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트레인지의 화이트워싱에 대한 아이즈의 칼럼을 읽고

by 이기자

아이즈에 틸다 스윈튼과 마가렛 조의 '화이트워싱 논쟁'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처음 논쟁이 일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사안이었기에 아이즈의 칼럼을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칼럼을 쓴 윤지만은 "마가렛 조는 화이트 워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는데, 틸다 스윈튼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개별 사례에 집중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틸다 스윈튼의 이메일이 백인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로 같은 이메일을 읽고 적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결론이었다.


틸다 스윈튼은 2016년 5월 13일 마가렛 조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마가렛 조는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화이트워싱 아웃 운동(WhitewashedOUT)에 앞장서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 스스로가 한국계 미국인이기에 화이트워싱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2016년 할리우드 다양성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 속 주연 배우의 소수인종 비율이 12.9%에 불과했다. 미국 인구의 37.9%가 소수인종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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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틸다 스윈튼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화이트워싱 논란에 대해 마가렛 조의 의견을 구한다. 마가렛 조는 틸다 스윈튼이 맡은 역할이 본래 티벳 남자였다며 이 또한 화이트워싱의 사례라고 지적한다. 그러자 틸다 스윈튼은 그런 지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답한다. 그녀의 대답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에인션트 원이 코믹에서는 티벳 남성이었을지 몰라도, 마블이 고정 관념을 뒤흔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식상한 클리셰를 피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치웨텔 에지오포에게 두 번째 주연을 맡겼다. 책에서 그 캐릭터는 백인 트란실바니아 인이었다. 그리고 베네딕트 웡이 연기하는 중요한 아시아 캐릭터를 넣었다.

에인션트 원(책에서는 ‘나이 많고 현명한 동양인’ 푸 만추 같은 캐릭터였다)의 젠더를 바꾸고(이것도 다양성과 관련되어 있다) 낡은 ‘드래곤 레이디’를 피하고 싶어서, 그들은 (오래된) 켈틱계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게 맡겼다. 아마 나이가 많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이 ‘지혜는 남성의 것’이라는 끝없는 이야기를 끊으려 한다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비키니를 입지 않은 26세 이상의 여성에게 강력한 캐릭터를 맡긴다는 것도 좋았다."(허핑턴포스트코리아 번역 참고)


나는 틸다 스윈튼의 이메일에서 화이트워싱의 구조적인 문제를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개별 사례로 축소시키려는 그 어떤 시도나 의도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틸다 스윈튼은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물게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우다. 그녀가 마가렛 조와의 대화에서 이야기한 것은 '백인 vs 소수인종'의 갈등 구조가 아닌 '남성 vs 여성'이라는 또 다른 갈등 구조였다. 틸다 스윈튼은 "마블이 지혜는 남성의 것이라는 클리셰를 끊으려 한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백인과 소수인종의 갈등 구조도 당연히 중요한 이슈이고 마가렛 조는 이해당사자이니 자신의 관점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틸다 스윈튼은 다른 관점에서 소수자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 구조가 중요하게 느껴졌을 수 있고 그래서 에이션트 원을 나이 많은 남자가 아닌 자신이 맡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부족한 다양성을 채우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틸다 스윈튼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양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다양성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한 명의 인간이자 배우에 대한 불성실한 접근이다.


아이즈의 칼럼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아시아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마가렛 조의 말을 인용하면서 앞으로는 좀 더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끝을 맺는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지혜롭고 뛰어난 지도자의 역할이 여자 배우에게 더 많이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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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의 대모인 마가릿 미드의 대표적인 저서로 <남성과 여성 MALE AND FEMALE>이라는 책이 있다. 조한혜정은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한국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책을 탈고하면서 제목을 놓고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다른 책에서 고백했다. '한국의'라는 표현을 제목에 넣어야 할 것인지 말이다. 그러면서 조한혜정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가릿 미드 선생이 자기 책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그 앞에 '미국의'라는 단어를 붙여야 할지 말지 한 번이라도 망설였을까 궁금해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중심부'에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겠지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국계 미국인인 마가렛 조에게 화이트워싱이 중차대한 문제이듯이, 하이랜드에 사는 55세의 스코틀랜드 여성인 틸다 스윈튼에게는 남성지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가 중차대한 문제일 것이다. 인종 문제와 젠더 문제 모두 선후를 따질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틸다 스윈튼과 마가렛 조의 이메일 대화를 처음 접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접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노력들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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