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Nov 23. 2017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술에 대한 두 권의 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1월 19일 네 번째 방송은 술에 대한 책을 주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안녕 주정뱅이' 두 편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sosul1119-upwma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책밤지기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술 마시기 좋은 계절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히레사케에 은행구이 한 알씩 집어 먹어도 맛있고,

차가운 소주 한 잔 따뜻한 오뎅탕 국물 한 입씩 해도 좋죠.


ann 술 이야기를 하시는 거 보니 이번 주에는 술에 관한 책이군요.     

맞습니다. 사실 저희 코너 제목이 ‘소설 마시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얼핏 흘려들으면 술 마시는 시간처럼 들리더라고요. 언제 한 번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ann 오늘이 바로 그 시간이군요어떤 책을 준비하셨나요?     

오늘은 소설 한 권 에세이 한 권인데요. 먼저 소설가 쓴 술에 대한 여행 에세이부터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어떤 소설가죠?     

책 제목에 정답이 나오는데요. 제목이 ‘무라카이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입니다.     


ann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는 분 정말 많죠하루키가 술에 대한 여행기도 썼군요.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국민작가 수준이니까요. 제가 굳이 어떤 작가인지 설명해드릴 필요도 없을 텐데요. 하루키가 소설뿐만 아니라 여행기를 굉장히 많이 씁니다. 하루키가 여행기를 쓴 지역만 해도 미국, 멕시코, 몽고, 라오스, 그리스, 유럽 전역(먼 북소리).. 거의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특히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이 그중에서도 특이한 여행기죠.     

ann 위스키 성지여행제목만 봐서는 어디를 갔을지 정확히 떠오르지가 않는데요?     

위스키를 생산하는 지역이 여러 곳에 있죠. 그중에서도 이 책은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과 아일랜드 두 지역을 여행하고 쓴 겁니다. 아내인 무라카미 요오코와 함께 한 여행인데요. 책에 실린 사진은 모두 아내가 찍었다고 합니다.      


ann 무라카미 부부의 위스키 여행이군요노래 한 곡 듣고 작가와 책 이야기 자세히 나눠보죠.     

j 존 메이어의 위스키 위스키 위스키입니다.


M1 John Mayer - Whiskey, whiskey, whiskey

https://youtu.be/q6kHgsKbQ8E

    

ann <소설 마시는 시간> 함께 하고 있습니다술에 대한 첫 번째 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에세이 이야기 중입니다하루키가 술을 좋아하죠?     

하루키가 굉장히 건강을 챙기는 사람으로 유명하죠. 달리기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고요, 그래서인지 담배도 끊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유독 술에 관대합니다. 젊었을 때 직접 재즈카페를 창업한 적이 있거든요. 재즈카페는 온갖 종류의 칵테일, 위스키, 맥주랑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의 원래 제목도 재밌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원제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억지로 말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이 잠자코 술잔을 상대방에게 내밀고 상대방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넣기만 해도 소통이 이뤄졌을 거라는 얘기죠. 진짜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ann  하루키는 말이 아니라 술로 소통하는 세계를 꿈꾸고 있군요. 그럼 책에 나오는 여행지에 대해서 좀 소개해주세요.     

일단 주된 여행지는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이고요. 세계 6대 위스키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면적은 굉장히 작아요. 우리나라 거제도의 1.5배 크기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위스키 증류소가 8곳이 있어요. 그리고 다른 지역의 위스키보다 개성이 강한 위스키를 만드는 걸로 유명하고요.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하죠. 한 곳의 증류소에서 보리만을 숙성시켜서 만든 위스키로 유명해요. 아일레이와 위스키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말이라는 관용어가 있다고 할 정도니까 말 다했죠.     


ann  그럼 하루키와 부인이 함께 위스키 증류소를 다닌 거군요.     

모든 증류소를 다 갈 수는 없었고요. 보모어 증류소와 라프로익 증류소 두 곳을 다녀왔습니다. 둘 다 굉장히 맛있고 개성 있는 위스키니까 아일레이 위스키가 궁금한 분들은 마셔도 좋을 거 같아요. 보모어 증류소가 둘 중에는 좀 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걸로 책에 나오는데요. 그 보모어 증류소의 매니저가 굉장히 멋진 말을 합니다. 하루키가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물으니까 매니저가 이렇게 답해요.

“위스키 만드는 일이 본질적으로 낭만적인 직업이기 때문이지.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위스키가 세상에 나올 무렵에,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그건 내가 만든 위스키거든. 정말 멋진 일이지 않아?”     


ann  위스키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평범한 작가가 쓴 책이 아니잖아요. 하루키가 쓴 책이다 보니까 읽다 보면 정말 인상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와요. 술에 대한 하루키의 잠언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예컨대 이런 말이 나옵니다.

“술이라는 건 어떤 술이든 산지에서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느낌이 든다.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ann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진짜 명언이네요그래서 하루키가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갔군요.

진짜 그렇죠. 위스키 같은 술은 특히나 풍경에 얽혀 있잖아요. 물과 보리, 흙 같은 것들이 모두 그 지역에서 나온 걸 쓰니까요. 아무런 상관없는 도시의 바에서 아일레이 위스키를 마시는 것보다 위스키를 만든 지역의 자연 풍경을 보면서 마시는 게 훨씬 좋겠죠. 이건 정말 진리입니다.

저도 작년에 체코 여행 갔다 왔는데 현지 공장에서 만든 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ann  언젠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를 간다면 이 책을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노래 소개해주세요.     

트래비스의 클로저입니다.


M2 travis - closer

https://youtu.be/u2hYn_4yuhc


ann 술에 대한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요?     

이번에는 소설인데요.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입니다.     


ann 책 제목이 안녕 주정뱅이제목부터 술 냄새가 진한데요.     

권여선 작가가 문단에서도 소문난 주당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술에 대한 진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냥 술을 좋아하는 마음에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들. 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구 끝에 나온 이야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ann 그 정도로 좋은가요?

작년에 읽은 소설들 중에 한 손에 꼽을 수 있게 좋은 책입니다. 작가의 말이 또 걸작인데요. 조금만 옮겨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몇 번 입술을 깨물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ann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 놓을 꼴이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우리 코너의 이름이 그래서 기가 막힌 겁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은 사실 술 마시는 시간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니까요.

ann 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구가 실려 있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우리가 알코올 중독자를 볼 때면 좀 안 좋게 보는 게 사실이잖아요. 자기 자신도 콘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술에 의지하고 기대는 사람들을 차갑게 보지 않습니다. ‘봄밤’이라는 단편에는 아이를 빼앗기고 술을 마시다 알코올 중독이 된 영경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요. 다른 단편들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좋아서, 재미로, 맛있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눈 뜨고 웃고 떠들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그들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옥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취해버리는 방법을 택한 거죠.


ann 세상이 견딜 수 없는 지옥이어서 차라리 취해버린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우리가 문제일 걸까.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TV를 켜기만 해도 비극적인 소식들이 쏟아지잖아요.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가 누구를 다치게 하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를 받고.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며 취해버리는 알코올중독자들이 문제인 건지, 아니면 그게 뭐 어땠어, 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문제인 건지. 다들 치료가 필요한 건 알코올중독자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건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M3 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https://youtu.be/xsli4j05h5E


ann  <안녕 주정뱅이이야기 중입니다인상 깊은 단편이나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7편의 단편이 모두 놓쳐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인데, 그중에서도 저는 봄밤과 이모, 역광 세 편을 특히 좋아합니다.


ann 어떤 내용들인가요. 

봄밤은 영경과 수환이라는 두 명의 캐릭터가 나옵니다. 수환은 열심히 살면서 자기 사업도 하지만 부도가 난 뒤에 아내에게 버림받고 결국 노숙생활까지 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영경은 교사를 하다가 이혼을 하게 되고 아들을 빼앗긴 뒤에 술을 마시게 돼서 알코올중독에 빠집니다. 나중에 수환은 관절염이 척추까지 파고들어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고요. 영경도 알코올성 치매가 심해져 함께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됩니다. 둘 다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인생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죠. 

이 단편은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라는 말로 시작해요. 그러다 영경이 수환을 만났을 때 “그가 조용히 등을 내밀어 그녀를 업었을 때 그녀는 취한 와중에도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했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결국 둘 다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둘의 인생을, 죽음을 헛된 것으로 기억하겠죠. 영경의 죽음은 알코올중독자가 모텔에서 수십 병의 소주를 마시다 죽었다는 짤막한 인터넷 뉴스로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댓글창에는 영경의 인생을 헐뜯는 사람들로 넘쳐날 거고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영경이나 수환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런 자격이 있는 걸까요?


ann 문학에서 다뤄지는 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술과 좀 다른 의미를 가진 것 같아요.

권여선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반복은 지옥이기 때문에 망각이 필요하다.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기는 망각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죽음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삶이 너무나 행복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면 이 말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죠. 그렇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 그냥 좋아서, 습관처럼 마시는 것도 있겠지만, 실은 잊고 싶어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마시는 것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해요. 문학에서 술을 다루는 방식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안녕 주정뱅이에서 술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생각이 그렇고요.


ann 반복은 지옥이기 때문에 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술을 매개로 한 연대와 위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을 수 있는 거잖아요. 안녕 주정뱅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우연한 불행에 힘들어하듯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지. 사람들은 불행을 겪는 사람을 보면서 손가락질하잖아요. 자기가 제대로 못해서 저렇게 된 거라고요. 하지만 누구나 술에 취할 수 있고, 누구든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을 겪는 사람을 손가락질하지 못하겠죠.


ann 끝 곡은 어떤 곡 들어 볼까요?     

오지은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입니다.     


M4  오지은 –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https://youtu.be/fkYVcV586G4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