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
내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또래보다 공부 머리가 조금 좋았고 그 덕분에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컸다.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릴 때 축농증 수술을 받았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은 우리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는 내 치료를 거의 무료로 해주셨다. 우리 집을 담당하던 동사무소 복지 담당 직원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알고는 여러 가지로 도울 방법을 찾아주셨다. 중고등학생 때는 점심 식비를 지원받았는데 방학 때는 집 근처의 중국집에서 돈을 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구청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짜장면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었지만 사장님 내외는 볶음밥이며 탕수육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학교에 들어오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따로 모아서 내게 주셨다. 하루에 문제집을 한 권씩 풀던 때였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연세대학교에 붙었는데 입학비는 한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해결했다. 입학하고 보니 학교에서 차상위계층에게는 등록금을 전액 지원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편하게 자란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집안 환경은 좋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경제적인 능력, 또는 의지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이 없었다면 대학을 졸업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칸방을 벗어난 적이 없다. 취업하자마자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나 독립했지만 그 이후로도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하고 있다. 그나마 주거 환경이 조금씩 좋아진 게 긍정적이라고 할까. 고시원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전세 원룸에서 살고 있으니까. 많은 도움과 약간의 노력 덕분에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언론사에 취업했다. 그렇게 5년을 일했다. 많지는 않지만 적당한 돈을 모았고 서울에 전셋집을 구하고는 회사를 그만뒀다. 쉬고 싶었다. 쉬면서도 아빠의 생활비를 챙겨야 하고 티베트와 인도네시아에 후원하는 아이가 세 명이나 있지만 어쨌든 쉬고 싶었다. 30년을 살면서 제대로 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를 다닌 덕분에 1년 넘게 쉬면서도 먹고 싶은 건 다 먹었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갔다. 이제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기는 했다.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N포세대? 나는 포기한 게 거의 없다.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미운 청년 새끼? 솔직히 미운 청년 새끼라는 말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나는 세대론에 반대한다. 세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대론은 비슷한 연령대의 수많은 개인을 공통의 경험이라는 끈으로 묶어두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목적 자체가 의심스럽다. <미운 청년 새끼>의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집단기억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대론이 가지는 힘은 무시할 수가 없다. 비슷한 연령대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체험과 감수성. 그건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세대론의 함정을 피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은 자기 고백이라고 본다. 자기 고백의 서사. 거기에서 시작된다.
<미운 청년 새끼>는 세 명의 청년이 함께 쓴 책이다. <월간 잉여>의 편집장 최서윤이 정치와 문화에 대한 글을 썼고, <계간 홀로>의 이진송이 연애에 대한 글을 썼다. <캠퍼스 씨네21>의 김송희가 일자리와 주거에 대한 글을 썼다.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다소 절망적이다. 책의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건 표지다. 빨간 체크 셔츠와 청바지, 캔버스 슈즈 차림의 청년이 고층빌딩 옥상에서 연결된 다이빙대 위에 서 있다. 뒤로는 남산타워와 서울의 빌딩 숲이 보인다. 하늘은 주황색이다. 파랗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인 걸까. 다이빙대 위에 서 있는 청년은 두 팔을 벌린 채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자세다. 왜 고층빌딩 옥상에 다이빙대가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청년이 다이빙을 하려는 건지 자살을 하려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안전을 책임지는 장비는 보이지 않는다. 빌딩 허리는 잘려 있는데 그 밑에 에어매트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땅바닥 인지도 알 수가 없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표지. 이 책의 저자들이 묘사하는 청년의 삶이 딱 그렇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나는 솔직히 저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망가진 나라'라는 부제목에 동의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기자를 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있으니까.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 청년 세대의 현실을 숫자로 봤고 고용노동부를 출입할 때 사례를 들었으니까. 그렇지만 1억 원을 모으는 게 소원이라는 부분이나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주변에 드물다는 부분은 내 주변인들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메이저 언론사나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 중에는 1억 원 이상을 모은 경우가 제법 많다. 그건 내 친구들이 대부분 좋은 대학을 나왔고 바로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내 주변은 그렇다. 결혼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 부부가 오히려 드물다. 내 주변의 부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을 하고 출산과 양육, 가사를 합리적으로 분담하기 위해 노력한다. 애초에 그것이 합리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만 노력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친구들이 여성 혐오적인 단어(삼일한, 보전개, 된장녀)를 내뱉는 걸 들은 적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 책의 저자들이 풀어낸 이야기는 내 주변의 이야기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 교류하는 모임, 소통하는 단체를 신중하게 골라왔다. 내가 가진 사회적 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면서 나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다른 또래가 겪는 일들이 내게는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눈과 귀를 닫지 않는 것이다. 입을 여는 것이다.
<미운 청년 새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06페이지에 나온다. 최서윤은 랩 가사를 쓴 경험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자기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돕는다. 머릿속에 두루뭉술하게 떠돌던, 이유를 몰랐던 아픔들을 언어로 정리하는 것은 아픔과 슬픔을 응집시켜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렇게 쓴 자기 얘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공감과 환호를 받으면 상처에 새살이 돋아난다. 나는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순간 청년이라는 세대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동시대 또래들의 자기 고백이 필요하다. 뭐가 됐든 말해야 한다. 혼자라고 느끼는 또래들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처음에는 가망 없는 조난 신호처럼 보이겠지만 점멸하는 불빛이 모인다면 거대한 적색등이 되어 괴물이 되어가는 세상을 멈추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건 세 명의 청년이 작정하고 쓴 자기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짧게나마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나의 공간에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에서 '우리'를 발견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저자들과 나는 많이 다르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