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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26. 2017

인간을 죽이는 건 로봇도 AI도 아닌 같은 인간이다

과학을 다룬 두 권의 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1월 26일 다섯 번째 방송은 과학을 다룬 소설을 주제로

'나를 보내지 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sosul1126-upwma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책밤지기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과학을 소재로 다룬 두 권의 소설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과학이면 SF 소설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고요. 과학적인 내용을 다뤘으니까요. 그렇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소설은 SF를 넘어서서 문학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책들입니다. 좋은 소설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문학이라는 굳건한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소설들이죠.


ann 그럼 첫 번째 소설부터 소개해주세요.     

첫 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입니다.     


ann 가즈오 이시구로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죠?     

맞습니다. 책에 관심 없으신 분들도 뉴스에서 이름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예요. 일본계이면서도 영미 문학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고요. 사실 노벨문학상이 지난 몇 년 간 논란이 많았다. 저널리스트한테 상을 주는가 하면 가수한테 상을 주기도 했고. 논란을 많이 일으키면서 골수 문학팬들을 실망시킨 게 사실인데, 올해는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가한테 상을 주면서 논란을 좀 잠재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ann 사실 문학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니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이름이 낯설 수도 있어요또 어떤 책이 있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책은 <남아 있는 나날>일테고요. 이 소설로 부커상을 받았죠.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고요.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닌데요. <창백한 언덕 풍경> 같은 작품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녹턴>이라는 단편집을 좋아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젊을 때는 음악에 빠져서 밴드를 하고 싶었다고 해요. 영국에서 자랐으니까 아무래도 70년대 영국 밴드 음악의 황금기를 지켜봤을 거잖아요. 그런데 음악에는 별로 재능이 없었나 봅니다. 녹턴에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ann 맞아요영화 원작으로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이름이 소개된 적이 있었던 거 같아요오늘 이야기할 나를 보내지 마도 영화로 만들어졌죠?     

영화 각본가가 이시구로의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이시구로가 소설을 다 쓰고 출간하기 전에 보여줬는데 바로 각본 작업에 들어가서 프로듀서를 찾아갔다고요.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영화 찍을 준비도 시작된 거죠. 영화는 2010년에 나왔는데 캐리 멀리건, 키이라 나이틀리, 앤드루 가필드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아름다운 작품이 나왔죠.     


ann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책 이야기 자세하게 나눌게요.     

스테이시 켄트의 랜드 슬라이드입니다. 이시구로가 이 노래가 들어간 앨범의 가사 작업을 도왔다고 하네요.


M1 stacey kent – Landslide

https://youtu.be/GcyyaLxXh7M

 

ann 과학을 다룬 소설첫 번째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이야기하고 있습니다어떤 내용인가요?     

영국 시골의 한 기숙학교가 배경인데요. 헤일셤이라는 이름이고요. 기숙학교라는 공간이 긴장감이 넘치는 공간이잖아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 남녀 수백 명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있으니까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규율도 강한 그런 공간이죠. 그런데 이 헤일셤은 조금 더 특이한 구석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외부와 어떤 연락도 불가능하고요. 이따금씩 외부에서 중고물품을 모아서 가져오면 학생들이 소중하게 하나씩 골라가는 거죠. 또 학생들은 건강에 대한 강박적일 정도의 관리를 받고요.     


ann 평범해 보이면서도 비밀을 간직한 공간이군요.     

네. 세 명의 주인공이 나와요. 캐시와 루스는 단짝 친구고요. 토미는 루스의 남자친구인 동시에 캐시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소설의 초반부는 이들 세 명의 주인공이 기숙학교에서 어떻게 서로와 친해지고 멀어지고 다시 친해지는지를 다루는 조금은 전형적인 성장소설 같은 분위기로 전개가 됩니다.     


ann 그렇게만 끝나면 이 소설이 SF소설로 분류되지도 않았겠죠?     

헤일셤이라는 공간의 비밀이랑도 연결돼 있는 건데요. 거기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복제인간이었던 겁니다. 자신의 근원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지고 길러지는 존재인 거죠. 언젠가는 병원에 보내져서 장기 기증을 해야 되는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ann 이야기만 들으면 22세기, 23세기를 배경으로 해야 할 것만 같은데요그렇지가 않죠?     

그게 이 소설의 특이한 부분인데요. 배경이 1970년대, 80년대 정도입니다. 주인공들은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고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걸 똑같이 먹고 마셔요. 풍경도 우리가 생각하는 영국의 바로 그 풍경이고요. 오직 하나 다른 건 주인공들이 복제인간이고, 언젠가 장기 기증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끊임없이 기증을 하다 죽게 될 거란 사실뿐이죠.     


ann 복제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와 똑같이 생긴 거잖아요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여주인공인 캐시가 비슷한 질문을 던져요. 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선생님을 재회하거든요. 우리가 장기기증만 하다 죽을 거라면 왜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라고 했느냐고 물어요. 선생님이 “그래야 너희한테도 영혼이라는 게 있음이 증명되기 때문이야”라고 해요. 많은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 복제인간에게는 영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아니, 그렇게 믿고 눈을 감았다는 거죠.     


ann 캐시는 뭐라고 답하나요?     

캐시의 답이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해야 했던 거죠?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장기기증을 위한 복제인간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태어난 존재잖아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겠다는 욕망을 위한 도구죠. 그런 식으로 우리의 욕망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가치, 존엄성을 뺏아기는 존재들이 많잖아요. 이 소설 속의 복제인간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ann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이네요노래 한 곡 들을게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천천히입니다.


M2 브로콜리 너마저 천천히

https://youtu.be/uEKMkI8P45Q


ann 과학을 다룬 두 권의 소설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입니다.     


ann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이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실 수도 있는데사실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죠.     

원작 소설의 제목보다 영화 제목이 훨씬 더 유명하죠. SF영화의 초 고전 중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가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겁니다. 최근에는 후속편인 <블레이드러너 2049>도 나왔죠.     


ann 영화는 정말 많이 보셨을 거 같은데요정작 원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또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원작자가 SF소설 삼대장 중 한 명인 필립 K딕인데요. 이 분의 별명 중 하나가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SF소설가’거든요. 그러니까 필립 K딕의 소설을 본 적은 없어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 생각나는 유명한 작품만 해도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같은 영화가 있고요. 매트릭스나 인셉션도 감독들이 필립 K딕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고요.     

ann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필립 K딕이 만든 세계에서 즐기고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영화화된 작품들만 살펴봐도 아시겠지만 밝고 긍정적인 세계는 아니에요. 블레이드 러너만 해도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필립 K딕 자체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우울한 인생을 살다 갔거든요. 광장공포증이 있었고 말년에는 정신분열에 피해망상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태에서 지냈는데요. 그런 느낌이 작품에 다 담겨 있는 겁니다.. 특히나 국가나 거대기업이 개인을 파멸로 몰고 가는 내용이 거의 예외 없이 나오고요.     


ann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도 마찬가지죠     

영화랑 소설이 대체로 비슷한 줄거리거든요.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세계전쟁으로 지구가 방사능 낙진에 뒤덮이면서 많은 인간이 화성으로 이주를 하고 지구는 도망자들만 살아가는 땅이 됩니다. 인간형 로봇인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화성에서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고요. 그런데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비슷해지면서 자각을 하게 되고, 몇몇이 지구로 도망치는 일이 생깁니다. 현상금 사냥꾼인 주인공 데커드가 지구로 가서 안드로이드를 쫓게 되고요.     


ann 영화랑 약간 다른 부분이 있긴 하네요영화에서는 지구가 굉장히 번성한 곳으로 나오잖아요.     

j 영화에서는 온갖 인종이 뒤섞인 메트로폴리탄이 배경이죠. 지구가 멸망 위기거나 버려진 땅처럼 묘사되지는 않는데요. 소설에서는 세계전쟁 때문에 방사능 낙진이 지구를 덮으면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땅으로 묘사돼요. 영화랑 소설이 다른 부분이 조금 있긴 한데요. 영화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이 이미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감정을 가진 걸로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아직 차이가 나는 걸로 나오고요. 또 영화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는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대머리에 얼굴도 둥글둥글한 평범한 아저씨처럼 묘사가 돼요. 영화니까 아무래도 주인공을 다르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겠죠?       


M3 전자양 – 여름의 끝

https://youtu.be/2WQPE2qWUsA


ann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이야기하고 있어요이 소설도 결국에는 인간성을 본질을 묻는 거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앞서 소개해드린 <나를 보내지 마>랑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가 복제인간도 영혼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복제인간을 장기를 얻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평범한 인간들이 복제인간보다 나은 게 뭘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거든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도 마찬가지예요. 안드로이드들이 화성을 탈출한 건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꿈 때문인데요. 거기에서 멈춰요.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되지 못해요. 왤까요. 소설에서 말하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ann 뭘까요?     

소설에서는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감정이입의 능력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타인을 존중하고 생명을 아낄 수 있는 거죠. 안드로이드는 그 감정이입의 능력에 다가가지 못해요. 아무리 똑똑해도 말이죠.     


ann 감정이입의 능력그런데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안드로이드인 로이 배티가 주인공인 데커드를 살려주지 않나요마치 감정이입을 한 것처럼요.     

그게 영화와 소설의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한데요. 제가 영화를 더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이 배티가 이렇게 말하죠.

“나는 인간들이 상상도 못 할 광경들을 봤어. 오리온 셔틀의 불길 위로 공격해 들어가는 비행선들을 보았고, 탄호이저 바다의 어두움을 밝힌 명멸하는 빛들도 보았지.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안드로이드인 로이 배티가 인간을 살리고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죽잖아요. 이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인간 캐릭터보다 로이 배티가 사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적이라는 기준에 부합하거든요.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인간인 캐시와 토미가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ann 기술이 계속 발전하잖아요. AI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기사도 나오고며칠 전에는 백텀블링에 성공한 로봇도 나왔더라고요.     

과학 기술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발전하는 것 같아요. 우리 힘으로 그걸 막을 수도 없고 막으려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해야 할 건 조금 다른 노력이 아닐까요.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성,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존엄성, 이런 부분을 더 챙겨야겠죠. 지금 이 순간에 인간을 위협하는 건 AI나 로봇 같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같은 인간들이잖아요.     


ann 끝 곡은 어떤 곡 들어 볼까요?     

킬러스의 휴먼입니다.     


M4 the killers - human

https://youtu.be/RIZdjT147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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