은 사건의 범인인 딜런과 에릭이다. 그들은 자살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탁월하다기보다는 절절한 책이다. 참사 전후 그녀의 일기들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특히나 아이를 둔 부모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카를로스 로차다는 "비평가로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로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미국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이 미국인들에게 준 상처는 굉장히 깊은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인 한국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이 책을 거리감을 가지고 읽게 해준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수 클리볼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세계 어디에서든 통용된다. 우리가 아이의 뇌건강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의 자살 충동, 살해 충동을 우리가 알아차릴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사진.jpg 딜런이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레고를 하는 모습.

딜런 같은 아이는 괴물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대답은 '아니요'다. 그녀는 "딜런이 악마이고, 병들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의 아이가 바로 코앞에 무기를 모아놓는데도 생각 없는 부모가 내버려둔 경우라면, 이 끔찍한 비극이 위층 포근한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과 평범한 엄마 아빠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우리와는 먼 일이 된다. 딜런이 괴물이라면 콜럼바인 사건은 처참할지언정 이례적인 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적는다.


많은 이들이 뉴스에서 다루는 끔찍한 사건의 범인들이 다른 별에서 왔겠거니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의 가족 중에 그런 결심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중략) 딜런을 괴물로 그려 콜럼바인의 비극이 보통 사람이나 가족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안도감은 거짓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런 식으로 달랠 수 없는, 더욱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취약함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자 한다.(117p)
과학박람회에서 상을 받고, 육상대회 메달을 휩쓸고, 최고의 음악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성생활이나 약물에 탐닉하고 위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빛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한 만큼 부모가 자기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숨기는 일도 잘했다.(123p)

수 클리볼드의 책이 의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을 품고 있다. 그들의 미래를 낙관하기도 하고, 잘못된 행동이나 징후를 발견하고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모른다.

"딜러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산을 움직여서라도 고치려 했을 것이다. 에릭의 웹사이트나 총기에 대해 알았다면, 딜런의 우울증에 대해 알았다면 다르게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길렀고,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기르는 최선의 방식은 알지 못했다."

수 클리볼드의 고백은 많은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자신들의 생각대로 재단하고 판단해버린다. 실제 아이의 모습과 그 판단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언젠가 더 큰 파열음이 발생할 것이다.


이 책은 자살에 대해서도 다른 책에서 다루지 않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른바 자살-살인이다.

"자살과 살인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 대부분은 살인과 무관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살 성향 때문에 그럴 때가 많습니다."

어느 심리학자의 지적은 딜런을 떠올리게 한다. 딜런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 우울증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총격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살은 두 가지 범주가 있다. 나 혼자 죽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세상 모두를 죽이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모두를 죽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죽는 것이다. 이런 성향이 자살-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딜런이 그 사례이다. 수 클리볼드가 자살 방지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있는 죽고 싶은 충동, 그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끔찍한 범죄와 총기 난사 사건을 막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딜런과 콜럼바인을 막기 위해서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는 충격적이다. 내 자식을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자식을 아는 게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렵게 생각되는 낯선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나 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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