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_앤 카슨
앤 카슨(Anne Carson)의 글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뜨겁다.
헤라클레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빨강의 자서전>과 탱고의 리듬감을 살려 쓴 <남편의 아름다움>.
국내에 번역된 카슨의 책은 두 권뿐이지만 그녀의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움은 카슨의 글이 가진 뚜렷한 특징인 동시에 추구하는 지점이다.
끊임없이 새 여자를 찾아다니는 남편도 아름답기에 용서한다.
화산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 용기까지 내게 해준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빨강의 자서전>에서 게리온이 헤라클레스에게 반하는 것도 아름다움 때문이고,
<남편의 아름다움>에서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아름다움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눈다.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가. 아름다움이 모두를 나눈다.
침묵을 말하는 거니? 하지만 사진들은 다 침묵하잖아요.
쉽게 말하지 마라
그럼 어머니들은
다 여자라고 말해도 되겠구나. 여자 맞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는 거지.
-빨강의 자서전
게리온은 지붕들 너머 어둠을 응시했다. 밤의 태평양은 빨강이고
갈망의 그을음을 발산한다.
방파제에선 10미터 정도마다 서로 뒤엉켜 있는 작은 커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인형 같았다.
게리온은 그들을 질투하고 싶었지만 질투가 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야만 해,
그는 생각했다. 불멸의 존재로든 무엇으로든.
-빨강의 자서전
남편이 내게 정부가 있다고 말하며 수줍으면서도 자랑스럽게 사진 한 장을 내밀던 밤에
나는 불의 옷을 입고 하늘에서 뒹구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중략)
빠르기도 하네 내가 말했다. 당신 빈정거릴 거야? 그가 말했다.
나는 유리를 깨고 뛰어내렸다.
물론 당신도 알다시피
그건 사실이 아니고, 깨진 건 유리가 아니었고, 땅에 떨어진 건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대화를 떠올릴 때 내가 보는 건 - 전투기 조종사가 된 내가
운하로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모습이다. 격추당해서.
-남편의 아름다움
히로히토가 방송에 나와 한 인간으로서
연설한 날을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어떻게 서술했는지
당신도 알 것이다. "어른들은 라디오 주위에 둘러앉아
울었다.
아이들은 먼지 이는 길에 모여 당혹스러워하며 속닥거렸다.
천황이
하나의 목소리로 연설한 것에 놀라고 실망한 것이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특정한 여름날
신이
인간이 된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결혼 후 1년도 안되어
내 남편은
밤늦게 (여자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름다움
당신네 기혼자들은 매사에 너무 빡빡해서 온통 삐고 접질려요.
무슨 뜻이죠?
이번 여자에게 눈물을 낭비하지 말란 뜻이에요.
이번 여자. 여자가 연속으로 있었나요?
연속은 당신이고 그 여자는 연속의 틈이죠.
-남편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