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_여성혐오 그 후
비체라는 말을 처음 듣자마자 반했다. object에 접두사 'a-'를 붙인 abject. 철학자 이현재는 비체를 "어떤 존재를 무엇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A가 아닌 ~A. 비체는 흐릿하다.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다. 경계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다.
이현재가 쓴 <여성혐오 그 후>는 출간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출간 시기가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쟁이 최근 2~3년 사이에 거세졌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정희진이나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 같은 여성학자들의 책은 짧게는 5~6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 전에 출간된 것들이었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책들이지만 최근의 논쟁을 생생하게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현재의 책은 그런 맥락에서 시의적절하고 새로웠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의 논리가 마치 중력 같다고 말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중력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나 또한 치즈코의 말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책을 읽어 왔다.
이현재는 비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안한다. 그는 깁슨과 그레엄의 저작인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를 인용한다. 자본주의를 통일적이고 유일하며 막강한 경제로 말하면 말할수록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다는 말이다. 비체는 우리가 견고하다고 여겼던 기존의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작은 구멍이 될 수도 있고, 같은 맥락에서 중력과도 같은 위계적 젠더 이분법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 나는 비체라는 말이 가진 매력에 반했다. 그 위력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답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 책은 140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꽤나 읽기 어렵다. 특히나 이현재가 빌려오는 주디스 버틀러의 개념들은 공부가 되어 있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현재가 스스로 언급하듯이 공감을 강조하며 끝나는 마무리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