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번째 리뷰_보이지 않는 도시들
책 한 권의 내용을 설명하기란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 책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같은 믿기지 않는 예술적 창작물일 때에는 전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고어 비달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들이 등장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그 자체다.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는 작가가 지어낸 가상의 것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이자 그리워하는 과거, 잊고 싶은 악몽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제국을 여행하면서 그가 보고 들은 도시들의 이야기를 쿠빌라이 칸에게 들려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55개의 도시는 모두가 작가가 창조해낸 것들이다. 그러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건 내가 어제 겪었던 이야기인데, 지난밤 꿈에서 보았던 광경인데, 하는 식의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책은 아무런 내러티브가 없으면서도 지금껏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완벽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대담한 소설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 않았다. 도시에 관한 일종의 잠언집으로, 결국엔 이 책을 읽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권하면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소개한다.
도시를 갈망했을 때 그는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시도라는 그러니까 그의 꿈에 나타난 도시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꿈속의 도시에서 그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시도라에 노년이 되어 도착합니다. 광장에서는 노인들이 빙 둘러 앉아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구경합니다. 그는 노인들 옆에 나란히 앉습니다. 욕망은 이미 추억이 되었습니다.
(제1부 도시와 기억2)
자이라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 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등의 높이와 그 가로등에 목매달아 죽은 찬탈자의 대롱거리는 다리에서 땅까지의 거리 사이의 관계, 그 가로등에서 앞쪽 난간으로 묶어놓은 줄과 여왕의 결혼식 행렬을 장식했던 꽃 줄 사이의 관계... 이런 관계로 도시는 이뤄집니다.
(제1부 도시와 기억3)
저도 지르마로부터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창문 높이에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선들, 선원들의 몸에 문신을 새겨주는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 무더위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뚱뚱한 여자들로 만원인 지하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정을 함께한 이들은, 맹세코 도시 첨탑 사이를 날던 비행선은 한 대밖에 보지 못했으며, 바늘과 잉크와 구멍 뚫린 문신 도안을 의자 위에 늘어놓던 문신 새기는 사람도 딱 한 명, 전철 승강장에서 부채질하던 뚱뚱한 여인도 역시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기억은 필요 이상의 것들로 넘칩니다. 기억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기호들을 반복합니다.
(제1부 도시와 기호들2)
마르코 폴로는, 머나먼 도시의 낯선 지역에서 길을 잃으면 잃을수록 거기에 도착하기 위해 지나왔던 다른 도시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여정을 다시 훑어보게 되며, 닻을 올렸던 항구, 젊은 시절 친숙했던 장소들, 그리고 집 주위, 그가 어린 시절부터 뛰어놀던 베네치아의 광장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대답하는 상상을 했다.
(제2부)
그러나 강을 건너고 사막을 가로질러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칸의 제국 안팎에 있는 어느 시장에서나 똑같이 항상 찾을 수 있는 물품들, 똑같은 모기장 그늘 아래 천편일률적인 노란 깔개 위로 발치에 여기저기 늘어놓은, 똑같이 할인된 바가지 가격을 붙인 물품들을 교환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사고 팔기 위해서만 에우페미아에 오는 것이 아니라 밤이 되면 시장 주변에 환히 밝혀지는 모닥불 가에서 자루나 통 위에 앉아 혹은 양탄자 뭉치 위에 누워 누군가 '늑대', '누이', '숨겨진 보물', '전투', '옴', '연인'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늑대, 누이, 숨겨진 보물, 전투, 옴, 연인에 얽힌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부 도시와 교환1)
제 영혼이 음악 이외의 다른 영양분이나 자극을 원하지 않을 때에는 묘지를 찾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무덤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무덤 여기저기에서 떨리는 듯한 피리 소리와 조화로운 하프 소리가 화답을 합니다.
(제3부 도시와 기호들4)
대도시인 클로에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서로 마주치게 되면 그들은 서로 다른 일들, 그들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만남, 대화, 놀라운 일, 애무, 상처 등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으며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눈을 서로 피해 다른 사람의 눈을 찾습니다. 걸음을 멈추는 일도 없습니다.
음란한 떨림이, 도시 중에서도 가장 순결한 도시 클로에를 계속 움직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계속 부질없는 그들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면, 모든 유령이 사람이 되어 추적, 거짓, 오해, 충돌, 억압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고 환상의 회전목마는 멈추게 될 겁니다.
(제3부, 도시와 교환2)
상품들과 이윤이 풍요롭게 넘쳐나는 도시 올리비아에 대해 묘사하려면, 금은으로 섬세하게 장식되고, 양쪽으로 열리는 창턱 앞에 장식 술 달린 쿠션이 놓여 있는 대저택을 이야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격자창 너머의 스페인 식 정원에서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뿌리개가 잔디밭 위로 물을 뿌리고, 하얀 공작이 그 잔디밭에서 꼬리를 펴는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을 통해서도 폐하께서는 올리비아의 집집마다 벽들이 온통 검댕과 기름때로 뒤덮여 있어 도시 전체가 시커멓다는 것을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또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이동 중이던 트레일러들이 보행자들을 벽 쪽으로 밀어붙인다는 것도 아시게 될 겁니다.
(제4부 도시와 기호들5)
사람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 긴 다리들과, 맑고 화창한 날이면 나뭇잎 위에 그림을 그리는 구멍 뚫리고 각이 진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도시의 그 어떤 것도 땅을 디디지 않습니다.
바우치의 주민들에 관해 세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땅을 증오하는 사람이다.' '땅을 너무나 존중해서 땅과의 모든 접촉을 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이전 상태의 땅을 사랑해서 아래로 향하게 고정시켜 놓은 망원경과 쌍안경으로 나뭇잎, 돌, 개미 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자신들의 부재를 황홀하게 바라본다.'는 겁니다.
(제5부 도시와 눈들3)
마르코 폴로가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면서 다리를 묘사한다.
"그런데 다리를 지탱해 주는 돌은 어느 것인가?"
쿠빌라이 칸이 묻는다.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르코가 대답한다.
쿠빌라이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묻는다.
"왜 내게 돌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내게 중요한 건 아치뿐이지 않은가?"
폴로가 대답한다.
"돌이 없으면 아치도 없습니다."
(제5부)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베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제6부)
쿠빌라이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의 대화는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라는 별명을 가진 두 거지들이 하는 대화인지도 모르네. 두 사람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녹슨 잡동사니, 천 조각, 폐지 들을 모아 쌓지. 싸구려 포도주 몇 모금에 취한 두 사람이 동방의 보석들로 주위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폴로가 말했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쓰레기로 뒤덮인 황량한 땅과 칸 왕궁의 공중 정원만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나누어놓는 것은 우리의 눈꺼풀이지만 어떤 게 안이고 어떤 게 밖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7부)
새로운 물건들을 만드는 레오니아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쓰레기의 질도 더 좋아져서 시간과 악천후와 부패와 연소에 저항력을 키워갑니다. 레오니아를 에워싼, 파괴되지 않는 쓰레기 요새가 산맥처럼 사방에서 도시를 압도합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레오니아에서 물건들을 내버리면 버릴수록 쓰레기는 더 많이 쌓입니다. 과거의 파편들이 벗을 수 없는 갑옷으로 단단하게 굳습니다. 도시는 매일 새로워지면서 단 하나의 결정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완전히 보존해 나갑니다. 바로 그저께의, 그리고 매달, 매년, 십 년 전의 쓰레기들 위에 쌓이는 어제의 쓰레기 더미의 형태로 말입니다.
(제7부 지속되는 도시들1)
그 도시를 보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 서 있으면 그것은 전혀 다른 도시처럼 보일 수 있다. 이레네는 멀리서 본 도시의 이름이다. 가까이에서 본다면 도시의 이름은 달라진다.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는 이에게 도시가 이런 모습이라면, 그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저런 모습이 될 겁니다. 그건 처음으로 도착하는 도시일 수도 있고 한번 떠나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도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각각의 도시는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미 다른 이름으로 이레네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는 이레네밖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8부 도시와 이름5)
왜 트루데에 온 것일까? 저는 자문해 보았습니다. 저는 벌써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원할 때면 언제라도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트루데와 완전히 똑같은 또 다른 트루데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세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의 트루데로 뒤덮여 있을 뿐이고 단지 공항의 이름만 바뀔 뿐입니다."
(제8부 지속되는 도시들2)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폐하께서 귀 기울이시는 세계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고 제가 돌아가는 날 저희 집 거리를 오갈 짐꾼이나 곤돌라 뱃사공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습니다. 또 제가 만약 제노바 해적들에게 잡혀 모험 소설을 쓰는 작가와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경우, 말년에 작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제9부)
페린치아는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라 정확하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 도시로 와 정착했습니다. 페린치아에서 태어난 첫 세대는 그 성벽 안에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첫 세대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페린치아의 거리와 광장에서 매일 폐하는 장애자, 꼽추, 뚱뚱한 남자, 수염 난 여자들을 만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최악의 기형아들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하실이나 곡물 창고에서 목청껏 질러대는 고함이 들려옵니다. 머리가 세 개 달렸거나 다리가 여섯 개인 자식들이 가족들에 의해 그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페린치아의 천문학자들은 힘든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들의 계산이 완전히 틀렸으며 그들의 숫자로는 하늘을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이 괴물들의 도시가 신들의 질서를 반영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9부 도시와 하늘4)
"저는 떠돌이 목동입니다. 저와 가축들은 가끔 도시를 지나긴 하지만, 도시들을 하나하나 구별할 줄은 모릅니다. 대신 목초지 이름을 물어주십시오. 절벽 사이의 목초지, 초록 비탈, 그늘 속의 목초지 등, 목초지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제게 도시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도시는 목초지와 목초지를 갈라놓은 나뭇잎들이 없는 장소입니다."
(제9부 지속되는 도시들4)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제9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