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을 보고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풍경이었다. 작년 유럽 여행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의 팔 할은 죽음이었다. 부다페스트 중심가인 안드라시 거리에는 검은 띠를 두른 테러하우스가 있었고, 도나우강에는 주인 없는 청동 신발들이 줄지어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거대한 비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가든이 인상 깊었다. 유럽인들은 한 세기 전의 거대한 죽음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죽음은 풍경으로 남았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팔목에 수인번호가 새겨진 것처럼 유럽인들의 기억 속에서 홀로코스트는 언제까지고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면, 광주는 오월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오월의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광주를 찾았다. 그날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옛 전남도청 건물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을 보고 싶었다.
옛 전남도청 건물이 멀지 않은 금남로 한 편에 기록관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월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옛 카톨릭센터 건물을 기록관으로 쓰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록한 부다페스트의 테러하우스나 베를린의 메모리얼 가든과는 규모에서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기록관의 한 층 한 층을 둘러보면서 쓰라리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몇 번이나 다잡아야 했는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 이상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광주와 5.18은 달랐다. 내게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이 있고 광주의 학살자와 피해자들도 나와 같은 도시,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여전히 살아 있다. 홀로코스트나 5.18 민주화운동이나 자세하게 알아갈수록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광주의 그것은 좀 더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기록관의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항쟁 기간 중에 학살당한 165명의 희생자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얼굴은 나를 닮아 있다. 입구에서부터 나는 5.18 민주화운동이 나의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전시실에 전시된 물품들은 1980년 오월 광주의 기억을 담고 있다. 양은대야에는 주먹밥이 가득 담겨 시민군에게 전달됐고 투사회보는 권력에 마비된 중앙언론을 대신해 광주의 목소리를 전했다. 어린아이의 일기장은 솔직하고 담백해서 더 슬펐다. 1980년 당시 광주동산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현경은 5월 19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난 교정소에도 못가고 벌벌 떨었다. 젊은 언니 오빠들을 잡아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 공수부대 아저씨들이 잔인한 것 같았다.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 후에 금남로에 남겨진 신발들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속의 주인 없는 신발들은 도나우 강의 주인 없는 청동 신발을 떠올리게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허무주의자나 비관론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은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것보다 나은 존재라는 믿음을 위한 경고음 같은 것이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이런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강은 말한다.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광주, 그리고 오월의 기억과 기록을 담은 기록관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기록관이 2015년에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당황했다. 지난 35년 동안 무얼 한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쏟으며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입을 다문 채 침묵한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특별히 큰 도시에는 추모관이 있고 작은 도시에는 추모비나 무덤들이 있다. 그렇게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풍경이 되어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한다. 유럽인들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매일 같이 상기한다.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는 건 유럽인들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게으르고 안일하다. 기억은 흐려지고 기록은 사라진다. 필요한 노력을 제 때에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록관은 끝내 채워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공허함만을 남길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풍경이 됐는데 어째서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만의 풍경인가. 서울과 부산은, 대전과 대구는, 인천과 춘천의 오월은 어째서 5.18 민주화운동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부다페스트의 테러하우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하층의 마지막 복도였다. 복도의 벽에는 작은 증면사진과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처음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진의 주인공은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들이었다. 나치와 스탈린에 협력해 동포를 학살한 경찰, 군인, 공무원들의 사진이었다. 사진 밑에는 그들이 무슨 일을 했으며 언제 죽었는지가 적혀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아직도 죽지 않은 채였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 무엇을 더 채워야 할 것인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작은 기록관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