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4차 토론회를 보고
대선 TV 토론의 여운이 길게 남은 하루였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미드 웨스트 윙의 토론회 The Debate 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곱 번째 시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산토스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비닉이 정면으로 맞붙은 바로 그 토론회 에피소드다. TV 드라마 속 토론회를 무려 생방송으로 내보낸 무지막지한 클라스를 보여준 에피소드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더 어마어마하다. 50여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국 내 주요 이슈에 대한 양당의 입장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애론 소킨의 재능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프리카 빈국에 계속 차관을 제공할 지에 대한 비닉의 입장이다. 비닉은 그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회자는 다른 해결책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비닉은 tax cut(감세)라고 잘라 말한다. tax cut. 공화당의 영원한 구호이자 비닉의 상징 같은 선거 구호다. 산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방청객들은 실소를 터뜨린다. 아프리카 빈국을 도울지 말지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웬 세금 삭감이야? 해도해도 너무 하는군. 딱 이런 반응이다. 하지만 비닉은 장난이 아니다. 그는 설명을 시작한다. 옮기면 아래와 같다.
"일부 아프리카 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탄자니아에서는 475달러의 수입에 30%의 세율을 매깁니다. 게다가 모든 구매품에 20%의 부가가치세도 붙습니다. 높은 세율 때문에 그런 국가들은 자본을 만들지 못하고 공장이나 도로 같은 것들도 무엇 하나 만들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빈국의 노동자들은 세계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죠. 하지만 나이키 같은 회사는 그런 국가에 공장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세율이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세율은 경제 발전의 가능성을 죽여 버립니다. 그런 국가들이 자립할 희망을 죽여 버렸어요. 자립할 희망이요. 그래서 그들이 철저하게 자선과 차관에 의존하는 겁니다. 그리고, 최악인 사실은 왜 그렇게 세율이 높은지 아십니까? 우리 때문입니다. 차관을 갚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그렇게 높은 세율을 매기는 겁니다. 하지만 세금이 경제를 죽이면 돈은 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프리카를 향한 우리의 선의와 친절로 인해 의도치 않았던 비극적인 결과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 국가들로 하여금 끔찍한 경제적인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겁니다. 그들에게 세율을 낮추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경제는 절대 성장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평생 실업자로 살아가고 질병이 창궐하고 가난이 영속될 겁니다. 아이들은 굶주리고요. 우리의 자선 행위는 절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절대요."
비닉은 사람들의 실소를 당혹감으로 바꿔버린다. 그는 자신과 공화당이 주장하는 감세가 어째서 중요한지를 아프리카를 예로 들면서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낸다. 방청객들은 얼이 빠진 채 비닉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을 몇 번을 돌려봐도 비닉의 화법과 논리는 놀랍다.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2분이었다.
자신의 정책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을 뒷받침할 확실한 논리가 있고, 그 논리를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내가 대선 토론회에서 후보들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한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온 대통령 후보들이 극작가나 배우보다 못할 리가 없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