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진실이란 검열관은 필요없다

열일곱 번째 리뷰_키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by 이기자

이른바 '역사전쟁'으로까지 불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보수, 진보 진영은 한치 양보 없이 맞서고 있다. 지난 선거들을 달궜던 이념 논쟁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역사전쟁이 펼쳐질 형국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역사와 관련된 책을 즐겨 읽는다. 하지만 이번 논쟁은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고, 사실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 주말 키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읽게 됐고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양 편이 어떤 입장인지 찾아봤다. 자유경제원과 역사교육연대회의가 지난 6일 각각 토론회를 열고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대체적인 입장은 이런 듯하다.


보수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려고 검인정 교과서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획일적 시각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검인정 교과서는 7종이지만 생산자들이 반(反)국가·반체제적 사상을 갖고 있고, 그들을 추종하는 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중간사용자로 이를 선택한다. 획일적 교육을 지양하려고 교과서 검인정제를 도입했는데 검인정제를 시행해도 획일적 교육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면 '좋은 획일적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역사적 관점의 다양성은 기초적 사회화 과정을 이수한 대학생들의 교과서에서 논의될 특질이다. 어린 학생들의 사회화에 필요한 국사 교과서는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를 따르는 관점에서 저술돼야 하고 되도록 표준화해야 한다."(복거일)


진보

"국가가 학교에 단일한 역사 교과서를 강요하는 것은 국제 인권규약과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침해해 인권 관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의사 표현과 학문의 자유를 제약, 민주주의를 손상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정용욱 서울대 교수)

"역사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다양하게 발행해야 하는 근거"(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획일적이라도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 vs 좋은 획일적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런 입장 차이가 명확하게 나온다. 과연 획일적인 역사 교육이 좋을 수 있을까. 획일적인 교육은 불가능할까.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통해 고민해 봤다.


젠킨스는 복수의 역사를 말한다. '역사란 연구대상인 과거(the past)를 다룬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는 다양한 역사유형의 복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젠킨스의 설명이다. 왜 단수의 역사(history)가 아닌 복수의 역사들(histories)인가.

"어떤 기록도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단 하나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사건들과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는 사라져 버렸으므로 실제 과거를 완벽하게 검토할 수 있는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다른 설명에 의해서만 검토할 뿐이다. 다른 해석들을 변형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게 만든 정확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모형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55p)


결국 우리가 배우고 공부하는 역사는 역사가들의 연구물이지 실제 존재하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다. 과거란 이미 지나간 시간. 우리는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역사 속의 인물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것도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유관순이나 안창호나 이순신이나 그 어떤 역사 속 인물들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인물의 그럴듯한 시뮬라크르만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하나. 수많은 역사들 가운데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젠킨스는 이데올로기가 역사의 결정자가 된다고 말한다. 젠킨스는 "(역사의) 세부적인 내용은 항상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면적으로 일치하기는 불가능한데도 보편적인 일치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권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역사가들에 의해 전달되는 우세한 입장은 사회구성 내에서 보다 강력한 지배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논란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정치 권력을 잡은 계급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각색하는 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인 셈이다. 심지어 피지배계급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각색해왔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날조되는 것이지만, 이런 날조가 없다면 해방도 없을 것이다.


https://youtu.be/cu2znmjTgvM

키스 젠킨스 교수의 인터뷰

사실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늘 갖고 있었지만, 이런 반대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젠킨스 식으로 말하자면 '불행한 상대주의'에 빠져 있었던 셈이고 회의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내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왜 불필요하고 나쁜지에 대해서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논쟁이나 역사를 날조하려는 시도는 항상 반복되기 때문에 나의 의견 개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회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한 친구가 내게 젠킨스의 견해에 대해 설명하며 "역사화 과정이 권력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친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대안책은 같은 과거(the past)를 다루더라도 정반대의 해석을 담은 역사책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국정화는 이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역사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안도와 확신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수많은 역사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 죽음의 벼랑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불안감과 무기력증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젠킨스는 후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은 곧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세우기 위한 전제가 된다. 이 작업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을 제시해 주고 역사란 항상 누군가를 위한 역사라는 점을 되새기게 해 준다. 여러분은 상대주의적 관점을 통해 절망으로 빠지기보다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은
곧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세우기 위한 전제가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답을 해보면, 획일적인 역사 교육은 좋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진실이라는 검열관이 다른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잘라 버린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조지 오웰이 그린 세계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란 하나일 수 없고, 수많은 역사들이 그때 그때 투쟁하며 선두에 설 수 있을 뿐이다.


획일적인 역사 교육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권력을 통해 정교하게 조정된 세계에서는 획일적인 메시지만이 전달될 수 있다. 책목록, 추천도서, 도서분류 같은 고정된 푯말에 따라 텍스트는 분류되고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분류된 텍스트만을 접하게 된다. 더욱이 역사가들이 대체로 월급을 받는 연구자 집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면 획일적인 역사 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처럼 한쪽의 이념집단이 우세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정치권이 서로 문제 삼는 건국, 이승만, 박정희, 6·25 같은 소재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서로 다른 해석을 가지고 정치 권력들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오히려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나의 권력집단이 행정력을 동원해 다른 모든 해석의 가능성을 불태우겠다는 발상에는 반대한다.



메모


역사(history)란 사실상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역사들(hisroeis)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가 간단하고 아주 명료한 것인 양 생각하는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나아가 오로지 가시적인 연구대상인 과거(the past)를 다룬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는 다양한 역사유형의 복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34p)


읽기란 결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다양한 수업을 통해 이전에 이미 배웠고 여러 책자를 통해 이미 습득하여 마침내 의미를 갖게 된 배움과 습득의 산물이다. 따라서 역사(역사서술)란 텍스트들 간의 상호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이다.(44p)


어떤 기록도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단 하나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사건들과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는 사라져 버렸으므로 실제 과거를 완벽하게 검토할 수 있는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다른 설명에 의해서만 검토할 뿐이다. 다른 해석들을 변형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게 만든 정확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모형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55p)


나는 해석이란 궁극적으로 방법론과 증거보다는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63p)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학부 역사강의계획표에 다른 역사들과 마찬가지로 흑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관점에서 선택된 주제와 방법론을 다루는 역사 과목을 하나쯤 개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과목이 개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단지 흑인, 마르크스주의자, 페미니스트들이 현실적으로 강의계획표에 자신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권력을 아직 틀어쥐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68p)


역사가들에 의해 전달되는 우세한 입장은 사회구성 내에서 보다 강력한 지배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나 그 자리가 영원히 그대로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권력관게에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 재정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배자뿐 아니라 피지배자도 각각 자신들의 실천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독자적으로 각색하기 때문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자신들의 이해를 지지해 줄 사람을 동원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역사는 날조된다.(70p)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무엇'을 '누구'로 대체하고, '위하여'를 뒤에 덧붙여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물음이 될 것이다. 역사란 다른 집단에게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 논쟁적 용어 혹은 담론이며 따라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다같이 동의할 수 있는 역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71p)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은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예정된 방식으로 '읽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읽기를 얽어매고 있는가? 사실상 세부적인 내용은 항상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면적으로 일치하기는 불가능한데도 보편적인 일치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권력 때문이다.(84p)


다른 사람들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은 곧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세우기 위한 전제가 된다. 이 작업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을 제시해 주고 역사란 항상 누군가를 위한 역사라는 점을 되새기게 해 준다. 여러분은 상대주의적 관점을 통해 절망으로 빠지기보다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곧 해방의 의미다.(87p)


진실은 그것을 참인 것으로 만드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이 방식을 통해 진실 개념은 하나의 검열관처럼 기능하게 된다.(103p)


결국 권력은 적절한 통제를 수행하기 위해 '진실'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른바 진실의 정권! 진실은 무질서를 예방한다. 그리고 이 진실과 물질적 이해들을 기능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바로 무질서에 대한 공포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부자유한 사람들이 얻게 될 자유에 대한 공포다.(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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