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조선의 외척정치에서 실세정치의 민낯을 본다

88_대비, 왕 위의 여자

by 이기자

역사는 반복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문명이 발전할 뿐, 인간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김수지 씨가 쓴 <대비, 왕 위의 여자>를 읽었다. 대비는 남편인 왕을 먼저 여읜 왕비를 일컫는 말이다. 아들이 왕에 오르고 대비는 왕실의 어른으로 남는다. 그러나 두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왕과 대비는 모자지간이지만 권력을 놓고 언제나 경쟁하고 갈등을 빚었다. 대비는 친인척을 동원해 자신의 세력을 유지했고 때로는 자신의 아들인 왕을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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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는 왕실의 어른이자 실세였다. 비선은 아니었으나 대비의 여러 측근들이 비선에서 활동하며 권력활동을 도왔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겹치는 장면들이 많다. 정순왕후가 정조를 몰락시키지 않았더라면 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실세 정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고 약하게 한다. 순원왕후는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왕실 재산 관리를 몰아줬고, 정희왕후는 지방관들의 임명에 간섭했다. 정희왕후의 남동생인 윤사흔은 누이를 믿고 평생을 방탕하게 살며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 윤사흔을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쳤지만 왕은 모른 척 했다. 인수대비는 금을 녹여서 불경을 만들었다. 실세들은 언제나 종교에 집착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종교에 많은 돈을 쓴 것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상대를 잘못 찾았다.


대비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왕을 죽이기도 했다. 예종과 헌종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고 정조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의 행동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좋게 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책의 중간쯤, 저자는 대비의 외척 세력 정치를 현대의 실세 정치에 비유한다.

외척 세력 정치를 오늘날 말로 바꾸자면 이른바 실세 정치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단지 임금의 외척이라서 또 정치에 간섭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실권은 외척이 가지고 있으면서 잘못된 정치 결과의 책임은 허수아비 임금이 지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잘못된 정치의 결과로 백성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지만 책임은 허수아비 임금에게 덮어씌우고 실제 권력의 과실은 실세가 따먹는다. 때문에 책임지지 않는 이들 특권층의 정치 만행은 끝을 모르고 반복된다. 따라서 외척 정치든, 척리 정치든, 환관 정치든, 실세 정치든, 결국 단어만 다를 뿐이지 특권층의 무책임한 정치라는 면에서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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