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의 단편을 읽었다.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에우로파'라는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한경이 쓴 단편을 모처럼 찬찬히 읽어봤다.
한강의 글은 원하는 만큼 자주 읽을 수가 없다. 한 번 읽고 나면 한동안 한강의 책을 꺼내들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강은 상처 안에서 상처를 직시한다. 여러 번 겪었지만 도무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한강은 도대체 이런 소설을 어떻게 쓰는 건지. 이번에도 영탄의 마음을 품으며 한강의 소설을 읽어 나갔다.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지만 나는 '에우로파'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인아가 부르는 에우로파의 노랫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인데 어쩐지 박자와 운율이 귓가에 선하다.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암석 대신 얼음으로 덮인 달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아무리 커다란 운석이 부딪친 자리도
얼음이 녹으며 차올라
거짓말처럼 다시 둥글어지는,
거대한 유리알같이 매끄러워지는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질 수 없는 차가움
-에우로파
상처를 들여다보는 한강의 투명한 눈망울 어딘가에서 회복의 노랫말이 들리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채식주의자'의 영혜와 '소년이 온다'의 동호를 위로하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한 한강의 노래가 아닐까.
언젠가 나도 너에게 상처를 입히는 날이 오겠지. 아니, 나는 기억도 못할 과거의 어느 날에 이미 너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입히고도 이렇게나 태연하게 웃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한강의 소설을, 에우로파의 노랫말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한강의 글은 온몸이 타버린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자글자글 끓고 있는 심장을 닮았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며 목소리를 우리에게 남긴다. 잊었다 싶을 때쯤 그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돌아온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한강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상적인 대목 몇 부분을 옮겨본다.
우리가 정말 살아낼 수 있다면, 살아내야 한다면, 우리가 인간의 어떤 것, 삶의 어떤 것을 들여다볼 때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 거예요.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을 가능한 한 조용하고 느리게 어루만져보려고 한 소설이에요. 그 소설을 쓰는 동안,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연한 부분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두 사람이 손가락과 손바닥을 사용해 글씨를 써서 대화할 때, 바싹 깎인 손톱이 상처를 내지 않는 순간에 대해 생각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어요. 2012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하루에 여덟 시간씩 광주에 관한 잔혹한 자료들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부서지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고 거의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5월 27일 새벽까지 도청에 남았다가 돌아가신 시민군(부드럽고 섬약한 성격의 젊은 야학 교사였던)의 마지막 일기를 읽게 되었어요. 기도의 형식이었는데, 아마 아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란 것이 있어서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나는 살고 싶습니다." 그때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제가 그때까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생각한 것이, 이 소설이 인간의 참혹과 폭력에서 시작했지만 인간의 존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저 거기까지만 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자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자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