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라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더 크라운>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를 다룬다. 영국은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국가인 동시에 신권에 의지한 군주제를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군주제라는 모순된 제도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여왕의 대관식은 정부청사나 광장이 아닌 사원에서 진행된다. 여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건 각료나 국민이 아니라 대주교의 몫이다. 여왕은 공무에 임할 때 국민이 아닌 하느님을 향한다. 국민에게, 대중에게 복무하는 건 내각의 몫이다. 여왕은 국민이 아닌 신에게 복무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할머니인 메리 왕대비의 말이 인상적이다.
"군주제는 지상에 은총과 위엄을 부여하는 신의 미션이다. 평범한 이들에게 추구할 이상을 심어주고 고귀함과 의무의 표본으로 그들을 비참한 삶에서 일으켜 세워준다."
어떠한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고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평등이라는 선물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우리의 리더들에게서 고귀함과 위엄을 앗아간 게 아닐까. 우리는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자질 부족과 도덕적인 결여에 실망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인이나 피선거인이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더 크라운>에 묘사된 영국 왕실의 사람들은 국민들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사랑을 포기하고 개성을 지우고 입을 닫는다. 영국의 정치 제도도 문제투성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그렇게나 군주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