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혜성전설이 탄생했다

<너의 이름은.>을 보고

by 이기자

혜성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 과학이 혜성의 구성 요소와 진로를 알려줄 수 있겠지만 인간이 혜성에 눈길을 던지는 순간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없다면 혜성이 하늘을 가득 뒤덮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혜성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대양에 맞닿은 백사장에 가서야 바다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따름이다. 바다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혜성은 지구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우주를 떠돌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바다와 혜성을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광막한 지구와 무한한 우주에 우리만 홀로 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혜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혜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세상을 혼란에 몰아넣는가 하면 선지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위대한 과학자와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케플러는 혜성이 물고기처럼 우주 공간을 헤엄쳐 다닌다고 적었고, 데이비드 흄은 혜성이 행성들의 짝짓기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뉴턴은 인간의 영혼이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라고 생각했고, 1910년에만 해도 혜성이 지구를 스쳐 지나가면서 청산가리를 뿌린다고 많은 사람이 믿었다.


이제는 혜성이 나타난다고 기겁하는 사람은 없다. 신이 분노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혜성이 나타났다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염병이 창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혜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혜성을 바라보며 기적의 순간을 기다린다. 혜성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이겨낸다.


또 하나의 혜성전설이 탄생했다.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인 이 애니메이션은 혜성에 대한 인간의 오랜 믿음과 전설을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채색했다.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혜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둘로 분리된 혜성이 불길하게 타오르며 마을을 향하고, 하나로 이어지려는 타키와 미츠하의 마음에서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혜성은 언제나 우리에게 공포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심어준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섬세하게 빛을 쫓는 영상미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라도 '너'를 만나려고 하는 타키와 미츠하의 마음이 아름답다. 현실은 언제나 참혹하다. 신카이 마코토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참극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떤 '마음'을 전하려는 의지. 그 의지가 아름답다.


과학과 기술은 한없이 발달할 테고 언젠가 우리의 후손은 혜성의 고향인 오르트 구름까지도 갈 것이다. 눈 앞에서 혜성이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끝없는 여정에 오르는 혜성의 뒤편에서 손을 흔들어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더라도 혜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혜성전설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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