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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각성제가 되어준 15개의 음악들

74번째 리뷰_청춘을 달리다

by 이기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음악작가인 배순탁은 2014년 자신의 첫 번째 음악 에세이 <청춘을 달리다>를 낸 뒤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 위로요, 상업주의의 극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낭만의 음악은 '긍정주의'를 음악적으로 전이한 버전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따위의 사탕발림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아니, 천 번을 흔들리면 공황이 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왜 "나는 청춘이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되뇌면서 일방적으로 참아내야 하나.


배순탁은 <청춘을 달리다>에서 이소라의 음악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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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은 1977년 7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드림시어터와 신해철을 좋아하고, 잉베이 맘스틴의 기타 속주를 동경하며 밴드를 만들었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작가 중 한 명이다. 드림시어터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라이브를 자랑하고 있고, 신해철은 그 사이 세상을 떠났으며, 잉베이 맘스틴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배순탁이 만든 밴드는 해체됐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여전히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배순탁의 첫 번째 음악 에세이인 <청춘을 달리다>는 그가 40대를 목전에 두고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지나온 길을 걷고 있는 청춘들에게 말을 건다. 그는 자신의 수줍음을 감추려는 듯 자신이 가장 아끼는 15명의 뮤지션을 내세워 청춘에게 다가간다. 때로는 신해철, 때로는 이승열, 때로는 이소라, 때로는 유희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뮤지션이 등장하지만 배순탁이 청춘에게 하고 싶은 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이따위 거짓 위로와 무책임한 현실 회피 대신 배순탁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여기에 15명의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이 자연스레 녹아든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서정의 음악은 듣는 이들에게 아픔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아픔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그것을 견뎌내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마취제가 아닌 각성제로써의 음악이다. 이소라의 음악이 그러하다."


M1 이소라 - 별

https://youtu.be/XsJQuHn2724


그러니까 이 책은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뮤지션들에 대한 음악 에세이이면서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2016년의 청춘들에게 바치는 배순탁의 위로사인 셈이다. 배순탁의 위로는 그 자신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고백에서 출발하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과는 결이 다르다. 충고의 형식은 고백이어야 한다고 했나.


배순탁이 소개하는 15명의 뮤지션은 하나 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이들이다. 크라잉 넛이 독보적이듯이 윤상이 독보적이고, 신해철만의 철학이 있듯이 이소라만의 아우라가 있다. 배순탁은 15명의 뮤지션에 대한 자신의 추억과 감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M2 신해철 - 수컷의 몰락 part 1

https://youtu.be/HOCmlDJNpsA


신해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적어도 나에게 신해철이라는 존재는 숭고한 영웅이었다. "숭고는 설득하지 않는다. 도취시킨다." 롱기누스의 <숭고론>에 나오는 구절처럼, 나는 무작정 신해철이라는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 고백하기도 하고.


전설로 남은 유앤미 블루의 이승열을 설명할 때는 몰락의 에티카를 인용한다.

"세계가 그들을 파괴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지키려고 한 마지막 하나는 결코 파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포기할 줄 아는 자들, 그들은 지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을 선택하면서 이기는 자들이다."


한국이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로큰롤 하나로 버텨내고 만 크라잉 넛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사뭇 비장미도 느껴진다. 배순탁은 이렇게 적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가드를 바짝 올리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견뎌내는 와중에도 입가에는 묘한 웃음을 띄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해서는 삶이라는 상대가 만만하게 보지 않겠는가. 설령 바닥까지 떨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끝끝내 사수해야 할 최후의 보루, 그건 삶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따스한 유머감각일 것이다.


M3 윤상 - 마지막 거짓말

https://youtu.be/gZWRW1oK9BY


윤상과 이승환을 설명하면서는 발터 벤야민을 끌어온다.

"예술에 있어서의 혁신은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고 기술에서 나온다."

이제 일반 대중에게 윤상은 러블리즈의 삼촌팬, 이승환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뮤지션으로 여겨지지만 배순탁은 그들의 완벽에 대한 노력에 주목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1집과 5집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화장법에 비유하는 감각을 선보이는가 하면,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음악이 현실을 피해가려 할 때 결국에 그건 파시즘을 미학적으로 다루는 일일 뿐"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M4 허클베리 핀 - 쫓기는 너

https://youtu.be/GGU_CQpjDhU


이 책에 소개된 뮤지션의 팬이라면 글을 읽어가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추억을 살포시 꺼내어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과거를 추억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15명의 뮤지션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청춘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혹은 지나가고 있는지.


<달팽이>의 노랫말의 일부만 살펴봐도, 영락없이 이건 현실에 절망한 이십대를 위한 송가다. 90년대라고 해서 지금과 큰 차이가 있었겠나. 이십대는 언제나 꾸준히 절망하고, 그 절망을 연료로 삼아 기성세대에 반항하더니, 안락하지만 불안한 삼십대의 일상을 거친 후,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기성세대가 되어 새롭게 등장한 이십대를 향해 혀를 끌끌 찬다.(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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