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과 코스모스
12월 20일은 칼 세이건의 20주기다. 아니, 칼 세이건 식으로 말한다면 그가 우리 곁을 떠난 뒤로 행성 지구가 태양을 스무 바퀴 돌았다고 해야겠다. 책장에 벽돌처럼 꽂혀 있던 <코스모스>를 모처럼 꺼내 읽었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 문명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으로 충만했던 칼 세이건의 글을 다시 읽으니 어쩐지 마음이 휑하다. 그가 죽은 뒤로 우리는 뒷걸음만 친 것 같다. 그가 남긴 글을 두서없이 옮겨 적는 것만으로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이 700페이지에 달하는 <코스모스>의 두께에 기겁을 하며 책을 집어들기 주저한다. 그러나 이 책은 두께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을 수 있다. 그건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칼 세이건의 재능 덕분이기도 하거니와 인류 문명과 행성 지구의 근원에 대한 우리의 타고난 호기심 덕분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는 우주에 대한 책이지만 인류 문명 전반을 다룬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코스모스'라는 게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우주 전체를 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나 칼 세이건의 글은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케플러는 행성마다 특유의 음音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음정은 파와 미. 지구는 끊임없이 파와 미를 웅얼거리며 돌고 있는 것이다. 라틴어로는 파민(famine)이 된다. 지구는 굶주림의 행성이라는 이야기다. 케플러의 아이디어는 순전히 공상의 산물이지만 이런 접근 덕분에 우리는 지구와 우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우주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몽테뉴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피타고라스에게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의 대답은 전해지지 않지만 칼 세이건은 다른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했음직한 말들을 옮긴다.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마스 헉슬리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 아이작 뉴턴
인류 문명은 짧은 시간에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우주에 관해서는 이제 겨우 돌도끼를 만든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낙담할 이유는 없다. 15세기에 스페인에서 아조레스 해협까지 항해하는 데 며칠이 걸렸지만 이제는 같은 시간에 지구와 달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다. 15세기에 유럽에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가려면 몇 달이 걸렸지만 이제는 같은 시간에 화성까지도 갈 수 있게 됐다. 칼 세이건은 화성을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는 현대판 신대륙"이라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세기에 이미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를 고안했다. 그는 설계도를 그리고 실제로 기계를 만들었지만 실패가 거듭됐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충분히 강력하면서도 가벼운 엔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설계는 후대에 비행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의 실패는 그의 시대가 가진 한계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우주에 관해서 겪고 있는 실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존 윌킨스는 1638년에 쓴 책에서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은 우리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을 우리에게 밝혀 주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자 갈구하나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 후손에게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적었다.
칼 세이건이 적은 인류 문명의 도전사를 읽다보면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가 책의 말미에 적은 것처럼 인류 문명은 단 한순간의 실수로 공멸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잘못된 선택으로 암흑시기를 겪은 적이 있다.
기원전 500년 경부터 기원후 400년 경까지 알렉산드리아를 기반으로 한 고대 그리스 문명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00년 경에 지구의 둘레를 정확하게 측정했고, 히파르코스는 기원전 100년 경에 밤하늘의 별이 서서히 움직이다 결국에는 죽고 만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 경탄할 만한 문명은 인류의 또 다른 본성 때문에 한 순간 사라진다.
나중에 성인의 반열에 까지 오르는 초기 기독교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키릴루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철학자 히파티아를 죽인다. 키릴루스의 교인들이 그녀의 살을 뼈에서 발라내는 동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일군 과학 문명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과학의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까지는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히파티아가 죽지 않았다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우리는 케플러와 하위헌스, 뉴턴의 이름을 17세기가 아닌 7세기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그때는 암흑시기가 아니라 진짜 암흑이 도래할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인류 문명을 한 번에 말살할 수 있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우려한다. 우주 탐사에 사용되는 로켓 기술과 군사적인 목적의 로켓 기술은 다를 것이 없다. 지금 인류 문명은 군사적인 목적의 로켓을 개발하고 준비하는 데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
칼 세이건은 인류 문명이 저지른 많은 잘못을 상기시킨다. 아메리카 신대륙의 아라와크 족과 아스텍이 겪은 비참한 최후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주에서 오는 외계 문명을 두려워하는 이유,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는 내용의 영화나 소설이 그렇게나 많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결국 우리 자신의 후진성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다른 약소 문명을 만날 때마다 철저하게 파괴했던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외계 문명도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그러나 낙관적인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변해야 할 것은 우리라고 말한다. 성간 공간(interstellar space)을 넘어 지구에 도착할 정도의 외계 문명이라면 인류 문명처럼 파괴적일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한 기술을 가지려면 지금 인류 문명의 수 십, 수 백 배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렇게나 오랫동안 문명을 유지하려면 평화적인 본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를 파괴할 것이냐는 질문은 외계 문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칼 세이건은 인류 문명이 갈림길에 섰다고 말한다. 우주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공멸의 나락에 빠질 것인지를 결정할 갈림길 말이다. 칼 세이건이 죽고 행성 지구가 태양을 스무 바퀴 도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서 더 이 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너무 척박해서 조금이라도 낙관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때면 미국의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을 다시 본다. 다섯 번째 시즌의 열세 번째 에피소드에 보이저 우주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대통령의 참모 중 한 명이 다른 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예산을 추가로 배정하기로 한다. 그 참모의 말이 앞에서도 언급한 '어째서 우리가 우주를 탐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될 것이라고 본다.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130억 킬로미터 떨어진 말단 충격 지역을 막 통과했대. 인간이 만든 기계가 최초로 태양계를 떠난 거야. 다들 우릴 싫어해. 미국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국가지만 종종 우리의 우월한 경제력이 갖는 이미지는 기업 제국주의로 이어져. 우리 기술의 우월성은 정밀 폭탄과 살상 무기로 증명되고. 우린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어. 온 인류의 의기를 드높일 수 있는 일 말이야. 다른 행성을 밟게 될 지구의 첫 대표들을 보낼 수 있어. 화성에 사람을 보낼 수 있어. 보이저 호는 혹시 외계 생명체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서 지구 생명체의 사진과 55개국의 언어로 된 인사 메시지를 싣고 있고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척 베리의 음악까지 들려줄 수 있지. 'Dark Was the Night(Cold Was the Ground)'라는 노래도 포함돼 있어. 20년대 블루스 음악가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곡이지. 존슨의 새엄마는 외도하던 걸 들켜서 남편에게 맞은 뒤 7살짜리 존슨의 눈에 잿물을 뿌려 눈을 멀게 했어. 그는 무일푼으로 폐렴에 걸려 죽었어. 자신의 집이 불타버리고 난 폐허 위에서 젖은 신문을 덮고 자다 그렇게 됐지. 하지만 그의 음악은 방금 태양계를 떠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