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면서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책을 많이 읽고 소설을 쓰고 여행을 자주 다니자.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2편의 단편소설과 1편의 장편소설을 썼고, 여행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기저기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다녔다. 100권이 목표였던 독서는 90권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1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1년 동안 읽은 책들을 정리해봤다. 중학교 이후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한 해였다.
90권의 책을 읽었다. 사이먼 밴 부이의 단편집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시작으로 일본의 국민 문학이라는 <헤이케 이야기 1·2>까지. 1년 동안 읽은 책이 딱 90권이다.
문학은 44권을 읽었다. 소설책이 40권, 시집이 4권이었다. 시집은 최승자 시인의 <빈 배처럼 텅 비어>와 <이 시대의 사랑>을 읽었고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도 읽었다.
소설책 40권 중에서는 단편집이 20권, 장편소설이 20권이었다.
W.G.제발트와 존 버거, 한강의 책은 각각 3권씩 읽었다. 제발트는 <현기증.감정들> <공중전과 문학> <이민자들>을 읽었고 존 버거는 <제7의 인간> <벤투의 스케치북>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 제발트와 존 버거를 읽은 것은 올해 최고의 수확 중 하나였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작가들이라고 믿는다. 한강은 의무감 때문에 읽은 것도 있다. 어찌됐건 한강이 지금 한국의 작가 중에 가장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강의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이 실린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도 읽었다.
이 외에 이창래, 앤 카슨, 최승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각각 두 권씩 읽었다. 90권 중에 외국작가의 책이 52권이었고 국적별로는 미국(14권), 일본(11권), 영국(6권)의 순이다.
출판사별로는 문학동네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모두 14권이었다. 문학과지성사와 민음사의 책을 각각 6권씩 읽었고 창비 책도 5권을 읽었다. 문학동네와 창비가 문학계를 양분한다고 하는데 역시나 내게는 문학동네가 더 입맛에 맞다. 계간지도 창비보다는 문학동네 쪽이 좋다. 창비는 한강이 아니었다면 5권을 읽지도 않았을 것 같다. 특히나 2010년대 들어서는 문학동네의 책들이 압도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느낌이다.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나 말런 제임스의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처럼 제3세계 작가들의 책을 적극적으로 내는 것도 좋다. 두 책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40권의 소설 중 3권을 꼽았다. 순서대로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다. 뽑아놓고 보니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설들이다. 올해는 소설을 읽으면서 심미안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리뷰
올해 읽은 비소설 중에서 3권을 꼽았다. 순서대로 W.G.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다. 제발트의 강연록인 <공중전과 문학>은 한국의 작가들, 아니 한국 사람들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나왔는데 영화 역시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리뷰
카사노바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생각한다. 인간이 실제로 미쳐버리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럴 만한 계기는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자기 자신에 아주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사노바는 인간의 명확한 판단력을 저 홀로는 깨지지 않는 유리에 비유한다. 단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만 깨지지만, 일단 깨질 때는 또 얼마나 쉽게 깨지고 마는지.(현기증.감정들)
그는 에르미타즈 궁을 찾았다. 미술관은 별 감흥이 없고 지루했다. 그가 노인이 되어 가는 동안, 강제수용소 출신의 노인이 되어 가는 동안, 어떻게 그림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남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그림들은 왜 바뀌지 않는 걸까. 너무 근사한 마돈나의 얼굴은 왜 나이를 먹지 않은 걸까. 왜 그 눈은 그동안 흘린 눈물로 멀어 버리지 않은 걸까. 어쩌면 그 불멸성-영원함-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식으로 예술은 자신을 낳은 인간들을 배신하는 것일까.(벤투의 스케치북)
자본주의가 종교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죄(채무)와 죄사함(채무 면제)의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죄를 만들기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에는 속죄의 가능성, 채무자를 채무에서 해방시켜줄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속죄할 수 없다는 것은 성과주체를 우울증에 빠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에로스의 종말)
나는,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마그다가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뿐이다. 러트거스에 다닐 때였다. 우리는 조지 스트리트에서 E 버스를 함께 기다렸고, 그녀는 보라색을 입었다. 온갖 보랏빛을.
그때 나는 끝났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세상사의 무의미함과 슬픔은 유사 이래 증대하지 않았다. 단지 위안의 노래들만이 한층 낭랑하게 울리거나 한층 차분하게 울릴 따름이다.(소설의 이론)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소년이 온다)
우리 자신이 전쟁의 공범자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훗날 우리 중 누구도, 국가의 집단적 기억을 보존할 임무를 지닌 작가조차도 치욕적인 기억 속 장면, 예컨대 1945년 2월 드레스덴 구광장에서 6865구의 시신이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경험을 쌓은 나치 친위대에 의해 장작더미 위에서 소각되는 장면을 상기시켜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모든 몰락의 사실적이고 처참한 장면을 다루는 것에는 불법적인 어떤 것, 이 글도 완전히 피해갈 수 없는, 거의 관음증적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공중전과 문학)
도시를 갈망했을 때 그는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시도라는 그러니까 그의 꿈에 나타난 도시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꿈속의 도시에서 그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시도라에 노년이 되어 도착합니다. 광장에서는 노인들이 빙 둘러앉아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구경합니다. 그는 노인들 옆에 나란히 앉습니다. 욕망은 이미 추억이 되었습니다.(보이지 않는 도시들)
체스터튼은 "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입장에서는 온 세상을 없앤 것이므로."라고 썼다.(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세계가 멸망해도, 나는 살아갈 겁니다."
앞의 내 대답은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만든 세계가 멸망해도, 여자는 살아 나간다."
이 말은 얼마든지 다른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회가 멸망해도, 나는 살 것이다", "나라가 망해도, 나는 살아간다", "가정이 붕괴해도, 나는 살아갈 것이다."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렇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무엇보다도 '계속 살아남기 위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계가 멸망할 때 남자만 멸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멸망할 때는 우리 여성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서 남자들도 구원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경계에서 말한다)
"환경만 좋으면 식물이란 계속 번식하는 게 아닌가요?"
"환경만 좋으면, 이라는 그런 수동형이 아니에요. 씨가 떨어져서 정신 차리고 보니 번식해 있었습니다, 라는 그런 느긋한 이야기가 아니고, 옆에 얌전하게 자라고 있는 꽃의 영역까지 다리가 달린 것처럼 계속 파고드는 거예요. 꽃의 얼굴에도 묘한 주장이 있고요."
"주장하는 것은 꽃만인가요? 잎사귀나 줄기, 뿌리는 관여하지 않나요?"
"그게 재미있는 점인데 뻔뻔한 꽃에 한 해 줄기나 잎사귀는 패기가 없어요. 줄기에 맥이 없거나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가 이상하게 휑하거나 뭔가 전체적으로 감칠맛이 없고 힘이 없지요. 뻔뻔한 꽃들은 떼를 지어요. 고독에 약하지."(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상처는 스스로 빛을 낸다고
외과의사들은 말한다.
집에 불이 다 꺼져 있어도
상처에서 나오는 빛으로
붕대를 감을 수 있다.(남편의 아름다움)
"왜 문제가 없는 겁니까?"
조중균 씨가 물었다.
"이름 적기가 시험이야, 이름만 적으면 돼."
감독관이 조중균 씨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별을 무척 사랑한 나머지 이제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