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를 읽었다.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권리를 인정하기까지의 법적 투쟁과 논쟁의 과정을 정리한 책이다. 법학, 철학, 신학에서 모두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는 누스바움은 동성결혼에 대한 법리를 넘어서 우리를 지배하는 '혐오'라는 감정의 뿌리까지 탐색한다. 누스바움의 논리 전개는 간명하다 못해 읽다보면 우아하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몇 가지 생각할 점들.
누스바움에 따르면 혐오감은 오염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자기방어본능의 일부다. 누스바움은 혐오를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로 분리하는데, 원초적 혐오는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전시킨 감정이다. 예컨대 시체나 썩은 고기, 구더기나 바퀴벌레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혐오감을 느끼고 만지기를 꺼려한다. 이런 감정이 원초적 혐오다. 원초적 혐오는 오랜 시간 들판에서 살아야 했던 원시 인류가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발전시켜야 했던 감정인 셈이다.
문제가 되는 건 투사적 혐오다. 투사적 혐오는 오염원의 속성을 특정 집단 전체로 투사해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게이들을 보면서 '더럽다' '에이즈' '질병'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투사적 혐오가 발현된 것이다. 지금은 인종차별이 법적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흑인은 백인과 같은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이 또한 명백한 투사적 혐오의 한 사례다. 흑인과 같은 버스를 타면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은 종류의 혐오감이 지금 동성애자들을 향하고 있다.
누스바움은 게이에 대한 투사적 혐오가 결국은 여성혐오에 뿌리를 대고 있다고 본다. 성관계를 맺을 때 남성은 여성과 체액을 교환하는데 이때 체액을 받아들이는 쪽은 여성이다. 누스바움의 표현을 빌리면 "혐오는 남성이 그 불편감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할 때 발생한다. 남성들은 냄새나고, 진액이 흘러나오고, 의문스러운 액체로 가득 찬 존재라며 여성을 경멸적으로 묘사했고, 이처럼 여성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동물성과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게이'라는 존재는 체액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게이로 인해서 남성들은 자신들이 부정해온 동물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나 많은 사회에서 남성 동성애가 여성 동성애보다 더 차별과 공격의 대상이 돼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누스바움의 견지에서 보면, 여성혐오에 분노하면서 동성애혐오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는 건 모순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법리를 따지는 책이다. 특히나 미국 헌법이 동성결혼의 권리를 인정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따진다. 누스바움은 "헌법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표현한다"고 적었다. 자유와 평등에 관해 우리 사회는 꽤나 분열돼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견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주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합의점이 필요하다. 헌법은 그런 지점이다.
미국 헌법은 동성결혼 권리를 놓고 벌어진 혐오와 인류애의 싸움에서 인류애를 지키는 중요한 진지 역할을 했다.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인정 판결문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고들의 주장은 그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들 중 하나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에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미국 연방대법원 동성결혼 인정 판결문 中)
누스바움의 정리를 쫓아가다 보면 한국의 헌법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헌법은 미국의 것과 비교해 여러가지로 부족해 보인다. 우리 헌법은 건국의 과정에서 급하게 만들다 보니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건국 이후에는 독재자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됐다. 사법부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커지면서 헌법의 권위도 추락했다. 헌법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거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와 헌법이 가진 공통된 감각은 불확실성과 자기모순이다.
미국에서 헌법이 흑인과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진지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헌법 또한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누스바움은 우리가 혐오를 넘어 인류애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상상력'을 제시한다. 누스바움은 "게이 청소년을 비롯해 게이 시민, 레즈비언 시민들의 경험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혐오가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이유, 그리고 혐오가 지독하게 끔찍한 감정이자 사회 파괴의 동력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흑인에 대한 혐오는 흑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걸 방해한다. 게이에 대한 혐오는 게이를 인간이 아닌 역겨운 무언가로 느껴지게 만든다. 혐오는 다른 사람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상상력은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직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이 어떨지를 상상할 때에만 인간은 다른 사람을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누스바움의 말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