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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10. 2017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2월 3일 여섯 번째 방송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주제로

'넛셸' '자기 앞의 생'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sosul1203-upmp3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책밤지기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황진하 아나운서는 아이 좋아하세요? 저는 저번 주말에 친한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다 왔거든요. 친구 부부가 아기를 데려왔는데, 아기들이랑 노는 게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재밌더라고요.     


ann 아기들을 좋아하시는군요.     

물론 이십 분 만에 완전히 넉다운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아기들은 어른이랑 생각하는 게 완전히 다르잖아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들은 특히나 더 예측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들한테 뭔가를 배우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ann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배운다?     

어른들은 그저 익숙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게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사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좀 더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ann 그렇군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까 오늘은 아이들에 대한 책을 준비하셨나 봐요.     

맞습니다. 아기라고 해야 할지, 아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구분이 어렵기는 하지만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편의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ann 그런가요. 그럼 먼저 소개해주실 책은?     

이언 매큐언이 쓴 <넛셸>이라는 소설입니다.     

ann 이언 매큐언은 <속죄>를 쓴 작가죠?     

영국의 국민 작가죠. 속죄라는 소설이 대표작이고요. 조 라이트가 연출하고 키이라 나이틀 리가 출연한 <어톤먼트>라는 영화의 원작이고요. 아마도 이 영화는 많은 분들이 보셨을 거예요. 오늘 소개해드릴 넛셸은 영국의 국민 문학인 <햄릿>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거든요. 지난해 출간된 이후에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에서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굉장히 재밌는 책입니다.     


ann 어떤 부분이 파격적인지 궁금하네요.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레이 라몬테인의 엠프티입니다.


M1 ray lamontagne - empty

https://youtu.be/SY1V0Y7hscw

           

ann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들. 첫 번째 책으로 이언 매큐언의 <넛셸> 이야기해볼게요. 어떤 점이 파격적인가요?     

소설의 등장인물이 크게 세 명입니다. 일단 가난한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시를 쓰는 ‘존’이라는 남자가 있고요. 존의 아내인 젊고 아름다운 트루디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트루디가 존의 동생인 클로드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어요. 남편을 집에서 내쫓고는 클로드와 몰래 살고 있는 거죠.     


ann 여기까지의 설명만 들으면 파격적이라고 할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요?     

소설이 이 세 주인공의 관점에서 전개되면 그렇죠.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 세 사람이 아닙니다. 존의 아내인 트루디가 임신을 한 상태거든요. 존의 아이죠.     


ann 존의 아이가 바로 주인공?     

맞습니다. 자궁 속의 태아가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자 화자예요. 소설은 줄곧 자궁 속의 아이가 자신의 운명과 아버지를 죽이려는 엄마와 아버지의 동생에 대한 독백으로 진행이 됩니다.     


ann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궁 속의 태아가 소설의 화자라. 정말 특이하네요.     

그렇죠. 햄릿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아아,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궁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햄릿이 왕자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친부가 독살당하죠. 왕위를 노린 삼촌이 햄릿의 친모와 공모해서 햄릿의 아버지를 죽인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햄릿이 자신의 어머니가 연루된 음모에 어쩔 줄 모르고 고민을 하는 거죠. 이 소설의 제목인 넛셸이 바로 이 구절에서 따온 거죠.      


ann 넛셸이라는 제목이 거기에서 나왔군요. 그런데 생각만 해보면 소설이 좀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궁 속의 태아가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게 이 소설의 미덕이자 이언 매큐언이라는 대작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요. 이 소설이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자궁 속의 태아인데도 주인공이 끊임없이 고민을 해요. 엄마의 음모가 성공을 거두면 자신은 버려질 게 뻔하고요. 그렇다고 음모가 실패해서 엄마가 경찰에 잡히면 자기는 감옥에서 태어나게 될 거잖아요. 고아원에 보내질 거고. 어느 쪽을 택하든 출발부터 삐걱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서 음모는 계속 진행되고요. 자궁에 있으니까 엄마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주인공도 똑같이 다 느껴요. 음모의 진행도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고요. 트루디와 클로드가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도 자궁 속의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거죠.     


ann 자궁 속의 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요. 아버지를 죽이려는 어머니의 음모를 속속들이 알게 되면, 정말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잖아요.     

결국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자궁 속의 태아가 하게 되기는 해요. 클라이맥스이자 햄릿의 복수 같은 순간이니까요. 어떤 내용인지는 직접 책을 읽으실 독자분들을 위해 남겨둘게요.      


ann 자궁 속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목숨을 살렸는지, 아니면 복수라도 했는지 알고 싶어서라도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두 번째 소설 이야기해볼게요.     

야광토끼의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들을게요.


M2 야광토끼 -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https://youtu.be/NP73039LrT8

    

ann 이언 매큐언의 <넛셸> 이야기했고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책은 어떤 건가요?     

j 두 번째 소설은 <자기 앞의 생>입니다. 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책이고요.      


ann <자기 앞의 생>은 청취자 분들 중에도 읽은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정말 그렇죠. 사는 게 너무 힘들 때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도 많고요. 지금껏 읽은 책 중에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사실 요즘 소설들을 읽어보면 좀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인지, 무슨 상황인지, 주인공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언뜻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자기 앞의 생>은 아무리 읽어도 그런 부분이 없죠.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사연이 있지만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가만 보면 우리 곁에 늘 있는 그런 친숙한 사람들이고요.     


ann 읽기 쉬운데 읽고 나면 그 어떤 어려운 책보다 배우는 게 많은 소설이죠.      

그렇죠. 간단하게 등장인물을 소개해드리면요. 모모라는 꼬마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처음에는 열 살이라고 나오는데, 나중에 열네 살이었다는 게 밝혀지고요.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아이죠. 모모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가 나오고요.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카츠 선생님도 모모에게 간단하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인생의 중요한 비밀들을 가르쳐주는 등장인물들입니다.     

ann 사실 등장인물들이 다 거리의 사람들이잖아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프랑스에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유기도 한데요. 모모를 키워주는 로자 아줌마는 창녀 출신이고요, 롤라 아줌마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아프리카나 아랍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에요. 프랑스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천대받는 사람들인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유럽은 늘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썩죠. 이 책이 나온 1970년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거죠.     


ann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한 거군요.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사람이 아름다운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냥 사랑이 필요한 겁니다. 사랑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죠. 모모는 누구보다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그래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모모라는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에 감동하게 되는 거고요. 그리고 사랑에는 직업이나 출신 성분이 필요 없잖아요.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죠.      


M3 제이레빗 – all you need is love

https://youtu.be/fWqor3Xnqc4


ann <자기 앞의 생>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소설 초반에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한테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하고 물어요. 하밀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해요.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거죠. 모모는 그 말을 듣고 울고 싶어져요. 시간이 지나서 소설의 끝부분에 다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한테 같은 질문을 던져요.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하고요.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덧붙여요.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니까 하밀 할아버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요. 모모한테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한 걸 계속해서 후회하고 있었던 거예요. 모모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하밀 할아버지한테 사랑을 돌려준 거죠.      


ann 모모는 나이 어린아이인데도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네요.     

어른들은 엄두도 못할 일들을 해내기도 하죠. 로자 아줌마의 병이 심해지자 모모는 지하실에 로자 아줌마를 데리고 가요. 그렇게 아줌마가 죽을 때까지 함께 있죠. 그리고 아줌마가 죽어서 3주가 지난 뒤에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지하실에 찾아올 때까지 아줌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요.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도 단순해요.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니까 옆에 있는 거예요.     


ann 어른들은, 특히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죠. 사랑에도 계산을 하잖아요.     

모모의 마음이나 행동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진정성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모모가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박히죠. 

“사랑해야 한다.”     


ann 사랑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소설이 끝나는군요.     

다짐일 수도 있고요. 작가의 진심 어린 부탁일 수도 있죠. 

사실 로맹 가리 본인의 삶과 인생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았거든요. 로맹 가리가 진 시버그라는 유명한 배우랑 사랑하고 결혼도 했거든요. 그런데 결혼 생활이 그렇게 평탄하지는 않았고, 심지어 진 시버그가 죽고 난 뒤에 1년이 지나서 로맹 가리 자신도 권총 자살을 하고요. 작가 자신이 평생 사랑을 갈구하는 인생을 산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ann 그렇군요. 자, 끝 곡은 어떤 곡 들어 볼까요?     

하림의 위로입니다.          


M4 하림 위로

https://youtu.be/TWEoarwpy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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