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_레스토랑의 탄생에서 미슐랭 가이드까지
미슐랭(미쉐린) 가이드 서울판 2017의 '빕 구르망(Bib Gourmand)'이 공개됐다. 빕 구르망은 별을 주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선사하는 식당에 주어지는 호칭이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에 어떤 식당이 들어갈지 기대를 모으는 와중에 선 공개된 빕 구르망에는 한식이 대거 포함됐다. 개인적으로 즐겨먹는 평양냉면 식당이 두 군데나(정인면옥, 필동면옥) 포함됐고 툭툭 누들 타이나 이문 설농탕, 용금옥, 만족 오향 족발, 대성집 같은 이름들도 반갑다. 빕 구르망에 한식을 내는 노포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봐서 별을 받는 식당에는 이런 류의 식당이 적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빕 구르망이 선 공개되면서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다. 11월 7일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 공개를 앞두고 미슐랭 가이드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참고한 책은 <레스토랑의 탄생에서 미슐랭 가이드까지>. 일본의 요리 칼럼니스트 야기 나오코가 쓴 책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식 가이드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는 미슐랭 가이드에 의문 부호가 붙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즈의 레스토랑 비평이 미슐랭 가이드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될 때마다 논란이 일고 있다. 2007년 도쿄판이 처음 나왔을 때도 논란이 됐고, 홍콩이나 마카오, 교토-오사카, 싱가포르, 상하이 판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판도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슐랭 가이드는 여행 안내서인 그린 가이드와 레스토랑·호텔 평가서인 레드 가이드가 있다. 한국에는 2011년에 그린 가이드가 나온 적이 있다. 그린 가이드도 여행 안내서인 만큼 여행지에서 먹을 만한 음식이나 식당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린 가이드 한국판에 실린 식당은 100여곳 정도. 그린 가이드에 실린 식당 중에 빕 구르망에 뽑힌 곳이 있는 것으로 봐서 별을 받는 곳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선 공개된 빕 구르망은 3만5000원 이하의 가격대에서 높은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골랐다고 한다. 실제로 빕 구르망에 선정된 대성집, 명동 교자, 오장동 함흥냉면, 정인면옥, 할매집 같은 집들은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서민적인 음식을 제공하는 곳들이다.
별을 받는 곳들 중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별을 받은 홍콩의 딤섬 전문점인 팀호완이나 싱가포르의 홍콩 소야 소스 치킨 앤 누들 같은 곳은 저렴한 가격의 식당이다. 별을 하나나 두 개 정도 받는 곳 중에는 이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식당이 한 두 군데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별을 세 개나 받는 곳들은 정말 비쌀 것이다. 별 세 개를 받는 곳들은 최고의 식재료를 최고의 요리사가 최상의 조리법으로 요리해야 한다. 당연히 식재료의 조달과 보관 같은 비용들이 일반적인 식당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부분이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된다. 이런 식당은 한 끼를 먹는데 수십만 원이 든다. 서울판에서 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라연이나 밍글스 같은 식당들도 저녁 코스 가격은 모두 십만 원을 넘는다.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천재요리사로 불린 루아조가 2003년 미슐랭 평가 발표 전에 자살한 일이 있었다. 루아조는 늘 미슐랭 별 3개를 유지하던 최고의 요리사였는데 그 해에 별 2개로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미슐랭 평가 발표 전에 이뤄진 '고-미요'라는 레스토랑 평가서에서 루아주의 레스토랑 점수를 깎았다(19점->17점). 이 때문에 루아조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한다. 자살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미슐랭이 그중 하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루아조가 남긴 말이 있다. 1983년에 미슐랭 별 2개를 따고 난 직후에 한 말이다.
"별 셋을 딸 때까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겠다. 레스토랑이 쉬는 날에는 실내에 페인트라도 칠하겠다."
브래들리 쿠퍼가 나온 영화 <셰프>를 보면 미슐랭에 대한 일류 요리사들의 스트레스가 잘 표현됐다.
맞다.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부터 발간됐는데 1·2차 세계대전 때는 발간이 중단됐다. 그런데 전쟁 중에도 몇 차례 특별판이 발간된 적이 있다. 20세기 초에는 지금과 달리 상세한 지도를 편리하게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슐랭 가이드는 자동차 여행객들을 위해 제작됐기 때문에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이 때문에 연합군이 미슐랭 가이드에 실린 지도를 활용하기 위해 특별판 제작을 요구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군이 알자스-로렌 지역의 탈환을 위해 특별판을 찍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는 장교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특별판을 찍었다고 한다. 이때 찍은 특별판의 표지에는 '공무용 한정'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음식은 그 사회의 문화다.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가 음식에 반영된다. 프랑스 혁명이 레스토랑을 대중화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해서만 일하던 전문요리사들이 프랑스 혁명 이후 먹고살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열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의 레스토랑 문화로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 혁명 전에는 100여 곳에 불과하던 파리의 식당이 직후에는 500여 곳으로 5배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음식은 그냥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식 가이드다. 객관적인 외부의 시각으로 우리의 식문화를 살펴보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정부에서 애먼 세금을 쏟아부어서 한식 세계화 같은 허튼짓이나 한다. 우리 식문화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