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 기자들이 만우절에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NPR 페이스북 계정에 기사를 링크하면 많은 댓글이 달리고 독자들끼리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댓글의 내용이 기사와는 전혀 딴판인 경우가 많았다. NPR 기자들은 독자들이 과연 기사를 제대로 읽고 댓글을 다는건지 궁금했다.
NPR은 2014년 만우절에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Why Doesn't America Read Anymore?'라는 제목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내용은 없었다. 이 기사를 읽었으면 댓글을 달지 말아달라는 메시지가 전부였다. NPR은 이 기사의 링크를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고,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독자들은 링크에 걸린 기사 제목만 보고 댓글을 달았고, 기사에 있지도 않은 과학적인 근거와 통계 수치를 언급하며 치열하게 토론했다. NPR은 2016년 만우절에 같은 기사를 또 페이스북에 올렸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뉴스를 소비하려고 하는 걸까. 제대로 읽지도 않을 거면서, 뉴스 사이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댓글을 달고 모르는 사람과 토론을 하는 걸까. NPR의 실험은 뉴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왜 뉴스를 보는 걸까?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에게 뉴스란 어찌보면 '대화의 장'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자들은 스스로를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감시자이자 때로는 사회악과 일전을 불사하는 싸움꾼이라고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의 메일 계정은 crazydog였다. 그런데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뉴스가 정말 그런 의미인 걸까. NPR의 실험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계기가 필요한 것뿐이다. NPR이 '왜 미국인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지?'라는 화두를 던졌고, 사람들은 거기에서 어떤 정보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바빴다.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이론이 있다. 라스웰의 'SMCRE 모델'이다. 대학에서는 SMCRE 모델이 소통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친다. 'Source가 Message를 만들어서 Channel을 통해 Receiver에게 전달하면 어떤 Effect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Feedback이 Source에게 전달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이론이다. 그런데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소통 모델이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송신자(Source)가 메시지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독자(Receiver)는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내고, 실시간으로 다른 독자를 찾아나선다. 독자가 곧 송신자가 된다. 기자들은 스스로를 '게이트키퍼'로 여기지만, 이제는 골대가 너무나 많은 시대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를 종교에 비유했다. 보통은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고 적었다.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은 우리가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그것과 비슷하다. 매일 아침 뉴스를 찾아보는 건 아침 기도를 드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사람에게 종교는 삶의 방식이고, 공동체 생활의 구성 원리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마주하기 위한 계기이자 공간이 뉴스인 셈이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작년 말에 62%까지 높아졌다. 그리고 이런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뉴스 중에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적지 않다. 전 세계에서 접속자수가 여덟 번째로 많은 레딧(Reddit) 같은 곳에서 수많은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있다. 미디어 전문가와 학계에서는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가짜뉴스 유포를 막으라고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사람을 직접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다고 가짜뉴스가 사라질까.
제도를 고치고 법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가짜뉴스, 더 나아가 뉴스를 왜 소비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쩌면,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가짜뉴스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서로 이야기할 계기가 필요한 것이라면, 내용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게 진짜 문제다. 제도나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진짜 문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