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여수 밤바다
만화경 같은 하루가 지나고
이토록 낯설고 아름다운 밤,
천년 후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글썽이는 거대한 바다로 떠난다
-몽환 소년, 조원규
시인이 본 밤은 어떤 밤일까. 어떤 바다였을까.
어떤 밤을, 어떤 바다를 보았길래
천년 후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떠났다는 시구가 떠오른 걸까.
시를 읽으면 깊어지는 어둠만큼 질문이 쌓여간다.
여수의 밤바다는 몇 년 새 몰라보게 달라졌다.
해상케이블카는 바다를 뛰어넘고 해양공원은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히트곡의 노랫말처럼 조명에는 아름다운 얘기가 담겨 있고 바람에는 알 수 없는 향기가 흐른다.
해 질 무렵 해상케이블카에 오르면 여수 밤바다를 적시는 석양을 오롯이 볼 수 있다.
먼 바다, 먼 섬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케이블카에서는 조명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돌산도를 반도와 이어주는 두 개의 다리에도 조명이 켜지고 차들은 붉게 물든다.
밤이 먼저 찾아든 높은 하늘에는 초승달이 아련하게 걸려 있다.
시선을 다시 바다 쪽으로 돌리면 붉게 타오른다.
석양과 조명이 빚어내는 황혼의 공명.
여수의 밤바다에는 여백이 많다.
대도시의 야경처럼 번잡하지 않다.
조명은 밤을 밝히지만 어둠의 자리를 애써 뺏으려 하지 않는다.
밤의 풍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사실을 여수는 아는 것 같다.
어둠의 여백에 사람들의 상상력이 깃든다.
여수 밤바다는 낯설고 아름답다.
만화경 같은 풍경이다.
눈 내린 프라하의 오래된 시가지를 닮았고, 부다페스트의 강변 풍경을 닮았다.
고흐의 눈에 비친 아를의 밤이 이랬을까.
이 모든 풍경의 공통점은 여백이다.
밤의 여백.
거기에 깃든 사람들의 바람과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