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망각의 숲을 헤쳐나가는 제발트의 발자국을 따라

72번째 리뷰_이민자들

by 이기자

제발디언(sebaldian) : 제발트의 글을 읽는 사람 혹은 제발트에게 매혹된 사람.


국내의 대표적인 제발디언 배수아 작가는 자신이 번역한 <현기증.감정들>의 역자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발트를 아예 읽지 않은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제발트를 한 권만 읽고 끝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의 글을 읽을 때 독자들이 '제발트를 읽는다'는 그 아득한 느낌에서 단 한 순간도 놓여날 수가 없다. 그의 어느 문장 하나 제발트적이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가 사용한 단 하나의 표현도 관습적인 언어에서 그대로 빌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글을 말할 때 독일문학의 최고 문장가 토마스 만이나 토마스 베른하르트, 로베르트 발저와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제발트의 문장에는 전자들이 갖는 엄정하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제발트식 '현기증이며, 감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등에 배낭을 메고, 이민자이며 방랑자로, 제발트의 표정을 하고, 걸어서 홀로 여행하는 백발의 글쓰는 남자를 마주친 내 발길은, 제발트라고 불리는 외국에서 길을 잃은 채, 제발트라고 불리는 현기증 속에서 나를 잃은 채, 여전히 계속해서 따라가는 중이다. 그렇게 제발트를."


배수아 작가의 역자 후기는 하나의 해설이라기보다는 그의 팬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으로 읽힌다. 깊은 편애. 배수아 작가의 역자 후기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태도는 깊은 편애다. 그리고 이런 편애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jpg W. G. 제발트

나 또한 제발트를 처음 접한 이후로 그의 책을 한 권씩 독파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읽은 <이민자들>은 나 스스로를 제발디언으로 부르게끔 할 정도로 대단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4개 긴 단편으로 이뤄진 <이민자들>은 정말이지 아름다우면서도 놀랍도록 차가운 소설이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폭탄 테러, 총기 난사, 이런 많은 것들의 뒤에는 결국 유럽 대륙이 스스로 걸어온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친다.


유럽 대륙의 원죄는 무엇인가. 홀로코스트로 죽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연합군의 폭격으로 죽은 수십만 명의 독일인. 그리고 유럽 재건의 과정에서 이름 없는 부품으로 쓰러져간 더 많은 수의 이민자들. 집단적인 폭력과 무책임한 망각에 희생된 이들의 삶이 바로 유럽 대륙의 원죄다.


제발트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영국으로 이주해 평생을 외국에서 지냈다. 그는 독일 작가인 동시에 독일 작가가 아니었고, 고향을 잃고 끊임없이 방랑하는 운명을 타고난 작가였다. 이민자이자 방랑자인 그의 정체성은 고스란히 글에 투영된다. 그는 유럽 대륙의 내부자이자 외부자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 <이민자들>은 네 명의 이민자의 삶을 통해 유럽 대륙이 어떤 원죄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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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살고 있는 헨리 쎌윈 박사, 독일 시골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파울 베라이터, 미국의 은행가 가문에서 집사로 일한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영국에서 살고 있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 화가 막스 페르버. 제발트는 소설 속 화자를 통해 이 네 사람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네 명의 이민자들은 모두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종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길로 스스로를 내몬다.


제발트 특유의 문체. 처음 가는 동네의 골목길을 거침없이 지나가는 듯 유려한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막다른 길이 나타난다. 네 명의 이민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든 마침내 마주한 것이 거대한 벽이었던 것처럼. 제발트의 소설을 읽어 내려가던 독자들 역시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무엇을 만날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다.


제발트 소설 특유의 문제의식인 집단적인 기억상실과 망각은 유럽 대륙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국 사회야말로 제발트의 소설이 딱 들어맞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웃나라의 침략과 수십 년에 걸친 지배. 동족상잔의 비극과 그 과정에서 자행된 수많은 학살. 군사독재 시절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수백 년 전에 일어난 것인 듯 살고 있다. 그래서 소설가 한강이 이 책과 제발트를 추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가 생각난다. 한강은 이렇게 적었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2013년 1월의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예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사람들에게 변변히 변명하지 못한 채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망각하고 있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제발트가 제시한 이정표, 소설 속 화자의 발자국을 몇 개 옮겨본다.

나는 파울 베라이터의 생애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고 있었다. 란다우 부인은 내가 S시 출신이며 그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울의 아버지가 소위 반 유대인이었으며, 따라서 파울은 4분의 3만이 아리아인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놀랄 일도 아니라고 했다. 내가 다시 이베르동으로 갔을 때 그녀는 내게 말했다.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들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66p)
외삼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에서 길어올린 회상들을 아주 느릿느릿 이야기했는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구나.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외삼촌이 수많은 일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자기 자신과 연결시켜주는 추억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래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외삼촌에게는 고통이기도 했고,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지. 말하자면 구원이자 가차없는 자기파괴이기도 했던 거야.(126p)
할아버지는 그 전날 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며, 호텔 창가에 서서 찬찬히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 하얗게 떠 있는 도시를 보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고도 적어놓았다.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183p)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연속적인 파괴로 인해 이미 상당히 훼손된 배경에서 결국은 불가사의로 남을 수밖에 없는 표정과 눈매를 발굴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사십번쯤은 그렸던 것을 버리거나 지우고 또 새로 그린 후에 마침내 작업을 끝낼 때에도 페르버는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작업이 끝난 그림을 보면,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를 맴돌고 있는 지워진 얼굴들이 화장된 조상들처럼 긴 회색의 행렬을 이루고 있는 듯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그림은 그런 조상들의 후손인 듯했다.(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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