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스탠리는 이렇게 말했다.
"팝 음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종교였고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교회에 갈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음악이 종교라면 열렬한 전도사 이름을 몇 개 댈 수 있다. 우선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발표한 언니네이발관을 첫 줄에 올려야 한다. 인사동에 자리한 동명의 카페에서 이석원을 훔쳐보기만 하던 날이 떠오른다. 공연장을 쫓아다니며 소극적인 떼창을 시도하던 모습도 생각난다. 델리스파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민규도, 스위트피도 넣어야 한다. 코나도 같은 맥락에서 이어진다. W의 2집은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나왔다. 그 해에 나는 대학방송국에 PD로 들어갔는데 CD장에서 2집을 꺼내 처음 듣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소년세계>와 <Highway Star>가 특히 좋았다. 그 뒤로 1집을 찾아 듣고 코나의 노래까지 찾아들었다.
그 시절 나는 언니네이발관, 스위트피, 코나의 노래들을 흥얼거렸고 공연을 찾아다녔고 친구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몇 시간이고 누가 더 나은지를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들의 노랫말은 예수의 산상수훈처럼 나의 인생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좋았던 것들이 두터운 먼지 속에 잠겨 들어가듯 나 또한 그들의 노래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언니네이발관은 5집을 내고 새 앨범을 내지 않았다. 2009년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의 전국 투어를 마지막으로 나 또한 언니네이발관 공연을 찾지 않았다. 이듬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월요병은 미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실체를 지닌 것이 되었다. 이석원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월요병이 없어진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의심했다. 절대적 신앙이 사라졌고 의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언니네이발관의 노래를 듣지 않게 됐고 월요병은 만성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예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갑자기 올라오듯이 말이다. 언니네이발관은 오랜 침묵을 깨고 6집을 예고했다. 마지막이 될 그 앨범이 9년 만에 나온다. 스위트피도 20년의 활동을 정리하는 마지막 앨범을 냈다. 배영준은 코나의 새 앨범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놀랐고 지난 몇 년 간 내가 잊고 지냈던 목소리들을 기억해냈다. 먼지를 걷어내고 책을 펼치듯 그들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은 오래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했다. 어디에도 널 위한 세상을 없다고 읊조리는 이석원의 목소리는 내가 소극적으로 따라 불렀던 바로 그 목소리가 맞았다.
스위트피는 조용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돌아갈 곳은 없어>에서 스위트피는 "흥겨운 축제는 끝나고 우린 비에 흠뻑 젖은 채 끝도 없는 길을 따라 걸었지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고 했고, <북극곰>에서는 "멸종되어간 너처럼 우리도 점점 빛을 잃어 가겠지"라고 노래한다. 그럼에도 스위트피의 작별 인사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점점 빛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스위트피는 "눈물은 그만 흘리고 너와의 사랑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코나는 17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본 적은 없지만 남태평양의 섬나라 같은 음악. 코나의 새 목소리가 된 고영빈은 "슬픈 노래 이제 그만 다시 여름이 왔네 우리가 춤을 출 수 있도록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이라고 노래한다.
시간은 나무좀처럼 소중한 것들을 갉아먹는다.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았던 엘비스도 죽었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비틀즈도 쪼개졌다. 언니네이발관은 마지막을 예고했고 스위트피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모든 게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들을 잊고 지내던 그 순간에도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며칠 전 공연장에서 본 배영준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변화하고 있었다. 코나의 새 앨범은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스위트피는 끝나지만 김민규는 재즈와의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언니네이발관은 어떻게 될까. 이석원은 나이'탐험가'니까. 결코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