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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15. 2017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

소설 마시는 시간 3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1월 12일 세 번째 방송은 이별을 다룬 소설을 주제로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sosul1112-upwma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책밤지기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이별에 대한 소설 두 편을 준비했습니다.      


ann 날씨가 쌀쌀해지는데 소설들도 너무 차가운 걸로 준비한 거 아닌가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맘 때에 이상하게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별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고 그러면서 방황하는 계절이 아닐까 싶어요.     


ann 이별에 대한 소설은 참 많죠?     

맞습니다. 이별을 다룬 소설은 참 많죠. 사실 소설의 절반이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치면 그중 절반은 이별 이야기인 거니까. 소설의 4분의 1은 이별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중에서도 오늘은 이별을 다룬 아름다운 단편 소설 두 권을 소개해드릴게요.     


ann 날씨도 추워지는데 오늘 방송도 쌀쌀한 느낌이겠네요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이별이라는 게 슬프고 차가워보이지만, 거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잖아요.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법이고, 바닥까지 떨어져 본 적이 있어야 지금 나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법이다. 잘 쓴 이별 이야기가 어설픈 사랑 이야기보다 더 따뜻할 수도 있다. 오늘 소개할 책이 그런 책들.     


ann 그런가요그럼 먼저 소개해주실 책은요?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입니다.     

ann 제목부터 이별 느낌 물씬주노 디아스라는 작가부터 소개해주세요.     

도미니카 출신의 작가입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고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라는 장편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한 세 번째 책이고, 이별에 대한 단편들을 모은 단편소설집입니다.


ann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해볼까요.    

로우엔드프로젝트의 <연애를 망친 건 바로 나라는 걸 알았다> 입니다


M1 – 로우엔드프로젝트 - 연애를 망친 건 바로 나라는 걸 알았다

https://youtu.be/G98uTdhLrQo


ann 이별을 다룬 두 권의 책먼저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어떤 책인가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모두 한결 같이 사랑의 끝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이별을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풍경이 있지 않나요. 눈물 흘리고 슬프고 분노하고 그런 클리셰 같은 장면들. 그런데 이 책의 이별의 순간들은 그렇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거칠면서도 섬세하고 슬프면서도 담담하고요. 주노 디아스의 글을 얘기할 때 항상 나오는 표현이 ‘스타일’인데요.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글을 쓴다고들 하는데, 이별의 순간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ann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이 나오나요?     

그러니까 사랑이 끝나버렸다는 걸 그냥 ‘우리는 헤어졌다’ ‘마음이 멀어졌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런 뻔한 표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해와 달과 별들’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마그다라는 연인과의 사랑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마그다가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뿐이다. 러트거스에 다닐 때였다. 우리는 조지 스트리트에서 E 버스를 함께 기다렸고, 그녀는 보라색을 입었다. 온갖 보랏빛을. 그때 나는 끝났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     

ann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정말 인상적인 표현입니다.     

그런 표현들 때문에 이 책을 계속 읽게 됩니다. ‘미스 로라’라는 단편에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화자의 형이 암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그 슬픔에 빠져 지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는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옛날에는 뭐든 다 알았다. 캄페시노(시골사람)다운 레이더가 있었다. 이제 어머니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다. 슬픔, 슬픔에 대처하는 데 시간을 다 할애하고 있다.”     


ann 이별이라는 게 꼭 연인과의 사이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뒤에 소개해드릴 책에 이런 이야기는 더 나오니까.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 이별에 대한 공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흥미로워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별을 겪은 주인공이 주변에 묻습니다. 

‘잊는 데 보통 얼마나 걸려?’

사람들마다 답이 다 다릅니다. 사귄 햇수 곱하기 일 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귄 햇수 곱하기 이 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귄 기간의 절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고민 끝에 말합니다. 

“그냥 의지력 문제다. 끝났다고 결정하는 날 끝나는 거지. 절대 잊히지 않아.”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소설 이야기해보죠. 어떤 노래 들어 볼까요       

가을방학의 근황입니다.


M2 – 가을방학 - 근황

https://youtu.be/gKYwGK3d-_k


ann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이야기했고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이별에 대한 소설은요?     

두 번째 소설은 사이먼 밴 부이가 쓴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단편집입니다.   


ann 사이먼 밴 부이도 낯선 작가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 한 권뿐인데, 굉장히 사랑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작가로 불립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외신에서는 이 책에 ‘기 드 모파상에 비견되는 로맨틱함’ ‘비극적인 순간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통찰’ 같은 찬사를 붙였습니다.      


ann 비극적인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말은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한다는 의미겠죠?

맞습니다. 이 소설집은 꼭 남녀 간의 이별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이별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잖아요.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일상의 소중한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밴 부이는 그런 순간순간들을 잘 포착합니다.

아마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걸 수도 있습니다. 밴 부이 자신이 아내와 사별한 뒤에 혼자서 딸을 키웠기 때문에, 그런 이별을 더 민감하고 섬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 수도 있겠죠.     


ann 작가에게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요. 확실히 묘사가 남다를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단편집 중에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가 ‘그들이 숨은 곳은 영원한 수수께끼’입니다. 엄마를 병으로 잃은 에드거라는 소년이 신비한 인도인 남자와 함께 도시 곳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입니다.

에드거가 평소 엄마와 함께 자주 찾았던 공원에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가리키면서 남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별빛이 우리가 있는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을 때쯤에는 이미 소멸한 경우도 있지.”

에드거가 그 말에 별들은 이미 죽은 거냐고 물어요.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말해요.

“모든 게 다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죽지는 않아, 에드거. 중요한 건, 저 별들이 살아 있든 아니든 바로 지금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는 거란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많이 감동을 받았고 또 어떤 때는 울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밴 부이가 엄마를 잃은 자신의 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겠죠.

ann 별은 이미 죽은 존재지만 여전히 밤하늘에 빛나고 있죠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존재도 마찬가지라는 의미겠죠?

물리적인 존재가 소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존재라는 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거고, 함께 있었던 공간 속에 남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에드거가 엄마와 함께 산책했던 공원에서 엄마의 존재를 느낄 수 있듯이 말이죠.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죽음은 목숨을 거둬가지만 관계마저 끊어놓지는 못한다’.

그런 소중한 감정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M3 – 자우림 – 스물다섯 스물하나

https://youtu.be/qvJ1FHRR1n8


ann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이야기하고 있는데요또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나요?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라는 단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다리가 기형인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일이 끝나고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요. 들판으로 이어지는 주방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창문은 깨진 채로 있어요. 그리고 주방 테이블 위에는 병원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이 있는 거죠.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요. 목발을 짚고도 걷는 게 힘든 아내가 집에 없으니까 남편은 편지의 내용을 짐작합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던 아내와 남편의 소망이 유리창처럼 깨졌다는 걸요. 그리고 남편이 바로 아내를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잠시 주방에 머물러요. ‘편지 내용에 대한 실망감을 내 속에 완전히 묻어버린 후에야 울타리 문 너머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요.

저는 여기서 영화 한 편이 떠올랐어요.     


ann 어떤 영화죠?     

걷지 못하는 여자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죠. 일본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요. 그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츠네오가 조제를 버리고 떠나잖아요. 이 소설에서도 남편이 이대로 도망가버리면 어떨까 하고 고민을 해요. 남편의 꿈이 아들을 낳는 거였거든요. 광부였던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나서 아들을 낳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런던으로 스코틀랜드로 이대로 도망칠까 생각을 하는데.     


ann 남편은 츠네오처럼 도망치지 않았군요.     

남편은 유리 파편을 치우고 고무장화를 신고 풀밭을 헤치며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목발을 멀찍이 던지고 진창에 앉아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는 품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오고요. 아내가 그 편지를 읽어봤냐고 물어봐요. 그러니까 남편이 이렇게 답하죠. 

“그런 건 더는 상관없어.”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남편이 아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조제의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돼요. 높은 의자에 앉아 주방일을 하다가 바닥으로 그냥 쿵하고 떨어져 버리는 조제의 마지막 장면이 이상하게 제 마음속에 굳은살처럼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는 그게 사라졌죠.     


ann 조제에 대한 죄책감이 이 소설 덕분에 해결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요. 이런 생각도 해요. 열띤 사랑의 순간은 멋있기도 감동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많은 동화 속 이야기가 왕자와 공주가 만나서 역경을 딛고 사랑에 성공하는 장면까지만 보여주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런데 삶은 그 이후로도 계속 되잖아요. 사랑 이후의 삶, 언젠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별, 그리고 그 이후의 삶. 모든 걸 잃고도 우리가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같은 게 이 소설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가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을 갈구하는 이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ann 그렇군요끝 곡은 어떤 곡 들어 볼까요?     

적재의 ‘다시’입니다.          


M4 – 적재 다시

https://youtu.be/44ZPi9IQ4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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