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 카푸시친스키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하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이미지라고는 가난, 질병, 가뭄, 동물, 대초원 같은 게 전부다. 우리는 '유럽'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유럽 대륙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시아'라는 하나의 단어에 얼마나 다종다양한 국가와 문화가 있는지도 분명히 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라는 하나의 단어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이해하려고 한다.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이 광막한 대륙을 말이다. 이런 몰이해는 의도적인 무시와 편협한 사고방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프리카를 21세기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치켜세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폴란드 기자인 카푸시친스키가 쓴 아프리카 르포 에세이 <흑단>은 이런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는 1957년 처음 아프리카에 갔고 이 책을 쓴 1990년대 중반까지 50년 동안 아프리카를 취재했다. 반 세기에 걸쳐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고 그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게 <흑단>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지구상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라고 치켜세우지도 않았고 야만인의 영토라고 폄훼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아프리카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진짜' 아프리카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위대한 문화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문화'나 '아프리카 종교' 같은 말들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것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푸시친스키는 "아프리카의 본질은 바로 무한한 다양성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프리카'라고 지칭하는 땅과 문화, 자연과 이미지들은 아프리카인 동시에 아프리카가 아닌 셈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거대한 대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파리와 기념품 상점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아프리카는 온 세상을 돌고 돌던 모순이 마침내 땅 위로 튀어오르는 곳이다. 카푸시친스키는 아프리카 난민 캠프에서 일하는 UN 직원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UN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식량을 손질해서 운송하고, 모아서 보관하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수단의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한 끼 식사(통상 옥수수 한 주먹)에 드는 비용이 파리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한 번 저녁 식사를 하는 값보다 더 많이 소요됩니다."
아프리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일맥상통한다. 카푸시친스키의 <흑단>은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뻔한 생각들, 편협한 사고방식을 깨뜨린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를 깨뜨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책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이다. 카푸시친스키의 유려한 문장은 덤이다.
몇 차례나 테이블과 마당을 배회하던 코끼리가 마침내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땅이 진동을 멈추고 사방이 다시 고요해지자, 옆에 앉아 있던 탄자니아 사람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분명히 봤죠?"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채 나는 대답했다. "네, 코끼리였어요." 그러자 탄자니아 사람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코끼리가 아니에요. 아프리카의 혼은 언제나 코끼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코끼리를 꺾을 수 있는 동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사자도 버펄러도 뱀도 이길 수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