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단상
김춘수가 쓴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읽은 건 부다페스트를 다녀온 뒤의 일이다. 이 시가 세상에 나온 건 1959년이고 내가 부다페스트를 다녀온 건 올해 초이니 둘 사이에는 57년의 시차가 있다. 5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무엇 하나 변한 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간사는 톱니바퀴 같아서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무언가를 움직이고 있지만 결국 톱니바퀴라는 것은 제자리를 빙빙 돌뿐이다.
하여간 이 시는 1959년에 간행된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 표제시로 실렸다. 처음 발표했을 때는 지금보다 길었으나 이후에 49행으로 줄었다. 김춘수는 1956년에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발생한 헝가리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시를 썼다고 한다. 당시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스탈린 동상을 부수며 공산당 독재 정권에 저항했다. 한때 개혁파 인사인 너지를 수상으로 한 혁명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소련군 15만 명이 헝가리를 공격해 혁명세력은 무너졌다.
시는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겨울의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을 맞은 소녀가 쓰러진다. 열세 살 소녀의 죽음에도 부다페스트는 목놓아 울 수 없었다. 소녀의 죽음에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없었다. 소녀의 영(靈)은 다뉴브 강의 푸른 물결 위에서 소리 높여 운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운다.
그리고 김춘수는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말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죽은 소녀와 한강에서 죽은 소녀는 서로 만난 적 한 번 없겠지만 다르지 않다. 거대한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부다페스트와 서울이 서로 닮았듯이 그 강가에서 쓰러져간 소녀들도 닮아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다페스트를 애증하게 될 것이다. 동유럽의 이 아름다운 도시는 우리를 너무나 닮았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도시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첫날 저녁에 겔레르트 언덕을 올랐다. 택시를 타면 얼마 안 되는 돈을 내고 정상까지 쉽게 갈 수 있지만, 일부러 가파른 계단길을 올랐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길을 밝히는 등은 적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헝가리의 소년들은 내 두 눈을 한참이나 쳐다봤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빗길을 30분 남짓 올랐을까. 도시의 야경이 빗방울 사이로 번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는 아름답기 보다도 처연했다. 겔레르트 언덕의 이름은 11세기 초에 그곳에서 순교한 수도사의 이름을 땄다. 그리스도교를 전하려다 시민들에게 붙잡혀 죽은 수도사다. 시민들은 와인 통에 수도사를 산 채로 집어넣고는 언덕 위에서 다뉴브 강으로 집어던졌다. 언덕은 가파르고 높다. 사람이 들어간 와인 통이 강물에 빠지기까지 몇십 초면 충분했을 것이다. 와인 통이 언덕을 굴러가는 동안 겔레르트 수도사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했을까. 그랬다면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을까. 아니면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했을까. 사람들은 이제 그의 이름을 딴 언덕에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부다페스트 여행 둘째 날에는 프란츠 리스트가 실제로 사용한 피아노와 가구가 전시된 박물관을 찾았다. 리스트는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다. 리스트 또한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조국을 사랑했다. 정작 리스트가 헝가리어(마자르어)를 하지 못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의 책장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꽂혀 있었다. 리스트의 대표곡인 '전주곡'은 죽음을 긍정한다. 전주곡의 표지에 붙은 서문은 "우리의 인생이란 죽음에 의해 그 엄숙한 첫 음이 연주되는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가 사랑한 여인이 직접 쓴 서문이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는 동안 헝가리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을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책이지만 이따금 만나는 아름다운 문장마다 밑줄을 그었다.
"세상사의 무의미함과 슬픔은 유사 이래 증대하지 않았다. 단지 위안의 노래들만이 한층 낭랑하게 울리거나 한층 차분하게 울릴 따름이다."
이런 문장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다 보면 오랜 친구만큼이나 다뉴브 강이 익숙해진다. 매일 밤 도시에 어둠이 찾아들면 강가의 조명이 따뜻하게 빛난다. 여행자들의 다뉴브 강은 그렇게 따뜻하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주민들에게는 다뉴브 강이 따뜻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 마주치는 그 거친 강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게오르그 루카치의 첫사랑 이르머 셰이들레르는 부다페스트를 굽이쳐 흐르는 다뉴브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루카치는 그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다뉴브 강가에는 유태인 학살자들을 추모하는 신발 동상이 있다.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 무수하게 강을 향해 걷고 있다. 삶과 죽음의 전주곡은 그렇게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퇴임 만찬이 열렸다. 김춘수는 그 자리에서 한 편의 시를 낭독했다. 자유를 외치다 총탄에 쓰러진 소녀의 죽음을 노래하던 김춘수가, 부다페스트의 소녀와 한강의 소녀를 노래하던 김춘수가 군사정권의 수장을 향해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 하소서"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대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만수무강하고 있고, 김춘수는 16년 뒤에 죽었다.
김춘수는 소녀의 눈동자를 봤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김춘수는 어째서 정치인이 된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와 한강의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건 대답할 수 있다. 5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만이 바뀔 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슬픔과 세상의 무의미함은 그대로다. 지금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어떤 이름의 소녀가 죽어가고 있고 한강에서도 어떤 이름의 소녀가 죽어가고 있다. 세계 어는 도시라고 해서 예외가 있을까.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가에는 소녀들의 영이 애처롭게 쌓여만 간다.
부다페스트의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이름 없는 공원에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었다. 길을 걷다 문득 커다란 나무를 정면에서 마주했다. 거기에는 마이클 잭슨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가득했다. 마이클 잭슨이 죽은 지도 7년이나 지났는데 나무는 푸르렀고 사진 속의 마이클 잭슨은 열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을 기억한다. 문워크라고 부르기보다 월면보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았다. 마이클 잭슨은 월면보행이라는 말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그 또한 좋아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월면보행(月面步行). 나의 인생은 달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힘들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던 마이클 잭슨의 말만큼이나 아름다운 단어다. 마이클 잭슨은 지금 달 위를 걷고 있을까. 나는 그러리라 믿고 싶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도 알고, 미신을 믿지도 않지만 세상에는 이따금 기적이 필요한 법이니까.
과학 시대의 빗장을 열어젖힌 요하네스 케플러와 아이작 뉴턴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에 대한 믿음과 미신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행성 관측을 즐겨했던 케플러는 행성마다 특유의 소리(音)가 있다고 믿었다.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 운동을 하면서 특유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의 음정이 '파'와 '미'라고 말했다. 둘을 합치면 famine, 굶주림이 된다. 케플러는 지구를 굶주림의 행성이라고 했다.
행성이 소리를 내면서 움직일리야 없겠지만 나는 케플러의 말이 어쩐지 진실에 닿아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우리가 더 노력할 여지가 생기니까. 케플러의 말대로 지구에서 끊임없이 파미파미파미 하는 소리가 난다면, 부다페스트와 한강에서 귀를 기울여 보자.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고 한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갑자기 어디선가 파미파미파미 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그건 소녀들이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부르는 위안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