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질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두 번째 미디어 스터디

by 이기자

기자들은 왜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 걸까. 그런데도 기자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많은 걸까. 10년 뒤에 미디어 환경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대학생들은 신문이 아니라 SNS에 올라오는 짧은 동영상으로 정보를 얻는다는데, 10년 뒤에는 신문사가 다 망하는 걸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그리고 미디어 환경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현직 기자들이 모여서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해도 대화는 늘 도돌이표다. 매일 반복되는 기사 발제와 취재 속에 고민의 끈을 길게 잡고 있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한 발짝 떨어져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같은 대학 방송국을 나오고 지금은 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여러 선후배들과 '저널리즘, 미디어, 기자라는 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의 생각을 들어주고 함께 대화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방송국 후배들과 함께 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대학방송국 회의실에서 맥주와 콜라, 피자를 먹으며 두 시간여에 걸쳐 나눈 대화를 간략하게 옮겨본다.


미디어와 기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 첫 번째 스터디 내용은 아래 링크에

https://brunch.co.kr/@vitmania86/252


참석자

A기자 - 통신사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자신문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B기자 - 경제지에서 일하고 있다. 정부 부처를 주로 출입했고 지금은 주간지에서 일한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넘게 휴식기를 가졌고 최근 복귀했다.

C기자 - 대기업에서 미디어 마케팅을 했고, 앵커와 신문기자를 거쳐 지금은 증권경제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한다.

D기자 - 신문기자로 시작해 지금은 방송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E, F, G, H, I 학생 -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대학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A기자 - 이번 모임의 주제는 '질문'이다. 질문은 모든 지적 탐구의 첫 발걸음이자, 취재의 기본이다. 누구에게,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질문을 던질지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질문을 던지려다 갑자기 절벽 끝에 선 것처럼 막막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모임에서는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B기자 -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가 중요한 일이다.


A기자 - 정부 부처를 취재할 때는 조직도와 주요 업무가 나와 있지 않나? 비상연락망도 있고.


B기자 - 문제는 지금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현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히스토리를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예로 들면, 취재하려는 내용을 예전에 담당했던 공무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 편해진다. 지금 그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말 못하는 내용을 예전에 담당했던 공무원은 속 시원하게 뒷이야기까지 해주는 경우가 많다.


G학생 - 그런 히스토리를 어떻게 파악하나?


B기자 - 결국에는 취재원을 골고루 많이 사귀어두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중요한 일을 맡지 않는 사람이 다음 정권에서는 어떤 일을 맡게 될지 모를 일이다. 히스토리라는 건 결국 조각을 맞추는 일이어서 작은 조각이라도 많이 찾는 사람이 유리하다. 취재원을 두루두루 만나는 게 중요한 이유.


C기자 - 여러 사람에게 계속 물어보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을지 기자가 제대로 모를 때도 있다. 단번에 핵심 취재원을 찾아서 묻는 게 좋겠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꾸준히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질문이라는 건 지구력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D기자 -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온 리포트 하나로 SBS에서 난리가 났다. 해양수산부에서 공보업무를 한 적 있다는 7급 직원에게 딴 멘트를 가지고 고위관계자의 발언인 것처럼 보도했다가, 선거 개입 논란으로 이어져 결국 SBS 사장까지 나서서 사과했다. 여러 가지 뒷사정들이 있겠지만, 결국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파급력이 큰 사건이라면 더 많이 확인을 해야 하고, 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A기자 - 대학생들은 질문 던질 사람을 어떻게 찾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입사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누구에게 질문을 던지나?


H학생 - 가고 싶은 회사에 최근 입사한 선배를 수소문해서 물어본다.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보다도 최근에 입사한 선배들이 취업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가진 경우가 많더라.


B기자 - 사실 가장 좋은 건 핵심 인물에게 질문하는 거다. 입사 정보라면 그 회사의 인사팀장에게 묻는 게 가장 정확할 수 있다. 아니면 최종결정권을 가진 사장일 수도 있고. 결국 기자가 찾아야 하는 인터뷰이는 정보의 중심에 서 있는 핵심이다. 사안마다 그런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에 평소에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나서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취재 내용에 맞춰서 제대로 질문할 사람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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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물어볼 것인가?>>


F학생 - 질문의 기술도 중요할 것 같다. 특히 기자를 시작한 직후 초짜 시절에는 어떻게 질문했는지 궁금하다.


D기자 - 초짜 때를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이 들이댔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이야기도 아무렇게나 물어보고 그랬다. 그러다가 취재원이 나한테 되물으면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B기자 - 수습 시절에 정부 부처를 출입했는데, 사수가 다짜고짜 명함 한 통을 일주일 안에 다 쓰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기획재정부 같은 중앙부처의 과장급 이상 공무원을 다 만나라는 얘기였다. 그냥 인사만 하지 말고 잠깐 티타임도 하라고 했는데, 경제 정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티타임이 잡힐 때마다 해당 국이나 과에서 나온 1년치 보도자료를 다 읽어보고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버벅댔다.


D기자 - 기자와 방송작가가 닮은 듯 다른 부분이 있다. 방송작가들 이야기를 들으면 연예인을 앉혀 놓고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물어보고 거기서 아이템을 찾는다. 연예인과 함께 출연하는 일반인 친구들도 그렇게 한다. 몇 시간 동안 정말 디테일하게 질문을 던진다.


C기자 -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확실히 다른 점도 많다.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딱 필요한 질문 3~4개 정도만 준비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작가들은 계속해서 파고들고.


B기자 - 아무래도 알아내려는 정보의 결이 달라서 아닐까. 기자가 필요한 건 이슈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와 팩트. 방송작가가 필요한 건 연예인의 삶과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스토리. 필요한 정보의 종류가 다르니까 질문의 방식도 다른 것 같다.


A기자 - 속칭 '빨대'라는 존재도 있다. 기자가 묻지 않는 것도 다 알려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


C기자 -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보니까 그런 취재원을 만나면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기자들한테 회사 내부의 정보에 대해 얘기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취재원 중에 자기네 회사 이야기를 술술 해주는 사람이 종종 있다. 좋기는 한데 정말 왜 이러나 싶을 때도 있다.


B기자 - 결국에는 주고받는 관계 아닌가 싶다. 기자와 취재원은.


C기자 - 맞다. 질문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소스를 계속 알려주는 취재원이 있는데, 나중에는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가치 판단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주는 사람도 있고. 나중에는 나도 그 사람을 챙겨야겠지만.


A기자 - 그런 취재원들이 있다. 처음에는 잘 답해주고 해서 연락을 자주하게 되면 나중에는 너무 지나친 요구까지 하는 경우. 어느 선을 지키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B기자 - 취재원들이 기자한테 제일 궁금해하는 건 정보다. 우리가 취재원을 볼 때 정보를 가진 사람으로 보듯이, 취재원도 기자를 볼 때 자기들이 모르는 정보를 가진 사람으로 본다. 그러면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정보를 적당한 선에서 풀어야 한다.

413.PNG 정부의 정책발표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e브리핑 서비스. 이런 식의 공개 브리핑이 끝난 뒤에 별도의 백브리핑이 보통 이어진다.

D기자 - 그런 게 제일 잘 드러나는 사례가 하마평 아닐까. 법원을 출입하는데 법원 고위관계자들과 밥을 먹는데 다들 나한테 대법관 후보를 묻더라. 나도 궁금했던 건데, 그런 식으로 서로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셈이다.


B기자 - 하마평에서 취재원들이 궁금해하는 건 오리진이다. 단순히 이런이런 사람이 하마평에 오른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왜 그 사람이 하마평에 올랐는지, 그 하마평을 누가 퍼뜨리는 건지를 기자가 알고 있어야 한다. 취재원에 맞춰서 적당한 선에서 정보를 알려주면 취재원도 나중에 기자가 궁금해하는 걸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해주기 마련이다.


A기자 - 하마평이라는 건 공작의 도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오리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반대파에서 하마평을 퍼뜨려서 유력 후보를 낙마시키기도 하는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G학생 - 기자가 물어도 잘 대답하지 않는 취재원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D기자 - 정답은 없지만, 새로운 걸 알아내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A기자 - 그래서 기자들도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은 좀 이상하지만 예전에는 특종 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조갑제 씨가 쓴 '특종을 캐내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기자도 논문을 항상 읽어야 한다고 나온다. 술도 마시지 말라고 하고. 그만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D기자 -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다. 경제지에 있을 때는 논문도 읽고 전문가들이 모이는 학회에도 참석했는데 방송사로 옮기고 사회부 출입하면서 쉽지 않아졌다.



<<기자, 질문하는 사람들>>


C기자 - 기자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질문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한다. 예컨대 발제거리가 없을 때 쓰는 방법인데, 업계 관계자들에게 궁금한 게 뭐냐고 물어본다. 내가 대신 물어다 주겠다고 하고 기자들은 잘 모르는 업계 이슈를 알아보는 거다. 민간업계는 순위에 민감하다. 1위와 2위는 견원지간이라 서로의 정보를 궁금해하면서도 직접 알아보지는 못한다. 기자는 질문할 수 있지만, 대신 이슈 파악이 느리다. 그럴 때 대신 물어봐주면서 최근 이슈에 대해 알 수도 있는 것이다.


D기자 - 그런 걸 생각하면 질문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된다. 기자라는 이유로 사건 당사자보다 사건 진행 상황을 더욱 빨리 아는 경우가 잦다.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검사와 피의자, 2인 구도여서 범죄 피해자는 제삼자로 몇 발짝 떨어져 있게 된다. 수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기소 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도 알기 쉽지 않은 거다. 고소인, 피해자들도 그렇다고 수사기관에 직접 물어보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나. 그럴 때 질문의 소중함, 기자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F학생 - 학보사에서 일하다 보면 질문해야 할 때 제대로 질문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학교 본부가 단과대 건물을 일방적으로 옮긴 일이 있었다. 학생들의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했는데 학생회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관련된 소문이 돈지는 2~3년 정도 됐는데 아무도 단과대 학장이나 교수들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정된 뒤에 묻는 건 이미 늦어버린 셈이다.


B기자 - 질문의 또 다른 힘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질문은 그 자체로 사실 관계를 확정하는 힘이 있다. 만약 학장에게 2년 전에 단과대 건물 이전을 물었고, 학장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질문의 유무에 따라 사실 관계마저도 달라진다.


A기자 - 기자와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지난 정부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127127_162081_342.jpg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

G학생 - G20 정상회의 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은 것도 기억난다. 왜 한국 기자들은 질문하지 않는 건가?


B기자 -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청와대 출입 기자단 이야기부터 해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청와대 출입 기자는 이전부터 여당을 출입하던 기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말하기 방식도 잘 안다는 의미다.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 말 들어보면 박 전 대통령은 공주 리더십이라는 말을 한다. 직접 지시를 내리기보다는 도와주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알아서 일처리한다는 뜻이다. 그런 걸 아는 기자들 입장에서 굳이 대통령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A기자 -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다 해석해준다. 이건 이런 의미다, 저건 저런 의미다. 그러니 대통령 본인에게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 수는 있겠다 싶기는 한데.


B기자 - 물론 이건 이전 정부 청와대 출입 기자단의 방어 논리 중 하나고, 제대로 질문하지 않은 건 그들의 잘못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결정권을 가진 리더가 말을 아끼고 밑에서 알아서 처리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이건 이전 정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재벌도 똑같은 문화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지난 몇 년 사이 일제히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는 걸 보면 무언가 달라진다는 생각은 든다. 질문의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F학생 - 외국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다 보면 질문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외국에서 공부한 애들은 질문이 정말 많다. 반면에 국내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질문을 아낀다. 교육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I학생 - 수업 끝날 때쯤 질문하면 화내는 사람도 있다.


B기자 -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간담회 말미에 질문하면 밥 먹으러 가야되는데 왜 질문하냐고 고참들이 뭐라고 한다. 공보실에서는 차 왔다고 어서 끝내자고 재촉하고.


C기자 - 질문도 문화의 차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게,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설교가 거의 질의응답이다. 목사가 성경 한 구절 읽으면 교인들이 손을 들고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고 자기들끼리도 토론한다. 그렇게 한 장을 다 읽는 게 설교다.


B기자 - 사실 현장에 있으면 그런 부분도 있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굳이 중요한 걸 묻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질문하면 풀이되기 때문이다. 좀 중요한데 다른 기자들이 모를 거 같은 내용은 간담회 끝나고 따로 담당자를 찾아가서 일대일로 물어본다. 이런 문화가 기자들 사이에 좀 있는데, 그래서 외부에 보여지는 기자간담회나 기자회견은 좀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A기자 - 그렇게 서로 숨기는 문화 때문에 한국 사회의 발전이 더딘 걸 수도 있다.


F학생 - 공적인 토론 자리에서 미리 질문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작년 학교 총학 선거에서 정책토론회를 하는데 미리 질문을 다 취합해서 거기에 있는 것만 묻더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C기자-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총학선거에서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핵심 질문은 정할 수 있지만, 모두 정해놓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B기자 - 사실 기성세대가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다. 관훈토론회 이런 거 질문 다 정해놓고 한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어쨌거나 말하는 사람이 중요한 인물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있기 때문에 기사화된다. 장단점이 있을텐데, 굳이 대학 총학 선거에서 이런 걸 따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A기자 - 그나저나 총학은 언제 뽑히나.


I학생 - 총학 선거에 학생들이 잘 안 나선다.


C기자 - 그런 이유도 있다고 하더라. 후보로 나서는 순간 신상털기의 대상이 된다. 예전에는 안 좋은 소문이 많아도 딱히 확인할 방법도 없고, 별 문제가 안 됐다. 이제는 SNS가 있다보니 과거에 뭘 했는지, 누구랑 사귀었는지, 이런 게 다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총학 선거에 후보로 나서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고 한다.


I학생 - 대자보가 문제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비난의 도구로 전락한 느낌이 있다.


E학생 - AI가 질문하는 시대가 올까?


B기자 - AI 기술은 이미 상당히 진보했다. 기사 작성에 활용하는 언론사도 많고. 더 나아가서 AI가 질문을 하고 취재를 하려면, 취재원도 AI인 시대여야 할 거다. 파이낸스, 금융 이런 분야에서 AI 기술이 빠르게 활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 기사를 분석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AI이기 때문에, 금융 기사도 AI로 제공하는 게 효율적인 것이다. 다른 분야는 이런 수준까지 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A 기자 - B기자 얘기가 흥미롭다. 결국 미래 어떤 영역, 예컨대 금융 같은 곳의 취재 Agent는 AI가 AI에게 묻고 AI가 AI에게 답하는 형태로 진행될거란 말이지. 그런 대화는 인간이 관여할 필요도 없고 관여할 수도 없겠지. AI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인간과 전혀 다르니, AI 사이의 대화(정보흐름)를 인간이 어떻게 쫓아가겠나. 우리가 만든 피조물들의 불가사의한 문답이라니. 아득하다.

아 그리고 지금껏 대화를 듣다보면 우리 사회가 서로서로에 질문이 왜 없는지에 관한 가설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는 '정답'에 익숙하다. 우리 교육 자체가 정답을 맞출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

고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어떤 식이냐 하면 중앙의 정답 DB가 있고 각 노드(Node·주체)가 중앙에 질문해 정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형태가 많다. 금융의 전통적인 인증 방식과 비슷하다. 중앙의 인증 센터가 있고 각 노드가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 교신해서 인증을 하는 방식 말이다. 이런 중앙집중식 체제에서는 노드끼리 질문할 필요가 많이 없다. 교류나 공유도 필요가 없다. 정답을 쥐고 있는 중앙과 잘 연결되면 그저 '장땡'이다.

그런데 우린 다른 형태의 모델도 생각할 수 있다. 중앙의 정답 DB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분산형 모델이다. 여기서는 각 노드끼리 문답의 고리(체인)가 엄청나게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그 체인들끼리 비교해서 크게 엇나가는게 없으면 그 체인들이 모여 지식의 강과 바다를 만든다. 중앙의 정답 DB와 개별적으로 교신하는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각 노드들끼리 문답의 체인을 만들 줄 아는게 중요하다. 그럼 질문을 여기저기서 활발하게 할 수밖에 없잖아? 어른과 아이, 제자와 스승,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 등등. 지식의 바다에 뛰어들려면 문답의 고리부터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중앙 DB가 없는데 참 거짓은 어떻게 따지느냐. 앞서 얘기한거처럼 각자의 문답 체인을 공유하고 비교해서 서로 검증해본 것들의 공통점을 찾는거지. 그 공통점이 잠정적인 참이 되는거고. 해당 참을 뒤집을 새로운 체인들이 대거 등장할 때까지는 그게 참이 되는거다.

이처럼 중앙 DB 없이 개별 노드의 체인들이 모여 신뢰성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모델은 금융에서 한창 뜨고 있는 '블록체인' 인증을 연상시킨다. 물론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블록체인의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모델은 내가 앞서 말한 모델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앙 관리 체제가 없고, 각 체인 사이의 공유와 비교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우리는 지금껏 중앙 정답 DB 체제로 효율성을 끌어올렸고, 엄청난 사회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이 방식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변화하면 여러 문제가 생기지.소비에트 중앙 통제 경제처럼.. 중앙 정답 DB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일단 많겠지.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 사회가 다변화하고 더 진보하려면 node끼리의 대화, 공유, 상호성장이 꼭 필요한데 중앙 정답 DB는 그럴 필요성 자체를 말살한다. 서구식의 분산형 지식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거지. 요즘 질문이나 소통 같은 걸 많이 얘기하는게 그런 다급함의 표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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