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Dec 19. 2017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선에 체온이 있다"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자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2월 10일 일곱 번째 방송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책을 주제로

'작가란 무엇인가' '만화가 시작된다'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sosul1210-upmp3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책밤지기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황진하 아나운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나요? 저희가 이 코너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ann 두꺼운 소설책이라도 작가에 대한 설명은 겉면 날개 부분에 적힌 지은이 설명이 전부인 경우가 많잖아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이 달린 경우도 있지만 사실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죠. 소설은 수백 페이지인데 작가의 말은 서너 페이지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ann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흔치 않죠.     

그렇죠. 어떻게 보면 그건 독자에 대한 기만일 수도 있잖아요. 글을 읽는 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작가가 하나하나 다 설명해버리면 독자는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니까요. 그래도 작가의 설명을 듣는 건 떨칠 수 없는 유혹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애정하는 작가 두 명의 인터뷰가 실린 책을 준비했습니다.     


ann 책밤지기가 애정하는 작가. 로맹 가리나 김연수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어떤 작가의 이야기인가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인데요. 파리 리뷰라는 뉴욕의 문학잡지가 세계적인 작가들을 인터뷰한 걸 모은 책입니다. 정말 거장들의 인터뷰가 주르륵 이어지는데요. 그중에서도 오늘은 움베르토 에코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ann 움베르토 에코. 작년에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철학자죠.     

제가 프라하를 여행할 때 움베르토 에코가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중에 <프라하의 묘지>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아침에 뉴스를 읽자마자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 묘지에 가서 괜히 시간을 보내고 온 기억이 나네요.     

ann 책밤지기한테 의미 있는 작가군요.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이 <장미의 이름>인데요. 소설로도 읽고 영화로도 봤는데 언제 봐도 정말 감탄이 절로 나는 그런 작품입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사회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진정한 지성인이었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 어떤 말들을 남겼을지 이야기해볼게요.     

j 심규선의 달과 6펜스입니다.


M1 심규선 - 달과 6펜스

https://youtu.be/C4Zdv4ncWxc


ann 작가들의 인터뷰. 첫 번째 책으로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린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나요?     

일단은 인터뷰 장소에 대한 묘사부터 들어야 돼요. 인터뷰는 2008년 여름에 밀라노에 있는 에코의 아파트에서 진행됐는데요. 아파트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보기 드물게 높은 천장까지 닿은 책장들이 가득하고요. 그 아파트에만 3만 권의 책이 있고, 시골 저택에는 또 2만 권의 책이 있다고 해요. 서재에는 에코의 전집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걸 모아놨는데 그것만 30가지가 넘는 언어였다고 하고요.      


ann 그야말로 대가의 집이네요. 세계적인 작가다운?     

에코가 한창 때는 하루에 60개비의 담배를 피웠다고 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는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손에 든 채로 꼼꼼하게 모든 질문에 차근차근 답을 해줬다고 하고요.     


ann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으면 소개해주세요.     

에코는 중세에 대한 역사 전문가이기도 하고, 기호학을 언어학에 접목한 당대의 학자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는 이런 다양한 분야를 쉴 새 없이 넘나드는 데요.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다고 해야 할까요. 기억에 남습니다.     


ann 텔레비전이요? 집에 책이 3만 권이나 있는 대작가도 텔레비전을 보는군요?!     

에코가 이렇게 얘기해요.

진지한 학자들 중에 텔레비전 보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나는 단지 그걸 고백하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텔레비전에서 본 걸 내 작업의 소재로 쓰려고 한다.     


ann 움베르토 에코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뭔지 궁금한데요.     

주로 드라마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잘 알 텐데요. <스타스키와 허치>라는 미국의 유명한 형사물을 좋아한다고 하고요. 디브이디가 나오면 살 거라고 수줍게 이야기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CSI, 마이애미 바이스, ER, 형사 콜롬보 같은 형사물, 드라마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해요.     


ann 에코는 그런 드라마에서 어떤 점을 끄집어내서 소설로 만드는 건가요?     

에코의 소설들을 보면 항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등장인물들이 나오거든요. <바우돌리노> 같은 소설을 보면 실존하지 않는 사제들의 왕국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위조하고 꾸며내는 캐릭터가 나와요. 그런데 이런 허구가 실제 세상에 영향을 끼치죠. 에코는 이런 걸 “창작이 현실을 만들어낸다”라고 표현합니다. 허구에서 시작했지만 실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순간 더 이상 허구가 아니게 되는 거죠.     


ann 창작이 현실을 만들어낸다. 단지 소설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창작이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말에 정말 공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에코가 이런 말을 해요. 비밀은 내용이 없이 텅 비어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의 비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텅 비어 있을 때 온갖 가능한 개념으로 그걸 채울 수 있고, 그러면 그 비밀이 힘을 가지게 된다고요.

에코의 소설은 이런 텅 비어 있는 비밀에 수많은 사람들이 휘둘리면서 현실 세계가 망가지는 걸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늘 시대 배경이 중세나 근대인 경우가 많은데, 메시지만 보면 21세기에 오히려 더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요.     


ann 소설 창작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 꼭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다음 작가의 인터뷰 이야기할게요.     

아이유의 제제입니다.


M2 아이유 - Zeze

https://youtu.be/xsWVmf2UAkg


ann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린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해봤고요. 두 번째로 소개해줄 작가는 누구죠?     

이번에는 만화가로 준비했습니다.     


ann 책밤지기가 좋아하는 만화가. 누구죠?     

워낙에 유명한 분이니까요. 슬램덩크를 쓴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입니다.     


ann 슬램덩크. 만화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아마 한 번쯤은 보셨을 바로 그 만화네요.      

많은 분들의 인생 만화죠. 1990년대 일본 만화 전성기를 연 주역이기도 하고요. 국내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팬이 있죠. 연재가 끝난 게 1996년이니까요.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속편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을 정도니까요.      


ann 작가가 직접 농구를 했었다고 하죠?

어릴 때 농구를 했는데 키가 작아서 포기했다고 합니다. 아쉽게 꿈을 접은 마음이나 간절함이 만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ann 사실 만화책도 만화책이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국내에서도 지상파에서 정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방송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노우에는 역시나 만화가 애니메이션보다는 낫다는 쪽인 것 같아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이 <만화가 시작된다>라는 인터뷰집인데요. 일본의 시인이자 만화 팬인 이토 히로미라는 작가가 슬램덩크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인터뷰한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이노우에가 이런 말을 해요.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선에 체온이 있다.”     


ann 만화는 선에 체온이 있다. 굉장히 인상적인 표현이네요.     

슬램덩크도 그렇고요. 이노우에의 또 다른 대표작인 베가본드도 그렇고요. 굉장히 역동적인 표현들이 돋보이거든요.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이 더 화려한 게 당연한데, 슬램덩크를 보면 오히려 만화책으로 보는 게 더 흥미진진할 때가 있어요. 다음장을 펼쳤을 때 어떤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두근 하게 되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죠. 이노우에의 만화에는 늘 그런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슬램덩크나 베가본드, 리얼에 환호하는 거겠죠.     


M3 재주소년 농구공

https://youtu.be/wfT8HljYagA


ann 슬램덩크와 베가본드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인터뷰집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책밤지기의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슬램덩크나 베가본드를 쓰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어떤 뒷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이런 것들이 다 흥미진진하죠. 팬심에서는 모든 페이지가 다 재밌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정대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ann 정대만은 여성 팬이 정말 많은 캐릭터죠.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거죠?     

불꽃남자로 유명하죠. 불량학생을 처음 등장했다가 안 선생님한테 농구가 하고 싶다는 명대사를 날리면서 북산팀에 합류하게 되는데요. 사실은 원래 작가는 정대만을 단역으로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북산팀에 선수로 합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불량학생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역으로요.      


ann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이 없는 북산은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그런데 어쩌다가 선수로 캐스팅이 된 거죠?     

정대만이 체육관에 뛰어들어서 북산 멤버들이랑 싸움을 하게 되는데요. 이게 그리다 보니까 싸움이 잘 안 끝나고 길어지더랍니다. 그리고 계속 그리다 보니까 정대만이라는 캐릭터에 작가가 정이 들었다고 해요.      


ann 정대만이 정이 들어서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캐릭터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이노우에의 말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노우에가 이렇게 말해요.

"캐릭터들이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 완력으로는 끌어올 수 없거든요. '필연이란 무엇인가'라는 데에 따르는 수밖에 없죠. 캐릭터의 필연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스토리 전개를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일단 캐릭터를 만들어 놓으면, 물론 그 캐릭터가 생명력을 가질 만큼 매력이 있어야겠죠. 그러면 캐릭터가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만화 속의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 세계에서는 정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거죠. 작가가 그걸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말인데요.      


ann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만화 캐릭터. 슬램덩크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 책에 배가본드 이야기도 나오는 거죠?     

슬램덩크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나머지는 배가본드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사실 배가본드는 슬램덩크만큼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거든요. 일단 일본 최고의 무사라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설정 자체가 청춘 스포츠물보다는 한국 독자한테 매력이 덜하죠. 또 슬램덩크를 그릴 때보다 이노우에의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철학적인 고민이 많이 담겨 있어서 가볍게 보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이거랑 관련해서 재미있는 말을 이노우에가 했는데요. 슬램덩크를 다시 그린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이라면 감독을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교 운동부 학생들의 느낌 같은 건 지금 그려낼 자신은 없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가치관이 다양해졌다고 해야 할까. 고교 운동부 아이들처럼 ‘반드시 이긴다!’는 의지를 스스로 믿을 수가 없어졌다.”     


ann 반드시 이긴다는 의지를 스스로 믿을 수가 없어졌다. 슬램덩크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천진한 믿음을 지금은 그릴 수 없다는 말이네요. 어찌보면 슬램덩크 2부가 나올 수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겠고요.     

제 생각도 그래요. 슬램덩크 2부가 다시 시작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나온다면 실망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ann 마지막 곡도 소개해주세요.     

j W의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입니다.     


M4 –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https://youtu.be/iLMXcev11x8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