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Jan 01. 2018

그는 속초의 바닷가에서 노르망디를 떠올렸고

외국 작가들의 한국에 대한 소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2월 17일 여덟 번째 방송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외국 작가의 소설을 주제로

'속초에서의 겨울' '폭풍우'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두 권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그냥 한국이 배경인 소설은 아니겠죠?     

외국인 소설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우리한테는 굉장히 익숙한 것들도 외국인, 그것도 외국인 소설가의 눈에는 조금 특이하게 보일 수 있잖아요.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인과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할 수도 있는데, 오늘 소개해드리는 두 권의 소설을 읽어보면 외국인 소설가가 어떻게 한국 사회를 그리는지 조금은 알 수도 있고요.     


ann 외국인 소설가가 그리는 한국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데요처음 소개해주실 책은요?     

첫 번째 소설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속초에서의 겨울>이라는 소설입니다.     


ann 속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군요근데 프랑스 작가가 속초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까 확실히 특이하긴 하네요.     

일단 작가 소개부터 하면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작가입니다. 방송 인터뷰를 보면요 어릴 때 한국에 머물 때 속초로 겨울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속초에 가보니까 아버지의 고향인 프랑스 노르망디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속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하게 된 거죠.     


ann 아무래도 작가의 이야기가 소설에 반영돼 있겠죠?     

여자주인공이 작가 본인과 같은 혼혈 여성이고요. 남자주인공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만화가입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캐릭터들에 담았다고 할 수 있죠. 두 주인공이 노르망디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몇 군데 나오는데요. 거기보면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노르망디는 속초와 같다.     

ann 어떤 부분이 같다는 걸까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거죠. 노르망디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 중 하나였잖아요.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닌 데다, 속초는 한국에서도 최북단에 가까운 지역이니까요. 소설 속 여자주인공이 이런 말을 하는데요. 되게 인상 깊었어요.

“이곳 해변들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기다림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결국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믿게 된 거예요.”     


ann 기다림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전쟁은 없다고 믿게 된 거다외국인의 눈에서 한국 사회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노래 한 곡 들을까요?     

블루파프리카의 긴긴밤입니다.


M1 블루파프리카 긴긴밤

https://youtu.be/GQ24Kve2hLs


ann 외국인 소설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들첫 번째 책으로 <속초에서의 겨울이야기하고 있어요소설 내용을 좀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배경은 말씀드린 것처럼 속초고요. 속초의 한 허름한 펜션이 무대입니다. 여자주인공은 프랑스어를 전공한 혼혈의 젊은 여인이고요. 펜션의 허드렛일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주인공의 엄마는 속초에서 오징어순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요. 그러다 어느 날 펜션에 프랑스인이 투숙을 합니다. 속초까지 영감을 얻으러 온 만화가인데요. 매서운 강추위가 속초를 찾아온 며칠 동안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끌리고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모습을 그리는 소설이죠.     


ann 그런데 앞에서도 물었지만정말로 왜 속초인지가 궁금하네요.     

같은 질문을 여주인공이 해요. 이렇게 추운 겨울에 프랑스 만화가가 도대체 왜 속초까지 왔냐고 묻거든요. 그러면서 속초는 긴 겨울에는 할 일이 많지 않다고, 여름에 바캉스를 위해 존재하는 도시라고 이야기해요. 괜히 실망하는 게 아닐까 이런 근심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여주인공이 계속 질문을 던지니까 남주인공은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고 답을 하고요. 사실 조용히 지내기에 한 겨울의 속초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없기도 하죠. 그렇게 남주인공은 펜션에서 만화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ann 영감을 받으러 먼 길을 온 만화가라면 여기저기 많이 다녔을 것 같아요스케치도 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속초 주변의 여러 관광지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곳들이 소설에 실제로 나옵니다. 그런데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예컨대 두 주인공이 낙산사를 다녀와요. 낙산사 하면 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탁 트인 언덕배기에 있는 해수관음상도 대단하고요. 그런데 소설에는 이런 낙산사의 대표적인 풍경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고요. 대신 예불을 드리는 비구니들의 모습, 염불소리가 낙산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으로 나와요. 사실 남자 주인공이 낙산사를 가는 이유도 향을 사는 거고요.      

ann 이런 게 속초나 낙산사의 대표적인 풍경이라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들이 외국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겠네요.     

특히나 이 소설 속 주인공이나 작가 자신도 단순한 관광객은 아니니까요. 주인공은 새로운 장소에서 영감을 찾으러 온 만화가고, 작가 자신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잖아요. 한국의 풍경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거죠.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단서나 단어 같은 거죠.     


ann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소설일 수밖에 없겠죠.     

이 책이 작년에 나왔거든요. 작가가 한국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는데 그때 이야기를 찾아보면 이런 말들을 합니다. 나는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이고, 아시아에서는 서양인이다. 어디에 있든, 아버지나 어머니의 나라에서 나의 일부는 낯선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 글쓰기는 내가 현실에서 찾아내지 못한 거처를 창조해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ann 작가가 찾아보니까 굉장히 젊네요. 1992년생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소설을 계속 쓰겠죠?     

그럴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 간 재일 한국인에 대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속초에서의 겨울은 이 작가가 쓴 첫 번째 소설인데요. 이 소설로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쓴 첫 작품에 주는 <로베르트 발저 상>, 프랑스의 <문필가협회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인 만큼, 한국에 대해 또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해볼까요?     

그레고리 포터의 홀딩 온  들을게요.


M2 Gregory Porter – holding on

https://youtu.be/OlwceBF-2T4


ann 외국인 소설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두 번째로 이야기해볼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르 클레지오의 <폭풍우>입니다.     


ann 르 클레지오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죠?     

200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부터도 세계적인 작가이기는 했죠. <홍수> <사막> 같은 작품들이 유럽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한국에서는 <황금 물고기>로 잘 알려졌죠.      


ann 그런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까 굉장히 신기하네요황금 물고기는 아프리카가 배경인 소설이었잖아요.     

작가 자신이 일단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한국에 가까운 사람을 일컬을 때 지한파라고 하잖아요. 세계 문학계의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인 셈이죠. <허기의 간주곡>이라는 소설은 서울에 머물면서 쓴 소설이기도 하고요. 서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1년 정도는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기도 했었고요. 특히나 르 클레지오가 한국에서도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깊습니다. 제주 명예도민이기도 하더라고요.     


ann 제주 명예도민 르 클레지오씨네요제주도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어떤 추억이 있는 건가요?

8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제주 해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고 해요. 대단한 장비도 없이 거의 맨몸으로 바닷속에 들어가서 전복이나 문어를 채취하는 여인들이 한국의 제주라는 섬에 있다는 기사를 본 거죠. 그 내용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평생 잊지 않고 있다가 2007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주도를 찾았다고 합니다. 거기서 처음 실제 해녀들을 본 거죠. 그리고 제주 해녀를 다룬 소설을 구상해서 2014년에 <폭풍우>라는 소설집을 내게 된 겁니다.     

ann 오늘 소개해주실 책이 바로 <폭풍우군요.     

네. 제주도, 그리고 제주도 안의 작은 섬이죠. 우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인데요. 책을 펼치면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라는 헌사가 있습니다. 르 클레지오가 200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선정 이유라고 해야 될까요.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

어떻게 보면 제주의 해녀들이야 말로 이 말에 딱 어울리는 대상이 아닐까 싶어요. 문명이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제주의 해녀들은 여전히 거의 맨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맨 손으로 전복과 문어를 잡잖아요. 오로지 자신의 몸으로 바다에 맞서는 몇 남지 않은 인간들인 거죠. 외국인 작가들이 제주의 해녀에 감명을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거 같아요.     


ann 제주의 해녀는 같은 한국 사람인 우리가 보기에도 신비스러운 부분이 있죠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특히나 그럴 것 같아요.     

앞에 소개해드린 <속초에서의 겨울>에도 해녀가 잠깐 등장해요. 속초에도 해녀가 있거든요. 제주의 해녀 문화가 동해안의 바닷가에도 전파돼서 유지되고 있는 거죠.     


M3 프롬 – 그녀의 바다

https://youtu.be/_AvunPU2QQo


ann 르 클레지오가 제주의 해녀에 대해 쓴 소설 <폭풍우이야기하고 있어요소설은 어떤 내용인가요?     

남자주인공인 필립 키요는 베트남전쟁 때 종군기자를 했던 사람입니다. 종군기자를 할 때 민간인 소녀가 군인들에게 성폭행당하는 걸 보고도 방관한 죄로 감옥에 다녀온 경험이 있고요. 그 이후로는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는 삶을 산 거죠. 그러다 사랑에 빠진 여인과 제주도 여행을 왔는데 그녀가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이런 일이 있고 나서 30년 만에 다시 제주를 찾아온 건데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던 곳까지 밀려온 셈이죠.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나에게 섬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이다. 지나갈 수 없는 곳, 그 너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곳. 망망대해, 그것은 망각이다.”     


ann  죄책감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계속 허우적대는 거네요.     

그렇죠.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13살의 혼혈 소녀인 준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버리고 자기 나라로 가버렸고 어머니가 혼자서 키우는 아이인데요. 어머니는 제주로 들어온 뒤에 해녀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고요. 섬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준과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필립 키요. 두 사람이 나이를 넘어서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주고 소통하는 이야기인 겁니다.     


ann 여주인공의 엄마가 해녀군요.     

혼혈 소녀의 사춘기가 쉽지는 않겠죠. 그러니까 준이 학교에서도 그렇고 늘 외톨이처럼 지내게 되는데 이때 그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해녀들입니다. 해녀들은 그녀의 피부색에 대해서 무어라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녀를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게 해주고 물질을 가르쳐주고 바다에서 만난 기적 같은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죠. 숨비소리라고 하죠.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바다 위에 올라올 때 내뱉는 숨소리. 숨비소리를 가장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원시 언어라고도 하잖아요. 해녀들에게는 보통의 사람들을 넘어서는 소통의 수단,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ann 두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한 소녀의 성장기로 읽었어요. 남주인공인 필립 키요의 시각으로 보면 또 다르겠지만, 저한테는 여주인공인 준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는지가 더 의미 있고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거든요.

필립 키요는 제주에서 머물며 준과 소통하고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제주를 다시 떠나게 돼요. 여주인공인 준은 그런 필립 키요를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미래의 남편감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결국 필립 키요는 떠나버린 거죠.

그런 필립 키요를 대신하는 게 준의 엄마입니다. 준은 도시에 살다 자신을 낳고 가족을 떠나 제주로 들어온 엄마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제대로 된 대화나 소통이 없었죠. 그런데 필립 키요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엄마의 삶, 엄마의 고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거죠.      


ann 결국 딸과 엄마의 이야기였던 거네요.     

해녀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해녀는 엄마가 딸에게, 딸이 엄마에게 배우면서 전해지는 그런 일이잖아요. 남자가 떠나버리고 여자가 비탄에 잠기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그런 이별의 순간에 딸과 엄마의 연대와 유대가 더 굳건해지는 거죠. 저는 이 결말이 참 좋았습니다.     


ann 마지막 곡도 소개해주세요.     

성시경의 제주도의 푸른 밤입니다.     


M4 성시경 – 제주도의 푸른 밤

https://youtu.be/huLc6rX5fZs



매거진의 이전글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선에 체온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