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_소수의견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을 읽었다. 소수의견은 픽션이다. 손아람 작가는 "사건은 실화가 아니고,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모두가 2009년의 용산을 떠올릴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오래도록 읽기 꺼려한 이유다.
2009년 1월 19일. 나는 CBS 노컷뉴스의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용산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목동의 CBS 사옥에서 다른 인턴기자들과 함께 용산으로 향했다. 휴대폰이 전해주는 속보는 참혹했다. 건물은 아침까지 불탔고 출근길의 사람들은 검게 타버린 남일당 건물을 마주했다. 건물만큼이나 검은 옷과 방패로 무장한 전경대원들이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인턴기자라는 명함을 받아 든 이후로 처음 마주한 살풍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날의 무력감은 끝이 없다. 7년이 지나 읽은 손아람 작가의 책은 묻는다. 이제는 무력하지 않냐고. 물론 무력하다. 연일 TV와 신문을 가득 메우는 정권의 비리 스캔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지독한 무력감을 느낀다. 2년 전 진도의 바다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다르지 않다. 그날 나는 해경의 경비정에 올라타고 바다에 나섰지만 세월호를 30분 거리에 두고 돌아와야 했다. 바이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배에 누워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느꼈다. 삶은 무력감의 연속이다.
손아람 작가는 법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픽션의 이름을 빌리지만 이 글은 누가 보더라도 논픽션이기 때문에 비겁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파고드는 손아람 작가의 집념만은 폄훼할 수 없다. 이 책은 논픽션에 기반했기에 소설로서 읽을 수가 없다. 나는 책의 본문보다도 손아람 작가가 인용하는 글귀에 더 눈길이 간다.
첫 장을 펼치면 미국의 전설적인 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즈가 나온다. 손아람 작가는 '법률에 의하여란 말은 법원이 할 일에 대해 예언할 뿐, 그 이상 대단한 의미는 없다'는 홈즈의 말을 인용한다. 법에 큰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법은 최소한의 정의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과대평가된 것일 수 있다. 법은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법은 규칙일 뿐이고 규칙은 언제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쪽에는 엄연한 사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엄연한 사법형식이 있었다'는 몽테뉴의 말이 뒤를 잇는다. 많은 사람이 법을 만능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은 정해진 형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최순실은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긴급체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은 최순실에게 하루의 시간을 줘야 했다. 사법형식은 사실에 앞선다.
라드부르흐 공식이란 것이 있다. 일단 입법이 된 실정법은 그것이 부당하더라도 정의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조항이 있다. 실정법과 정의가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정도로 모순될 때는 정의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외조항은 언제 적용될 것인가. 도저히 허용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가.
손아람 작가는 여러 가능성을 보여준다.
루돌프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세상의 모든 법은 쟁취되었다. 중요한 법규는 이에 대항했던 사람들과 싸워 얻어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의원을 선출하는 동안만 자유민이다.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노예"라고 말했다.
우리의 법은 어느 쪽일까. 법의 정의, 법의 심판은 이뤄질까. 이 모든 일이 지나고 난 뒤에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력감일까.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은 설익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출근길에 마주친 불타버린 남일당 건물과 거센 파도에 세월호를 앞두고 돌아가야 했던 진도 앞바다. 현실은 낙관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취재진에 둘러싸인 최순실을 보며 마지막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손아람 작가가 인용한 글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 남긴 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자연법과 일치하지 않는 인정법이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이성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때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라 법의 타락이다."
<소수의견>을 마침내 읽었고 2009년 1월 19일의 기억은 다시 한번 내게 무력감을 안겼다. 그래, 삶은 무력감의 연속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끊어야 한다. 그게 이번이기를.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